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예찬

 

한국의 잡지광고에 유아복, 아동복, 장난감등 선전에 동원된 아이모델들은 백인종 일색이다. 나는 이런 잡지를 보던 어떤 미국백인에게서 한국에는 아이가 없느냐는 빈정대는 질문을 받아보았다. 약간 혈압이 올라갈만한 질문이었는데 나는 한국아이들은 모델료가 비싸서 경비절감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타 인종 모델을 쓴다고 하더라고 되받아준 적이 있다. 그래도 입맛이 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미장원, 여자 옷 등의 광고에 동원된 미인모델들도 백인종이 꽤 많다.

그런데 이 심술궂은 백인은 또 아시아 사람은 기개가 없으니 이름의 첫 글자를 대문자로 쓰지 말고 소문자로 써야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화내는 대신 점잖게 말해줬다.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작게 시작해서 크게 끝내는 민족이기 때문에 이름도 소문자로 시작해서 마지막 글자를 대문자로 쓴다.” 라고 되레 빈정거리고 웃어줬던 기억이 있다. 짜식, 찍 소리 못하고 히, , 웃은 것으로 미루어 내가 이긴 모양이다.

한국에서 잠시 방문차 왔다는 어떤 정신과의사가 강의를 한다고 해서 가보기로 했는데 그 사람 하는 일이 뭔지 알고 가야할 것 같아서 그 사람 웹페이지에 들어가 보니까 그 의료실이 강남구 어딘가에 있다는데 사진에 있는 환자모델로 나온 사람들이 거의 모두 백인이고 몇 명 백인이 아닌 사람이 있기는 한데 한국사람은 하나도 없다. 이 웹페이지는 한글로 씌어져 있고 이 의료실의 주 고객 아니면 모든 고객은 한국인일 터인데도 한국인모델은 한 명도 없는 것이다. 이것은 광고를 내고 있는 업체의 잘못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게 백인 또는 비한국인 모델을 써야만 광고효과가 있고 장사가 되기 때문이라면 문제는 커진다. 한국인의 의식구조에 문제가 있다면 이것은 치료기간이 꽤 오래 걸리는 중병에 속하는 문제인 것이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운송업에 종사하고 있으므로 창고에 화물을 배달하거나 수령해가기 위해서 트럭이 많이 오는데 한가하다가도 바쁜 날에는 길에 트럭이 여러 대 줄서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경우가 있다. 그런 어느 날 같이 일하는 직원이 내게 와서 한국사람 바꾸라고 호통 치는 전화가 있다고 해서 얄궂은 한국사람이 나 하나밖에 없는 회사이므로 내가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 저쪽에 있는 사람이 자기가 무슨 무슨 회사의 사장이라면서 외국인 백인운전수를 보냈는데 줄서서 기다리게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대뜸 호통을 친다. 외국인 백인운전수라면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었더니 미국사람이라는 것이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당신이나 내가 외국 사람이지 미국에서 사는 미국사람이 왜 외국 사람이냐고 핀잔을 주면서 웃었다. 이 한국사람 사장은 몸만 미국에서 살고 있지 정신 상태는 한국에 그냥 남아 있는 사람이다.

이 사장이라는 작자처럼 백인을 우월하다고 보고 백인을 기다리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멍텅구리 열등생이 꽤 많이 있다는 것은 슬픈 노릇이다.

내가 나의 존엄성을 스스로 파기할 때 어떻게 남이 나를 존경하도록 기대할 수 있겠는가.

 

(201999일 조선일보 김영문의 응접실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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