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자연과 당신의 향연

- 채영선 시집향연에 부쳐 -

 

 

 

홍 문 표

(시인, 평론가, 전 오산대학 총장)

 

  

     채영선 시인이향연이라는 시집을 낸다. 첫 시집 사랑한다면둘째 시집 미안해에 이어서 세 번째 시집 향연이란 시집을 내게 된 것이다. 지난해에는 영혼의 닻이란 수필집을 냈다. 채 시인은 시집이나 수필집의 제목만 보아도 그의 문학적 안목과 품격을 느끼게 한다. 모두가 평범한 제목이 아니라 독특한 문학세계를 드러내는 세련된 아우라가 있다..

 

요즘은 시인도 많고, 시집도 많다. 그만큼 시가 생활화되고 대중화 되었다는 것은 이 각박한 시대에 반가운 일이나 문제는 중구난방으로 범람하는 시의 홍수 속에 시의 진가가 헐값으로 남발된다는 것이다. 사실 시의 본질은 시류에 영합하는 대중문화가 아니라 늘 시대를 뛰어넘고, 속된 현실의 욕망을 벗어나 보다 진실 되고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고 예언하는 광야의 목소리라는데 있다. 그러기에 시는 언제나 진지해야 하고 엄숙해야 하고 그러면서도 풍요롭고 감동적인 노래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일찍이 박용철 시인은 그의시적 변용의 길이라는 글에서 시는 곧 시인의 삶 자체이자 유일한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독일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을 빌려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일이 있다.

너는 먼저 쓴다는 것이 너의 심령의 가장 깊은 곳에 뿌리를 박고 있는 일인가를 살펴보라 그리고 밤과 밤의 가장 고요한 시간에 네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그것을 쓰지 않고는 죽을 수밖에 없는가. 쓰지 않고는 못 배길, 죽어도 못 배길 그런 내심의 요구가 있다면 그 때 너는 네 생애를 이 필연성에 의해서 건설하라이 엄숙한 경고를 명심하면서 시인임을 자처하는 오늘의 많은 시인들이 정말 쓰지 않고는 죽을 수밖에 없는 그런 운명적인 필연성이나 절박감을 가지고 시를 쓰는 것인지, 그리고 시를 쓸 때 자신의 심령의 가장 깊은 곳에 뿌리를 박고 있는 지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오늘의 시인과 시를 비판적으로 거론하는 것은 그만큼 오늘의 많은 시인들이 대중화 세속화에 영합하여 시의 본질이나 시의 진정성을 훼손하는 사례가 너무나 많음을 염려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처럼 혼잡한 시단의 타락에서도 불구하고 의연히 시의 본령을 지키고, 진지하고 엄숙하게 그러면서도 풍요로움이 있고 ,성숙함이 있고 영혼의 자유로움이 있는 시에 열중하는 시인이 있음을 기쁘게 생각하며 채영선 시인 또한 그러한 시인의 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반가운 마음을 금치 못하기 때문이다.

 

채영선 시인은 이번 시집 제목을향연이라 했다. 그리고 향연이란 말은 이번 시집에 수록된 한 작품의 제목이기도하다. 향연이란 아주 성대하게 벌어진 잔치를 말한다. 잔치라면 음식관계를 생각하는데 사실은 여러 사람이 모여서 축하하고 즐기는 모든 행위는 모두 향연이 된다. 그러기에 플라톤은 여러 철인들이 모여서 에로스에 대한 토론을 벌리는 것을 향연이라고 했다. 향연은 축하할만한 주제가 있고, 모두가 즐거워할 수 있는 사건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번 채 시인이 상상하고 있는 축하할만한 주제는 무엇이고, 시를 통해서 함께 즐거워하고자하는 시적 콘텐츠는 무엇일까.

 

그는 서문에서 낙엽소리가 들리는 가을이지만 오히려 가을을 기다리는 것은 여름에 정열을 나눠준 태양으로 옹골진 결실에 대한 기대, 수고와 헌신을 아끼지 않는 마음이 텅 빈 거리와 산골짝 들녘, 그리고 허허로운 우리의 가슴에 채워지는 풍요로운 사건을 은혜로운 향연의 메아리로 인식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가 이번 시집에 담고 있는 작품 향연은 구체적으로 어떤 시적 향연의 공간을 형성하고 있는 것일까.

