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쓰는 우리 문인들에게 드리는 글

2013.01.30 05:21

김영문 조회 수:558 추천:29

소설 쓰는 우리 문인들에게 드리는 글 어제 2013년 1월 26일 토요일, 미주 소설가 협회 회원들은 전상미 회장님의 우아한 자택에서 즐거운 모임을 가졌습니다. 길눈이 어두운 저는 한 번 갔던 집안의 화장실을 다시 찾아 가는 데에 애 먹을 정도로 큰 집에 혼자 사시는 회장님의 적적함을 덜어드리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이 저택에서 더 자주 모임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혹시라도 합숙 훈련을 하게 되면 침실이 여덟 개나 된다는 이 집이 아주 적합합니다. 레이몬드 카버 (Raymond Carver)를 역설하신 황숙진씨의 진지한 토론을 경청했고 오늘 아침 이 카버라는 사람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고 싶어서 인터넷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한글 번역본으로 되어 있는 "대성당 Cathedral"도 읽어 보았습니다. 역시 황숙진씨가 말한 대로 읽어볼 만하다는 생각입니다. 큰 사건이나 긴장감이 감도는 특별한 대립이 없이 일상에 있을 수 있는 일을 담담하게 써내려 간 것 또한 돋보이고 배워야 할 항목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지루하지 않게 읽혀지는 장점도 있습니다. 이 작가에 대해서 Wikipedia에 들어가서 살펴 보았습니다. 1938년 5월 27일에 태어나서 1988년 8월 2일에 51세로 사망했다고 하므로 그렇게 길게 산 사람이 아니군요. 알코올 중독으로 갱생 센터에 수용되어 오래 동안 치료를 받은 경험도 있다고 합니다. 박계상 선배님의 마리후아나 천국 이야기가 생각나서 이 사람이 과연 글을 쓰는 영감을 얻기 위해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는지 확인해 보았는데 본인은 그렇지 않다고 부인하고 있습니다. 가난에 찌들은 생활고와 살아야 한다는 무거운 압박감이 알코올을 불러온 것은 아닌지 의심한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가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이 작가가 명성을 얻고 돈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첫 번째 한 것이 마치 마켓이나 리커 스토어를 해서 돈 번 한국 사람이 하듯이 그 원수 같은 캐딜락인지 벤츠인지 하는 고급차를 샀다는 점입니다. 여하튼 이 작가의 첫 번째 아내인 마리안 버크 카버Maryanne Burk Carver는 그 회고록에서 카버의 알코올 중독에 대해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1974년 가을이 되자 그는 살아 있다기 보다는 더 죽어 있는 쪽에 속했다. By fall of 1974, he was more dead than alive." 이 작가 레이몬드 카버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그 주위에서 교우하며 같이 글 쓴 사람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몇 명 열거하자면 죤 가드너 John Gardner, 테스 갤러거 Tess Gallagher, 죤 취버 John Cheever등입니다. 이 사람들과는 어떤 관계에 있었으며 어떠한 영향을 받았는지 알기 위해서는 또 이 사람들의 웹 페이지를 찾아서 들어가 읽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면 또 그 속에 다른 이름들이 나오고 다른 알아야 할 사항이 생기고..... 마치 미로 속을 헤매는 꼴이 되어 버립니다. 별로 도움이 되지도 않는 정보에 질질 끌려 다니지 말고 어느 정도 선에서 끊어 버려야 합니다. 죤 가드너 John Gardner는 제가 이미 십여 년 전에 작품을 접했던 사람인데 이 사람이 쓴 소설가 수업에 관한 책이 아주 유명합니다. "The Art of Fiction"과 "On Becoming A Novelist" 두 권이 아주 요점만 추려서 이해하기 쉽게 글쓰기 기법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좋은 그 두 권을 모두 읽은 내가 아직도 소설다운 소설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은 책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책을 읽은 제 자신의 능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라는 망신스러운 사실을 이 자리에서 엄숙히 이실직고합니다. 