가시고기 나무 / 김영교


야생사과 만자니따 뒷길은 빅베어 산행 트레일 초입에 있다. 도토리와 솔방울이 지천으로 깔린 길을 기분좋게 오르며 ‘산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 가슴을 열고 재롱 섞인 목소리로 불러 제켰다. 노래실력을 산이 듣고는 유치원생인가 귀를 쫑긋 했을 꺼다. 이슬 젖은 푸른 잎들을 앞세워 산울림 러브콜만 되돌려 줄뿐 점잔 빼는 모습이 오히려 친근했다. 빅베어(Big Bear) 산길이 꾸불꾸불 참으로 유연하게 뻗어있어 쉽게 오를 수 있었던 상쾌한 아침 등반이었다.

 

거의 정상에 가까웠을 때 팔 벌리고 심호흡을 했다. 흙냄새와 새들의 지저귐, 산바람이 와 안긴다. 그 때 산 중턱에 죄지은 적 없이 벼락 맞은 장엄한 주검 하나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나이테 내장이 터지고 시커멓게 불이 붙어 온통 타 들어간 화상자국이 안쓰럽게 노출돼 있었다. 낮게 널브러져 길게 누운 채 모락모락 김이 아직도 솟고 군데군데 진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저 큰 덩치가 되기까지 오랜 세월 푸름과 곧음을 자랑했겠구나 싶었다. 숨소리마저 죽이고 살아야 하는 막혀 가려진 음지의 이웃 작은 들꽃과 수풀은 얼마나 답답해했을까. 이제는 햇빛과 바람을, 불타서 남은 재 영양분을 퍼뜨려 생태계 순환법칙을 따르려 자멸한 것일까? 빅베어 가족 중 우람하게 키 큰 나무 한 그루, 큰 소리 내며 넘어질 때 지구 한 귀퉁이도 무너지며 온산이 같이 아파 신음했을 꺼다. 성긴 바람이 쓰다듬으며 흩고 지나간다.

 

위문공연 온 눈부신 햇살도 공평하게 덮어주며 숨통을 틔워주었다. 쓰러진 나무는 위험한 자기 쪽을 피해 옆쪽 내릿길을 택해 가라고 김 뿜으면서도 누워 길안내를 했다. 문득 산에서 만나보는 가시고기 나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큰 덩치 뽐내며 산정기(精氣) 혼자 듬뿍 마시며 본의 아니게 햇볕을 독차지한 게 미안했으리라! 그래서 저 화형도 묵묵히 감내해 낼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흩어져 있는 나의 의식을 건강바구니에 주워 담았다. 체조를 하고 숨쉬기를 해도 전혀 힘들지 않았다. 내 가슴을 비집고 들어온 나무 가시고기와의 만남, 참으로 의미있는 아침이었다.

 

무공해 산바람과 열렬한 스킨십, 밀착된 내 몸 무게를 은밀스레 애무해준 늠름한 트래킹폴의 포옹, 욱어진 숲속, 완곡한 언덕바지를 부드럽게 뻗어있는 산길,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도시 매연에 지친 발길들에게 싱싱한 호흡을 전해주며 광합성 햇볕을 나눠주고 있었다. 늘 기다림에 서있는 포용의 숲이 여간 고맙지가 않았다.

 

이 천연 이끼 숲속 산길을 오르내리며 건강의 꿈을 키운 사람들, 내 딛는 발길 한걸음 두 걸음, 시선이 바라보는 한 장면 두 장면이 건강하고 행복하라고 타이르며 등 떠밀어 주는 듯 했다. 걸을 수 있었던 건강한 두 다리가 고마웠다. 낮에 본 화형 맞은 나무가 나의 뇌리를 맴돌고 밤이 늦도록 나를 뒤척이게 했다. 그 나무는 스스로 영양분이 되고 소통이 되는 헌납의 길을 세상무대에 내놓았다. 참으로 거룩하고 찬란한 일대기 연출이 아닐 수 없었다. 자연은 이렇게 자생하는 법을 알고 실천하고 있었다. 자연계시를 통해 인간 쪽에서 터득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자연은 스승이었다. 새끼에게 자기 살을 먹이는 가시고기, 다 주고 또 주는, 넘치도록 주는 2천년전 그 사람 가시고기- 십자가 사건을 통해 자기 살과 피를 먹여준 원조 가시고기, 영생을 약속까지 해주었으니 고수중의 왕고수가 아닌가! 닐까 그런 생각이 났다.

 

산정기 꾹꾹 밟는 등산화 가득, 그리움의 산허리를 돌아 환속하는 발길은 쓰러진 그 나무의 최후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감동으로 가슴이 먹먹했다. 하산하면서도 내내 이 깨달음의 감격이 나를 떨림에 머물게 했다. 행복한 떨림이었다.

 

퇴 2/26/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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