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이 사람을 입을 때 / 김영교


 

몸에 살이 없는 나는 옷을 많이 껴입는다. 긴 소매 옷을 즐겨 입고, 늘 목이 시린 까닭에 스카프로 여러번 둘러 감싼다. 그 덕에 내가 멋을 부리며 유행을 좇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몸무게를 감당해주는 신발도 굽이 낮고 편한 쪽을 선택하다 보니 미적 추구는 뒷전이다. 그저 체온 조절을 우선으로 여기고 자연스럽게 입고 신는다. 

 

사람은 머리카락을 제외하면 다른 동물에 비해 털이 거의 없는 편이라 맨몸으로2408493358FB122407BEFB는 체열 손실을 피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목부터 감싸서 체온을 유지한다. 얇은 옷을 여러 벌 껴입기도 하고 겨울철에는 두꺼운 방한복이나 요새 흔한 가벼운 오리털 자켓으로 추위를 이겨낸다. 나처럼 저체온의 체질에는 이런 옷의 기능이 고맙기만 하다.

 

그런가 하면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만져지지 않는 옷이 있다. 내게 입혀진 내 자리라는 지금의 ‘옷’. 아내라는 자리, 엄마의 자리, 그리고 내가 지키는 모든 자리들이 하나님을 믿고부터 ‘나의 옷’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를 일으켜 세우고 나의 삶을 간섭하는 커다란 손이 직조한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베틀에 앉은 그 분의 손길이 몸을 움직일 때마다 살갗에 와 닿는 느낌이다.


지난 겨울동안 여러 차례 장례식에 참석했다. 조의를 표하는 검정 색깔의 옷을 입고 식장에 들어서면 관속에 누워있는 정갈한 망자의 수의에 고개가 숙여진다. 엄숙한 분위기에 젖는 일이 잦아지면서 떠남과 남겨짐에 대해 생각이 깊어지기 시작한다. 눈에 보이는 옷, 보이지 않는 옷, 훌훌 다 벗어놓고 남은 마지막 단 한 벌의 옷, 그것만으로도 족하다는 것을 남의 주검 앞에서 배운다.

 

첫 번째 암 투병 후 줄곧 나는 덤으로 산다는 생각뿐이었다. 살아 있는 게 시시각각 감사의 바닷 물결이 되어 나를 훌쩍 훌썩 울리곤 했다. 아들 둘이 아직 미혼이었던 그때는 엄마로서의 책임이 남아 일찍 떠나는 것이 두려웠다. 암으로 죽은 시어머니 부재에, 홀시아버지만 있는 집안에 어느 딸이 시집을 올까 걱정이 앞섰다. 그만큼 키워놓고도 어미가 해야 할 일이 남아있는 것 같아 두리번거리며 애착을 내보였다. 


이제는 설사 내가 남편보다 먼저 떠난다 해도 감사히 받아들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만큼 살았다는 것 자체가 이미 충분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웃은 오늘 내가 살아온 햇수만큼 살고 싶어 했지만 떠나고 말았다. 또 내게는 당연하게 찾아온 오늘이지만, 이 오늘은 고통 가운데서도 살고 싶었던 누26091C3858FB13161039EC군가의 내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감사해야 할 순간순간의 호흡이 바로 나의 삶이라고 믿게 되었다.

 

지금은 봄이다. 내 몸은 전에 없이 활기가 돌아 한결 더 입맛이 좋다. 건강해진 기분이 든다. 정원의 꽃들도 있는 힘을 다해 화려한 색깔의 꽃을 피운다. 나를 응원하는 듯 바람에 흔들려도 꽃대궁에 꽉 붙어있다. 내친김에 밝은 색깔의 옷을 입고 외출을 한다. 처음 병을 앓고 나서 한동안 입기를 꺼려했던 밝은 색상의 옷이다.


좀 튀는 게 아닐까 싶지만 튀는 대로 이제는 편안한 마음이다. 밝은 색상의 화사한 옷을 입으면 주변 사람들의 기분도 업(up)되고 하늘에서 보면 고운 사람 꽃으로 보일게다. 밝은 옷을 입고 활보할 때면 우리의 생활습관, 고정관념 지도도 쉽게 수정되고  찾아가는 방향도 유심히 살피게 된다. 바로 그 때가 큰 의미의 옷이 사람을 입고 앞서갈 때다. 


투병의 침상이 입고 있던 어둡고 무거운 걱정의 옷, 이제 털고 일어난다. 바로 자유로운 사고의 전환이다. 편견의 딱딱하고 굳은 생각들이 해체되고, 날카롭고 모질던 성격이 부드럽게 용해되는 느낌이다. 예감이 좋다. 기분이 좋다. 눈에 보이거나 마음에 보이거나 안팍으로 두려움을 박차고 생명을 향해 날아간다. 커다란 힘, 그 옷이 나를 입고 데리고 관리할 때 내게는 새로운 비상의 날개가 돋는다. 


설사 먼저 내가 떠나가도 남겨진 사람들과 함께 하는 하나님이 계시니 은혜의 제복을 입힐 것이다. 부활절이 다가온다. 고난의 이 순간도 주님이 나의 삶에 함께 한다는 믿음, 그 믿음의 옷 한 벌 입혀져 있으면 두려움은 없다. 부활은 죽음을 통해서만 입을 수 있는 생명의 옷이기 때문이다.

 

266FDB3B58FB12A6270C44


4/14/2017  김영굡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 창작수필 - 옷이 사람을 입을 때 / 김영교 [3] 김영교 2017.05.29 53
569 시 창작 - 보라색 음성 / 김영교 [4] 김영교 2017.05.25 75
568 수필 - 풍경속의 지푸라기 / 김영교 [4] 김영교 2017.05.25 107
567 시 창작 - 셀폰소리 / 김영교 [3] 김영교 2017.05.22 9151
566 시 창작 - 나팔꽃 / 김영교 [1] 김영교 2017.05.22 18466
565 여행수필 - 그리움은 흘러 / 김영교 [5] 김영교 2017.05.22 9570
564 창조문예 - 물의 길 / 김영교 [8] 김영교 2017.05.19 305
563 신작수필 - 스마트 바보 / 김영교 [10] 김영교 2017.05.15 397
562 신작 수필 - 어머니날 단상 / 김영교 [5] 김영교 2017.05.13 1134
561 신작시 - 윌슨(Wilson) 공원 / 김영교 [2] 김영교 2017.05.13 172
560 신작 시 - 해거름 녘 건너 / 김영교 [2] 김영교 2017.05.13 74
559 수필 - LAX 공항에서 / 김영교 4-16- 2017 [7] 김영교 2017.04.16 147
558 수필 - 사라의 작은 전시회 / 김영교 [2] 김영교 2017.04.13 67
557 수필 - 반려식물 / 김영교 [1] 김영교 2017.04.13 91
556 수필 - 스카티가 남긴 자국 / 김영교 [10] 김영교 2017.04.11 1340
555 신작시 - 껴안고 있었다 / 김영교 [8] 김영교 2017.04.09 258
554 신작시 - 내 마음의 소원 / 김영교 [6] 김영교 2017.04.08 128
553 신작시 - 넘보지 마라 겨울나무를 / 김영교 4-8-2917 [3] 김영교 2017.04.08 199
552 신작수필 - 눈물이 왜 날까 / 김영교 4-6-2017 [7] 김영교 2017.04.06 105
551 신작시 - 약속 의자 / 김영교 [4] 김영교 2017.04.05 57

회원:
1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15
어제:
9
전체:
647,2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