이 책은 적극 권장하고 싶은 책들입니다. 유감스럽게도 한글 번역이 안 되어 있는 모양입니다. 혹시나 해서 인터넷에서 "죤 가드너"라고 한글로 타자했더니 이 사람 책이 우리 말로 번역되어 나온 소설이 있군요. "그렌델"이라는 소설인데 이 것은 내가 읽어보지 못한 책입니다. 레이몬드 카버는 1972년에 몬타나 대학 편집장이었던 다이안 씨슬리Diane Cecily라는 여자와 바람을 피우기 시작할 때쯤에 알코올에 빠져 들어갔습니다. 그 후 위에 적은 테스 갤러거 Tess Gallager라는 여류 시인과는 1977년 11월에 텍사스 주 달라스에서 있었던 작가의 모임Writer's Conference에서 만나 서로 눈이 맞아서 미주 오만군데를 돌아다니면서 동거하다가 1988년 네바다 주의 리노에서 두 번째 결혼을 했습니다. 이 때에는 카버가 이미 폐암 말기에 있었고 결혼하고 6주 후에 그는 사망했습니다. 유언을 남기기를 테스 갤러거에게 모든 유산을 상속해 주라고 했다는데 첫 번째 아내 마리안에게 뭘 남겼다는 기록은 없는 것으로 미뤄봐서 역시 XX놈인 남자가 더러 있는 것 같습니다. 첫 번째 아내 마리안은 그 결혼 생활 기간의 마지막 몇 해 동안을 카버에게서 육체적 정신적 학대를 당하면서 살았고 주위에서는 이혼하고 남편을 버리라고 충고 했는데 마리안은 이렇게 말했다고 회고록에 적고 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진짜 마지막 까지 버티고 오래 동안 같이 있고 싶었습니다. 나는 그의 알코올 문제보다는 나의 사랑이 더 길게 지속되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를 위해서라면 나는 무엇이던지 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그 남자를 사랑했습니다, 첫 번이고 마지막이고 또 항상. But I couldn't. I really wanted to hang in there for the long haul. I thought I could outlast the drinking. I'd do anything it took. I loved Ray, first, last and always." 레이몬드 카버의 작품에 대해서 혹자는 미니멀리즘Minimalism이라고 평가했다는데 카버는 이 것을 그리 달갑지 않게 생각했다는군요. 도무지 미니멀리즘이 무엇인지 찾아 보았습니다. 우리 말로 아마 간결 주의 또는 함축 주의 또는 축소 주의쯤으로 해석되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미니멀리즘이란 어떤 디자인이나 스타일이 가장 간결하고 가장 적은 요소를 써서 함축적으로 최대의 효과를 창조해내는 것이다. Minimalism is any design or style in which the simplest and fewest elements are used to create the maximum effect." - Wikipedia에서. 말하자면 이미 인공적이고 복잡 다단한 사회가 더욱 더 그 방향으로 치닫고 있는 데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 운동이 아닌가 생각되는군요. 이 것은 미술, 음악에서 시작되어 문학으로 번져 나갔고 지금 또 한글로 된 인터넷을 찾아보니까 심지어는 미니멀리즘 화장 법 (젊은 세대의 속어로 "쌩얼/생 얼굴?"), 미니멀리즘 옷 입는 법 등으로도 쓰고 있는 모양인데, 하, 하, 외래어 좋아하는 그 쪽 사람들 온갖 것에 다 갖다 붙여서 폼 잡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이 것이 새로운 것은 아니라는 느낌입니다. 어네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에리크 마리아 레마르케Erich Maria Remarque등의 작품에서 이미 많이 사용된 기법인 것 같습니다. 영문학에 Understatement (큰 사건을 별 것도 아닌 것처럼 작게 표현하기. 남성적 기질 또는 마쵸Macho 냄새가 나는 표현 법) 라는 것이 있는데 이 것과는 또 어떤 상관 관계가 있는지 한 번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좀 더 광활하게 해석하자면 요새는 리런Re-run도 하지않는 그야말로 구닥다리가 된 죤 웨인 출연의 서부 영화에서도 많이 보아온 수법입니다. 모든 주의-ism는 어떤 창작품이 먼저 있고 나서 그 뒤에 그 이즘-ism이름이 따라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창작하는 사람이 의도적으로 나는 미니멀리즘으로 만들어야 하겠다, 아니면 낭만주의로 써야 하겠다, 라고 처음부터 작정하고 시작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더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방법은 만들어 놓고 보니까 남들이 그 것을 미니멀리즘이라고, 또는 낭만주의라고 평가하더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레이몬드 카버의 경우도 여기에 해당합니다. 