 

아그네스, 듣고 있니

어금니 푸른 어둠을 뚫고

별 하나 별 둘 불붙이는 소리

잠들어 마른 가지 위에

파식파식 심어지는 불꽃

 

아그네스, 듣고 있니

사륵사륵 가시나무

옷자락 끄는 소리

낮은 무릎으로 가을 지피는

멀고 먼 발자국 소리

 

아그네스, 듣고 있니

품고 다듬어 삭은 전설

금빛으로 타오르고

사나운 들풀마저 물들이면

황금 신전으로 달려가는 소리

 

아그네스, 보고 있니

뜨락에 찾아온 애꿎은 사랑

뼈아프게 흩어진다 해도

꺼진 불꽃으로 재가 되어도

떨어지는 것이 아름다운 계절

 

아그네스, 듣고 있니

후드득후드득 조각나는 심장

달빛에 여울져 타는 기다림

작은 별 하나 머물기 전

빗살에 멍울지는 가을 소리소리

향연전문

 

     인용한 작품향연은 시적 화자가 아그네스라는 시적 청자에게 질문하는 돈호법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돈호법은 어떤 대상에게 말을 걸어 강한 정서적 환기를 요구하는 방법이다. 여기서 아그네스는 특정 인물일수도 있지만 사실은 자신을 포함안 모든 대상들에게   사실을 보다 강하게 환기시키고자하는 화자의 간절함을 대신하는 이미지일수도 있다. 그만큼 이 시는 시적 화자가 경험하고 있는 향연의 감동을 모두가 공감하고, 함께 축제에 참여하기를 바라는 내심을 지니고 있다.  

 

시적 화자는 먼저 아그네스에게 듣고 있느냐는 도치법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렇게 듣고 있느냐는 질문을 1, 2, 3연 그리고 5연에서도 반복되는 강한 리듬까지 조성하고 있다. 따라서 듣고 있느냐는 질문은 역설적으로 들어라, 또는 알아야한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무엇을 들으라는 말인가. 1연에서 들어야 할 것은 어둠을 뚫고 별 하나 별둘 불붙이는 소리다. 그런가 하면 마른 가지에 파식파식 심어지는 불꽃 튀는 소리다. 마치 연회장의 시작을 알리는 축포처럼, 축제의 장을 여는 불꽃놀이처럼 이 작품의 향연은 불꽃쇼로 시작된다.

 

그런데 이 불꽃놀이는 어둠이란 시간적 배경과 마른나무 가지라는 공간에서 일어난다. 여기서 어둠과 마른나무가지는 2연에서 가을이라는 계절을 명시함으로 모두가 싱싱한 여름을 지나 가을로, 생명력이 넘치는 시간에서 쇠락의 시간으로 전환하는 시간과 공간인 것을 암시한다. 그런데 시인은 이 쇠락의 시간에 오히려 어둔 밤에 불붙는 별의 소리를 듣고, 마른 가지에게 파식파식 타오르는 불꽃 튀기는 소리를 듣는다.

 

    2연에서는 황홀한 불꽃 튀는 소리에 이어 발자국 소리를 배치하지만 3연에서는 다시 축제의 향연으로 돌아간다. 삭은 전설이 금빛으로 타오르고 사나운 들풀마저 물들어 마침내 황금신전으로 달려간다는 향연의 절정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5연에서는 애꿎은 사랑이 뼈아프게 흩어짐을 말하고 있고 꺼진 불꽃으로 재가 되어도 떨어지는 것이 아름다운 계절이라 했다. 그렇다면향연의 표면적 의미는 단풍이 주는 황홀한 자연의 축제이면서도 마침내 낙엽으로 지는 계절의 무상함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4연의 마지막 행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름다운 계절이라는 말은 결코 쇠락이나 소멸의 무상함이 아니라 소멸의 아름다움이다. 따라서 계절도 인생도 가을은 슬픔 소멸이 아니라 황홀한 소멸이 된다. 여기에 채 시인의 이번 시집향연이 보여주는 가을 축제의 진정한 미학이 있는 것이라고 해야 하겠다. 그래서 그의 가을 축제는 쓸쓸하게 끝나는 향연이 아니라 아름다운 향연이며 행복한 축제가 된다. 그리고 이처럼 떨어지는 것이 아름다운 계절은 5연에 이르러서도 절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달빛에 여울져 타는 기다림이 되고 작은 별 하나가 머물기 전의 멍울지는 가을 소리가 된다.

