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오와에서 온 편지      (170529)


  청솔모라 불리는 털이 부실부실한 잿빛 다람쥐와 다른 땅 다람쥐는 여간 귀여운 게 아닙니다.

아기 쥐만 한 모습에 줄무늬가 뚜렷한 등을 구부리고 앙증맞게 앉아서 빤히 쳐다보다가 조르르

달려가는 모습을 담아두고 가끔 꺼내봅니다.


딸기를 먹는 것은 알았지만 딸기가 없을 때는 무엇을 먹을까 궁금했지요. 오늘 본 땅 다람쥐는

팬지 꽃 화분 뒤에서 무엇을 찾고 있었습니다. 무엇인가 오물오물 먹기도 합니다. 비바람에 빨리

지는 팬지 꽃은 노란 색과 보라색이 섞여서 예쁜 무늬를 만들고 있었는데 동글동글 웃다가 오므

리고 있더니 햇빛과 바람에 말라서 떨어집니다.


팬지꽃을 두 손으로 들고 먹고 있는 땅 다람쥐, 다람쥐가 꽃을 좋아하는지 오늘 알았습니다. 가을

에 핀 국화꽃은 토끼가 먹더니 꽃을 좋아하는 것이 사람만이 아니네요. 사슴을 피해서 만들어 놓은

울타리 안에서 백합은 열심히 꽃망울을 만들고 있습니다. 한 번 꽃을 피우기 위해서 겨울 차가운

땅 속에 숨어 기다리던 꽃의 사연이 궁금합니다.


알밤에서 나온 싹이 하도 기특해서 석달을  키우니 거의 60센티로 자랐습니다. 집안에서 자란 아기

밤나무는 야들야들한 이파리를 십여 장 매단 채로 키만 자라납니다. 창밖을 내다보려고 기웃거리는

밤나무를 오월이 다 지나가는 지금 밖으로 내보낼 생각을 하니 마음이 한 동안 심란했지요. 어린 것이

잘 버티어 낼까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손가락으로 비틀어도 부러질 가느다란 줄기를 두 군데나 고정을 시키고 철 그물 울타리를 해주어 정원

비탈진 곳에 밤나무를 심은 우리는 사뭇 기도하는 마음으로 잘 자라라고 일러 주었지요. 어린 나무 순의

냄새를 맡으면 사슴이 돌진할 지도 모릅니다. 어리고 약한 것은 언제나 공격의 대상이 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지만 그래도 잘 자라기만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영양흙 속의 뿌리를 보니 알밤은 거의 그대로인데 잔뿌리가 밖으로 여러가닥 나와 자라고 있습니다.

'참으로 묘하게도 자라는 구나' 알밤에서 싹이 나온 것도 신기하고 알밤 밖에서 나는 뿌리도 신기합니다.

땅은 이 모든 것을 감추고 담담하게 자기 할 일을 찾아서 하고 있는 것입니다.


땅속에 묻혀 있는 지나간 세월을 찾아서 평생을 바치는 분도 있습니다. 흙으로 덮여있는 것에서 모든 것을

복원해서 그 실상을 밝혀주는 것을 보고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기록에 남겨진 것뿐 아니라

오랜 압력에 견디며 숨겨진 사실도 또 하나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기록과 물자를 들여서 찾아낸

증거가 없으면 믿어지지 않는 것이 과학이 주도하고 있는 이 시대입니다.


과학은 우리에게 선물로 편리함과 정확함 그리고 모든 것을 도표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습니다.

그것으로 우리는 장래를 예견할 수 있고 준비도 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을 예견할 수 있다는 것은

아주 도움이 되는 일입니다. 특별히 인간에게 가장 어려운 일로 여겨지는 지진이나 지진으로 인한 쯔나미

같은 재난을 미리 알고 경고를 보내주는 일은 효과적일 것입니다.


아무도 자신의 장래와 미래를 예측할 수 없기에 인간은 불안을 숙명처럼 지고 살아갑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정신적인 혼란과 수습되지 않는 어려움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게 하는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여름

방학을 하는 오월 말 요즈음 이곳은 이상하게 더워지지 않고 있습니다.


더워야 할 때 덥지 않아도 추워야할 때 춥지 않아도 걱정이 되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이 따듯해야 하는 곳

에서 따듯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살얼음이 떠다니는 강가에서는 아무도

옷을 벗을 사람은 없습니다. 옷을 벗게 하는 것은 어린아이의 이야기처럼 따듯한 햇볕이지요. 힘 센 바람이

아무리 몰아쳐도 옷을 벗게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앞 정원, 옆집과의 사이 울타리를 23년만에 만들었습니다. 1미터짜리 조립식 울타리 여덟개에 기둥은

아홉개, 남편은 망치로 박아서 이어 세웠습니다. 울타리를 세우고 밤나무를 심느라 바쁜 하루, 앵무새

'키스'에게 무등을 해주지 못했더니 키스는 떼를 씁니다. 불을 끄니 놀자고 '쬭쬭쬭' 거리며 졸라댑니다.

뽀뽀를 하자는 건지 내가 좋다는 건지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마음을 따듯하게 해주는 '키스'가 있어 지나

가는 오월이 아쉽지 않은 밤입니다....










































댓글 0

문서 첨부 제한 : 0Byte/ 2.00MB
파일 크기 제한 : 2.00MB (허용 확장자 : *.*)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96 시 ㅣ 향연 - 소담 채영선 채영선 2017.07.16 3
» 아이오와에서 온 편지 - 소담 채영선 채영선 2017.07.16 1
94 수필 ㅣ 아기 오리와 어머니 채영선 2017.05.15 2
93 시 ㅣ 연어 채영선 2017.05.15 2
92 시ㅣ 어머니의 소망 채영선 2017.05.11 8
91 병 풍 채영선 2017.04.27 3
90 시와 자연과 당신의 향연 /홍문표 (채영선시집 해설) 채영선 2017.04.27 2
89 믿으니까 사랑하니까 -아이오와에서 온 편지 [1] 채영선 2017.03.19 9
88 '상' 주시는 하나님 -창조문학대상을 받고 채영선 2017.03.12 5
87 *아이오와 글 사랑*을 열며 채영선 2017.01.23 12
86 시 / 당신은 채영선 2017.01.23 13
85 채영선 제2시집 < 미안해 >해설 채영선 2016.12.22 30
84 채영선 시집 <사랑한다면> 해설 채영선 2016.12.22 38
83 모리아산에서 채영선 2016.12.07 27
82 무엇이 보일까 채영선 2016.12.07 4
81 높고 깊고 넓은... 채영선 2016.12.06 8
80 아기 오리와 어머니 채영선 2016.12.06 17
79 시 / 가을 나그네 채영선 2016.11.28 17
78 시 / 산책 채영선 2016.11.28 3
77 수필 / 놀라게 해서 미안해 채영선 2016.11.28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