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쌈김치의 창문

2018.03.21 22:35

김영교 조회 수:66

개성 보쌈김치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수필 창작 - 보쌈김치의 창문 / 김영교


<개성>은 지도상 이북에 위치하고 있다. 인삼과 선죽교 그리고 보쌈김치를 연상하게 되는 개성은 ‘개성상인’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개성>이 고향인 어머니로 인해 보쌈김치에 대한 입맛은 바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며 고국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진다.

 

보쌈김치는 배추 잎사귀를 휘감아서 담 군 보쌈한 통배추 김치다. 어머니의 보쌈김치는 무, 배추, 낙지, 표고, 대추, 배, 밤, 실고추, 잣, 북어, 생강 등 고명과 양념이 특색이었다. 도마 위에 배추 잎을 두서너 개 겹쳐 펴놓은 그 위에 배추 웃도리 썬 것을 곱게 놓고 배추 속 재료들을 모양 좋게 사이사이 넣는, 자랄 때 보아온 행사로 기억에 남아있다. 배와 무, 북어를 맨 위에 얹고 배추 잎으로 조심스럽게 보따리를 싼 그 손끝은 예술품을 다루듯 섬세하고 신중했다. 그 다음 독에 차곡차곡 담아 넣고 젖, 굴이나 육수로 간을 적당히 한 후 독을 봉해 알맞게 익혀 맛을 낸 어머니 솜씨는 과연 <개성여자> 다웠다.

 

이처럼 정성과 수고가 만들고 적당한 시간이 엎드려 있어야 맛이 드는 보쌈김치는 어느 김치도 따를 수 없는 것이다. 모양새도 일품이고, 영양도 우수하여 <개성>의 명물로 군림, 손색이 없었다. 평생 동안 먹고 즐길 줄 알았던 보쌈김치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식탁에서 그만 사라졌다. 어머니가 그렇게 빨리 우리 곁을 떠날 줄 알았더라면 배워둘 것을 지금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가족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은 보쌈김치 안에 살아있고 형제간의 우애를 다독여주곤 한다.

 

세상이 변하여 입맛도 <패스트푸드>나 <인스턴트 푸드>에 잘 길 들여 지고 있다. 손쉽고 빠른 속도의 음식이 시대의 흐름에 맞고, 보쌈김치는 그 번거로움 때문에 이제는 맛보기조차 힘들어졌다. 아쉬운 것이 어찌 이 보쌈김치 뿐 이겠는가. <스피드>문화에 쫓기다보니 식탁을 둘러싼 정겨운 가족의 울타리가 허물어지고 있다. 음식이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고 사람이 음식에 맞추어 살아가고 있는 느낌이 마저 들어 많이 쓸쓸해진다. 애들은 자라 꿈을 향해 둥지를 떠나갔다. 빠르고 바쁜 현실이 자꾸 집 밥을 그리워하게 만든다.

 

언젠가 뉴욕 출장 중 뉴욕 한 한국식당*에서의 회식을 할 때였다. 그곳 식탁 위에 오른 반가운 음식 한 접시가 나의 눈을 몹시도 부시게 했다. 놀라웠다. 어머니를 대한 듯 그리움이 솟아올랐다. 보쌈김치와 극적 대면! 따뜻하게 내 가슴에 스며들었다. 그날 밤 어린 소녀가 되어 어머니 곁에서 신나게 노는 행복한 어린 날을 꿈 꾸었다.

 

보쌈김치에 포개어져 떠오르는 모습은 어머니 외에도 한 살 아래 사촌 동생 <희>가 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후배인 <희>는 두 집 건너 이웃에 살면서 자기 집 드나들 듯 했다. 놀러 와 공부도 함께 하며 밥도 같이 먹고 특히 보쌈김치를 좋아했다. 심성도 착하고 특히 맑고 예쁜 눈망울을 가진 참으로 고운 아이었다. 눈을 반짝이며 더운 밥 위에 보쌈김치를 덮어 먹을 때에 입김을 홀홀 불던 모습이 군침 돌게 눈에 선했다. 볼우물이 패이면서 사각사각 김치 씹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 보고 싶은 애틋한 마음이 지금도 나를 휘여 잡는다.