 

     채시인의 이번 시집에는 가을을 소재로 한 시들이 많다. 그리고 그 모든 가을의 시들이향연처럼 황홀한 축제를 갖는 것은 아니다. 소멸에 대한 아쉬움도 있고, 쓸쓸함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쉬움과 쓸쓸함마저 거대한 자연의 향연이며 향연이야말로 더 크고 넓은 신의 섭리라는 관점에서 보고 있다. 그러기에 향연은 가을 단풍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봄 · 여름 · 가을 · 겨울, 어느 때나 이루어지는 자연의 잔치라는 데 시인의 놀라운 시적 혜안이 있다

 

마음껏

흩날릴 거야

눈치껏 흔들리면

가로막는 건 없어

 

잠간

숨을 멈추어야 해

머금은 만큼

아프게 서야 하니까

 

무지개 이고

날아갈 거야

은빛 거울 속으로

 

숨 막히도록

반짝이고 싶었어

보석이 되고나면

끝내 사라져야 하겠지만

- 봄비전문

 

그대가 있어

향기로운 그늘을 보았습니다

뿌리 없는 소음을 몰고

휘돌아 여울지며 지나가는 시간

사라지는 환희에 담긴 짙은 어둠을

 

그대가 있어

못다 핀 것이

아름다운 것임을 알았습니다

떨리는 어깨 감싸 안아주는

미완성 속에 출렁이는 완전함을

 

그대가 있어

가시의 침묵을 보았습니다

불타던 해거름 속

수군거리던 발걸음 흩어져 가면

하나 둘 별 세고 싶은 마음을

 

그대가 있어

미덕의 의미를 배웠습니다

-장미, 그대전문

 

눈이 오네요

하늘도 땅도 지워지네요

 

아쉬운 손길에 제금 나던 파밭

비스듬히 저울질하던 산 겨드랑이

돌고 돌아 어딘가에서 스러질 산길

우두커니 입 벌린 쓰리기통 하나

길모퉁이 가난한 현수막 너나없이 사라지네요

 

멀리 있어 그리운 것부터

너무 가까워 겸연쩍은 것까지

잊지 않고 찾아오는 질긴 외풍에

지친 몸매 감추고 싶은 마지막 계절

 

모아둔 별빛 구름자락 묵직해지면

흔들어 털어내는 은빛 추억가루

연인들 어깨 위에 흩어지는 꽃잎처럼

해끗해끗 날리며 손짓하면서

지워버리자고

덮어버리자고

때로는 못 본 척하라고 하네요

-겨울 이야기

    봄비에서도 아름답고 강렬한 향연을 확인하게 된다. 의인화되는 봄비의 독백은 무지개 이고/ 날아갈 거야/ 은빛거울 속으로치닫게 되고 마침내 숨 막히도록/반짝이고 싶었어에서 절정을 이룬다. 그런데 보석이 되고 나면 끝내 사라져야 할 것을 예견한다. 이는 앞서 향연이 갖는 황홀한 축제와 소멸의 아름다움이 여기서도 확인되는 그의 시적 미학이다. 이러한 시학은 여름의 장미, 그대에서도 나타난다. 1연에서 그대가 있어/ 향기로운 그늘을 보았습니다라고 했다. 향기로움은 장미의 아름다운 세계이지만 동시에 그늘이 있는 아름다움이다. 그래서 1연의 마지막 행에서는 사라지는 환희에 담긴 짙은 어둠을보완하여 장미의 빛과 그림자, 향연의 빛과 그림자, 지상의 모든 아름다움의 빛과 그림자를 재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2연에서는 차라리 봉오리 시절이 더 아름답고, 미완성 속에 출렁이는 완전함을 상상하게 된다. 따라서 장미는 단지 아름다운 한 송이 꽃이 아니라 향기로운 그늘을 보게 하고 못다 핀 것이 아름다운 것임을 알게 하고 가시의 침묵을 보게 하고 마침내는 생의 미덕을 배우게 까지 하는 진실이 되고 교훈이 되는 진지한 언어가 된다.