써놓고 보니까 남들이 미니멀리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이지요. 그렇잖아도 제약이 많은 사회에서 온갖 부자유를 강요 받으면서 사는데 - 세금 안 내면 탈세범, 교통 규칙 안 지키면 벌금, 남의 여자 다리 좀 쳐다보면 흉칙한 놈, 술집에서 만난 화장 짙은 여자하고 은밀한 데이트 한 번 하면 부정(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술 마시고 기분 나서 음담패설 한 번 하면 음침한 놈, 옳은 소리 한 마디 하면 입 빠른 놈, 교회를 자주 가지 않는다고 하면 이교도, 등등, 등등 - 하, 이런 판에 내가 내 공간 속에서 내 백지 위에 내 연필을 가지고 내 생각을 내가 선택한 자유로운 시간에 내 식으로 써 내려 가겠다는데 여기에 리얼리즘으로 써야 한다던가, 미니멀리즘, 낭만 주의, 뭐 이러면 이 거 숨통 터져서 어떻게 삽니까? 작품이 무슨 주의-ism냐 하는 것은 작가가 말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평자나 유식한 독자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권소희씨가 모임에서 말한 것 처럼 우리는 모두 도토리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올챙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분명히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는 기개 있는 도토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체성이 강하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위대한 올챙이입니다. 권소희씨가 우리는 모두 도토리라고 말했을 때 이 말 속에는 자의식적이면서도 또 한계를 뛰어 넘고 더 높아지기 위한 치열한 도전 의식과 열망이 들어 있다고 나는 풀이했습니다. 권소희라는 이 고집스럽고 콧대 높은 여자를 내가 좋아하는 이유는 이 여자가 이따금 이렇게 꽤 똑똑하고 들을 만한 말을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했다는 사실은 성공했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공부해야 한다는 사실에 이의 있을 사람은 없습니다. 어떻게 더 많이 알고 어떻게 더 많이 공부해야 할 것인가 하게 되면 이게 고양이 목에 방울을 어떻게 달 것인가 하는 문제가 되어 버립니다. 또한 우리는 얼마 만큼이나 더 공부하고 얼마 만큼이나 더 알아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해야 합니다. 우리는 가야할 앞길이 창창한 학생이 아니지 않습니까? 유감스럽지만 젊은 시절 그 아까운 시간 모두 낭비한 후 이제 우리에게는 한정된 시간과 한정된 에너지만 남아 있습니다. 이 안타깝도록 조금 남아 있는 자원을 우리는 다른 사람이 한 것을 공부하고 배우는 데에 쓸 것인가, 아니면 내가 나의 것을 만드는 데에 투자할 것인가, 둘 중의 한 가지만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선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당연한 노릇입니다. 우리는 우리 것을 만드는 데에 우선권을 두어야 합니다. 우리는 문학사를 다루는 학자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좋은 재료를 끌어 모아 잘 반죽하고 그 재료를 적절히 써서 우리의 창작품을 빚어내고 싶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우리 것을 만들어내고 싶어하는 기개 있는 도토리이고 위대한 올챙이입니다. 인간성 좋고 성격 무난하다고 칭송 받고 교회 잘 다니고 친구 관계 원만하고 집 월부금, 차 월부금 밀리지 않고, 세금 잘 내고 일 년에 한 번이나 두 번 정도만 과속 운전 티켓 받고, 음주 운전 기록 없고, 남의 돈 안 떼먹고 주위에서 좋은 사람이라고 칭송 받는, 이런 보통 사람이 글을 쓴다면 그 창작품은 그런 보통의 창작품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사람이 보는 인생의 시각은 그런 보통의 일상일 뿐일 테니까요.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우리 일상의 테두리를 벗어나서 비정형을 볼 수 있는 눈입니다. 그 것을 볼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렇게 본 것을 여과해서 창작품으로 써낼 수 있는 두뇌입니다. 