한국은행 외국부에 취직이 되어 기쁘다는 편지를 받은 게 내가 미국에 유학 온 후 있었던 왕래였다. 약혼자와 함께 영국으로 떠난다는 편지가 마지막이었고 소식이 두절된 채 생사를 모르는 큰 딸 <희> 때문에 부모님이 상심 중이라며 동생 <은>과 <선>이 연거푸 행방을 물어 왔다. 나는 조바심이 났고 궁금했고 안타까웠다. 미국에 살면서 동창회에 간다거나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는 그녀의 소식을 수소문했으나 알 길이 없었다. 이렇게 보쌈김치와 <희>는 내 곁에서 서서히 잊혀져갔다. 


늦가을 어느 날이었다. 서울서 날라 온 큰 오라버니의 서신 속에 신문기사 한 토막을 발견하고는 놀라움에 몸이 떨려왔다. 그것은 그녀가 살아있다는 반가운 소식인 동시에 대남 방송 아나운서로 활동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곡절 있는 함정 같았다. 학창시절엔 수석입학과 줄곧 우등생으로 지낸 명석한 두뇌의 동생이었다. 영특하고 사리판단이 올바른 <희>가 어찌된 일일까! 살아있는 것만도 눈물겹도록 고마웠다. 불안한 마음과 안도하는 감정이 서로 엇갈리며 미묘하게 참착한 심정이 되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남북의 창’이란 이곳 TV 프로그램을 통하여 <희>는 대남 방송원으로 활약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그녀의 실종은 아픈 상흔이었고 미스터리였다. 그 숫한 세월, 봄이 수십 번 지나가는 동안 상심한 부모님 다 돌아가셨다. 여러 해 애가 타고 식음을 전패한 서울 가족들에게 <희>는 편지 한 장 보낼 수 없었단 말인가. 생존소식은 한없이 기쁘지만 이미 세상을 떠난 부모님에게 무슨 위안이 된단 말인가? 아련하게 떠오르는 그리움의 대상, 어머니 다음으로 <희>는 보고 싶고 얘기하고 싶고 같이 웃고 싶은 사람, 손 뻗으면 닿을 듯 가깝게 다가선 그녀의 생존 소식은 기쁘지만 서로 만날 수 없는 것이 애석했고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지구촌에는 지금 역사의 해빙기가 손짓을 한다. 무서운 왕래와 미소를 남쪽으로 띄우며 다급해진 정책이 핵발전소의 물결을 타고 세상을 향하고 표정을 만들고있지 않는가. 이산가족의 슬픔이 소망으로 대치되어 상봉의 꿈이 언제 또 이루어질까. 수많은 가슴들이 복받치는 애통함을 쥐여 짜며 통곡으로 땅을 치며 안타까워해도 세월 앞에 먼저 죽어간 어이없는 인연과 외로운 늙음은 벌어진 세월을 메 꿀 길이 없는 분단의 비극임을 부정할 수가 없다. 분단은 피를 말리는 산 역사다. 지금 세계의 시선이 북쪽에 쏠리고 있다. 핵 포기는 게임이 아니다. 동족의 생사가 달려있는 위기라면 첨예위기상황이다. 경제적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평화통일의 절호의 기회일 수 도 있다는 시각도 있다.

 

이제 보쌈김치 만드는 작업은 우리의 몫이다. 소매를 걷어 부치고 온 정성을 쏟아 보쌈김치 담그는 데에 몸과 마음을 던져야 할 사이버 시대에 와 있지 않는가. 두 팔과 두 가슴을 활짝 열고 더럽혀진 이념일랑 소금에 절이고 절여야하리. 온정과 양보를 양념으로 하여 통일의 맛을 내는 보쌈김치, 이 사랑의 보쌈김치를 멀고도 가까운 이웃과 나누어 먹는 그 날이 오면 나는 달려가 뜨거운 가슴으로 <희>를 찾아 껴안고 뺨을 부빌 것이다. 어머니의 보쌈김치 전설이 담긴 개성, 그 도시 입구에서부터 소리 지르며 달려가 감격하고 환호할 것이다. 보쌈김치 창문은 분단의 멍에를 벗고 선진국 진입에 입성할 넓은 세계화의 물결을 펼쳐 주리라는 예감은 비단 나 혼자만의 기대는 아닐 것이다.

 

*LA에서부터 알고 지냈던 식당주인 J여사. 

*일년 내내 볼수 있는 이곳의 가을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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