 

겨울 이야기에도 축제가 있고 향연이 있다. 하얀 눈으로 하늘도 땅도 하얗게 지워지는 축제가 있고 향연이 있다. 그러나 4연에서 보듯이 모아둔 별빛 구름자락 묵직해지면/ 흔들어 털어내는 은빛 추억가루/ 연인들 어깨 위에 흩어지는 꽃잎처럼/ 해끗해끗 날리며 손짓하면서지워버리자고 덮어버리자고 못 본 척하라고 속삭이는 겨울의 은밀한 밀어를 들으며 결국 황홀한 축제와 소멸이라는 빛과 어두움의 역설을 여기서도 확인하게 된다.

 

이처럼 채시인의 일 년 사계는 그 나름의 축제가 있고, 향연이 있다.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스스로 기뻐하듯이 지상의 사철과 자연들은 언제나 아름다움과 소망과 충만함으로 가득한 축제의 향연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시인은 그 축제의 향연을 다양한 메타포와 리듬을 통하여 잘 드러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상의 자연이나 지상의 시간들은 늘 화려함의 뒤안길에 사라져가는 소멸의 그림자가 드리워있다. 그래서 지상의 향연은 늘 미완의 축제가 된다. 그렇다면 온전한 향연은 무엇일까. 결코 그림자가 없는 온전한 향연, 시인은 그래서 그런 향연을 함께 다시 모색하게 된다.

 

몸과 마음 무거운 겨울을 지나

먼 산기슭 봄이 기웃거릴 때

가슴에는 아지랑이 피어오릅니다

하얀 눈 속에

하얀 꿈을 이고

하얀 밤을 세며 기다리다가

하나씩 머리 들기 시작할 자연

조형물로 가득 찬 세상에서

헛된 그림자에 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

한 줄기 빛을 찾아 나선 길

이름도 모르고

눈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헤어진 야생화와 들풀과

바위와 고목 앞에서

미로를 헤매는 가난한 욕망에게

인내와 절제의 미덕을 가르쳐주고

결실의 계절에 찾아오시는 그분 앞에

아름답고 소담한 열매 가득한

마음 바구니 내어드리고 싶습니다

- 못다 한 고백전문

 

이제야 알았습니다

가로등 잠든 새벽

울타리 향나무 가지 안에서

아침을 깨우는 작은 새 소리

하루를 여는 찬양인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다그칠 수 없는 시간

잠시 멈추어 선 광야 끝

반짝이던 순간 멀어져갈 때

기억하라는 그날의 약속

 

이제야 알았습니다

기우는 골목 꽃 진 자리

아물지 못한 상처마다

당신이 키우신 열매

알알이 익어 기쁨이 되는

 

이제야 알았습니다

혼돈의 하늘 파닥이다가

까만 가슴 채우신 당신의 말씀

머뭇거리던 이 자리

끝내 등불이 되어주시는

 

이제야 알았습니다

기어도 즐거운 들짐승처럼

죽은 듯 살아 한마음

그제야 이르는 약속의 땅

온전한 사람으로 거듭나라는

-당신의 뜻전문

 

여기까지 참으셨지요

여기까지 돌아보셨지요

 

창공을 질러

이마를 비추는

빛나는 보좌 앞에

기다리며 서계신 주님

 

날아오르는 찬양의 선율

아름다운 곡조와 노래

온 땅에 울려 가득

일렁이며 춤추는 나뭇잎과 꽃송이

 

스며들어 거룩한 안개처럼

흘러 적시는 생명수 강가에서

짝을 지어 나는 새들처럼

찬미로 채우는 영혼의 바다

 

하늘과 구름의 휘장 너머

수정 보석 반짝이는 집

-거기까지전문

 

