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가 찬양곡이 되어 -  김영교


교회 같은 목양 가족인 김권사는 새벽예배는 두 블록 떨어진 이웃교회에 참석한다. 나도 그렇다. 몸이 좀 불편하거나 사정이 생기면 멀리있는 본 교회까지 못가고 이웃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드린다.

 어느 날 김권사는 며누리와 '주님세운 교회' 라는 찬양곡을 놓고 서로 의견이 달랐다. 시어머니 김권사는 여러 번 불러본 경험이 있었다. 그 복음성가를 확인하고 싶다며 연락이 왔다. 분명한 것은 4절까지 있는 그 곡의 원본을 내가 잘 간수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댁 며느리는 인터넷을 검색해 보고 작곡, 작사자 같은 이름 한 사람이라고 우기자 시어머니는  내 친구 시라고 맞섰다. 내 이름이 아니라는 젊은 며느리를 바로 잡아 주고 싶어 본인인 나에게 문의해 온 것이다. 

 그게 뭐 그리 중요한가 싶었다. 내가 지은 시가 분명한데, 했다. 어떻게 바로 잡을 수 있는지 나는 그 길도 모른다. 


 몇 해 전 나의 시를 백경환음악 목사가 곡을 붙쳐 LA 연합성가대가 컨벤션센터 이민100주년 기념행사 때 발표한 적이 있었다. 역사적이었고 그 감동은 아직도 심장을 뛰게 한다. 졸시가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 올라 사람들 마음마다 시원케 했다면 감사 할 일 아닌가. 

 친구 권사는 서울 큰 아들네에 거의 일 년씩 살다 지난달에 돌아왔다. 김 권사를 만나니 그때 그 문제의 찬양곡 귀추가 궁금해졌다. '주님께서세운 교회'를 검색해보았다. ‘주님께서 세운 교회’ 그 곡을 여러 교회 찬양대가 보통 때 또는 큰 행사나 절기에 맞게  아름답게 부르는 공연실황이 유튜브에 뜨고 있었다.

 반가웠다. 기뻤다. 한편 미아가 된 뻔한 내 시는 아름답게 사람들의 가슴을 날고 있었다. 그 시의 주인인 나도 이렇게 살아있어 그 감격을 누리고 있으니 다행 한 일임에 틀림없다.

 몇 년 전이다. 나는 투병중이 었고 본 교회 그 먼 거리 운전이 버거웠다. 집 가까운  교회에 출석했다. 그때 교회에서 공개 공모가 있었고 나는 나의 시를 4절까지 제출했다. 그리고 그 후 곡이 붙여져 세상에 나오게 됬다는 게 내가 아는 그 경로의 전부다. 

 작곡가는 분명 음악성이 높은 전문가란 생각이 들었다. 감사할 일은 작곡가가 곡을 잘 붙여 시를 격상시켰다는 점이다. 참으로 아름답다. 교회마다 창립기념일 때면 주제곡처럼 불러 기쁨을 누린다. 탐색이나 추적이 서툰 나는 여태 침묵하고 있었지만 친구인 시어머니 권사와 그댁 며느리 집사의 흑백은 가려줘야 될 것같다. 

 

 무엇보다도 내가 쓴 시가 좋은 곡에 업혀 날개 돋아 안가는 데가 없이 날아간다면 내 시는 행복한 시임에 틀림이 없다. 시 가사도 중요하지만 아름다운 곡이 그 근본을 이루는 생명력이기 때문이다. 감동, 울림 때문이다. 찬양대의 아름다운 화음으로 세상이 밝아 진다면 성가곡은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바로 마음을 기쁘게 바꾸는 은혜! 시가 거듭나는 순간이다. 


 엄마가 쓴 시가 날개를 달고 은혜의 창공을 날아 오를 때 우리 집 애들이 듣고 얼마나 좋아할까 싶다. 그래서 더욱 바로 잡고 싶다. 방법이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