못다 한 고백을 보면 그의 향연은 겨울을 지나 먼 산기슭 봄이 기웃거릴 때부터 시작한다. 가슴에는 아지랑이 피어오르고 온갖 자연들이 하나씩 머리를 들기 시작하면 자연의 축제는 무르익는다. 그러나 시적 자아는 조형물로 가득한 인위적인 문명의 현실에서 헛된 그림자에 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미로를 헤맨다. 여기서부터 자아의 영혼은 한 줄기 빛을 찾아 길을 묻는다. 그 때 야생화와 들풀과 바위와 고목들이 인내와 절제의 미덕을 가르쳐 준다. 그제서야 시적 자아는 결실의 계절에 찾아오시는 당신 앞에 아름답고 소담한 열매 가득한 마음 바구니를 내어 드리고 싶다는 고백을 하게 된다. 바로 자연의 향연에서 인생의 궁극적인 향연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자연의 향연, 그리고 인생의 궁극적인 향연이 무엇인가. 그것은 당신의 뜻을 아는데 있다. 조물주의 뜻, 창조주의 뜻,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에서 인간을 창조하시고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하신 그 보시기에 좋았더라와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신 하나님의 독백과 기쁨이 바로 당신의 뜻이고 향연의 진정한 의미가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시인은당신의 뜻에서 이제야 알았습니다를 연발한다. 1연에서 아침을 깨우는 작은 새소리는 하루를 여는 찬양임을 안다. 여기서 찬양은 지상의 노래이며 동시에 천상의 노래가 된다. 2연에서는 유한한 지상의 시간에서 반짝이던 순간 멀어져 갈 때 오히려 그날의 약속을 안다고 했다. 지상의 향연은 모두가 황홀하지만 이내 소멸하는 허무가 있다. 그러나 천상의 향연은 영원한 황홀의 약속이다. 이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3연에서는 지상의 낙화도, 상처도 모두가 당신이 키우시는 열매이기에 그 은총의 기쁨을 알아야한다는 것이다. 4연에서는 자연을 비와 햇빛과 바람으로 키우시지만 인간은 당신의 말씀으로 키우신다는 것이다. 말씀은 까만 가슴을 채우고 끝내 우리의 등불이 된다. 그러니 기어도 즐거운 들짐승처럼 오직 한 마음으로, 온전한 사람으로 거듭나야 약속의 땅으로 갈 수 있다는 인생의 궁극적인 향연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약속의 땅, 인간의 온전한 향연은 어디서 이루어지는 것일까. 그것은 여기가 아닌, 거기가 된다.거기까지가야만 한다. “창공을 질러/ 이마를 비추는/ 빛나는 보좌 앞에/ 기다리며 서 계신 주님의 세계, 찬양과 아름다운 곡조와 온 땅에 가득 일렁이며 춤추는 나뭇잎과 꽃송이, 생명수 강가에서 찬미로 채우는 영혼의 바다, 하늘과 구름의 휘장 너머 수정 보석 반짝이는 집, 바로 그런 세계로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 온전한 향연의 완성이 된다.

시인이란 무엇인가. 단지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럴듯한 말재주로 묘사하는 기술자인가. 그러나 아무리 자연을 묘사한다 해도 자연 그 자체만큼 아름다울 수 있는가. 성경에서 예수님은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는 것이 이 꽃 바로 백합화 하나만 갖지 못하다 하였다. 그렇다. 인위적인 것, 문명적인 것, 시적인 것, 아무리 치장하고 묘사하고 흉내 내도 들에 핀 백합화 한 송이를 따를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그렇다면 시인이 진정 고민하고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은 자연의 겉모습이 아니라 자연의 내면에 숨어 있는, 진실을 발견하는 일이다. 자연을 통해서 들려주는 우주의 소리, 바로 조물주의 섭리를 깨달아야하는 것이다.

 

이처럼 채영선 시인의 이번 시집 향연은 사계절이 펼치고 있는 축제를 감동적으로 드러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상의 향연이 갖는 황홀한 소멸을 연민하면서 보다 온전한 향연은 지상과 천상이 함께 어우러지는 당신과의 향연인 것을 예언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여기에 채시인의 품격이 있고, 감동이 있고, 시적 구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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