우리가 워크숍Workshop을 한다면 저는 진정 이렇게 우리의 테두리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서로에게 알려 주고 내가 볼 수 있는 지평의 한계점을 뛰어 넘어서 다른 사회, 다른 상황, 다른 사람의 다른 인생을 듣고, 울고, 분노하고, 또 기뻐하면서 서로에게 자극이 될 수 있는 경험을, 정보를 나누는 것이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독자의 심금을 울려 주고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는 좋은 글을 써내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만큼의 이론 터득을 해야 하겠지만 그러나 이론 터득에 너무 치우쳐서 본업을 팽개쳐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입니다. 내가 써 놓은 것을 남이 비판할 때 우리는 경청해야 합니다. 내가 써 놓은 것을 남이 "비난"할 때에도 우리는 들어야 합니다. 듣고, 이해하고, 판단해서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는 혜안이 있어야 합니다. 혹독한 비난에도 미소 짓고 절대 좌절하지 않는 강심장이 필요합니다. 가장 잔인한 비난에도 마치 신체 장애아를 키우는 어머니처럼 남의 찌푸린 눈총을 개의치 않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내가 낳은 아이가 설혹 남의 아이들처럼 건강하지 못해도 이게 내 새끼 아닙니까.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는 소설 쓰기의 새로운 기법을 배우고 현세의 흐름에 맞아 들어가서 문학성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는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본국을 떠나서 사는 사람의 불이익 또한 거기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뒤집어서 생각하면 우리가 본국이 아닌 곳에서 살기 때문에 도리어 유리한 것도 많이 있습니다. 한국에 사는 사람들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하는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말하자면 우리가 글 쓰는 재산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 있는 사람이 쓴 글인지 아니면 미국에서 사는 사람의 글인지 모를 그런 소재를 가지고 글을 썼다면 그 글은 시대의 사조와 스타일에 맞는 것인지, 그 문학성이 얼마나 현대적 가치에 부합하는 것인지가 평가의 기준이 되겠지요. 그러나 한국에서 생각할 수 없었던 상황과 소재를 가지고 쓴 글이라면 이미 그 것만으로도 충분히 주의를 끌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심언씨가 쓴 스페인 내전에 대한 장편 소설은 미국하고는 관계 없는 소재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좋은 예가 되겠습니다.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던 한국인이 있었다는, 생각할 수 없었던 소재를 들고 나와서 고증하고 기록을 찾아내서 뼈대를 만들고 거기에 작가의 상상적 살을 붙여서 써내려 간 이 소설, 또는 스토리 텔링은 (나는 장편 소설과 스토리 텔링의 차이를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더 알아보고 공부해야 할 부분입니다.) 읽기에 흥미진진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한국을 떠나서 사는 우리의 상황을 불리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적극적 사고로 유리한 장점으로 돌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꽤 오래 전에 우리 문학계의 원로 되신다는 분이 먼데서 와서 강의하면서 자기가 불란서의 실존주의 작가의 유명한 단편을 원서로 읽었다고 해서 감탄하고 부러워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이 분이 그 단편의 영어 번역본을 낑낑거리면서 한 반쯤 읽은 모양이더군요. 불란서 작가가 불란서 말로 쓴 것을 불란서 말로 읽어야 원서 읽은 것이지 영어 번역본을 읽은 것이 어떻게 원서 읽은 게 됩니까? 더구나 왜 그 작품을 영어 번역본으로 읽어야 합니까? 그 작품은 아주 잘 되어 있는 우리 말 번역이 벌써 오래 전부터 나와 있는 작품이었는데. 겉 멋 가지고는 안 됩니다. 알맹이가 들어 있어야 합니다. 남들이 놀러 다닐 때에 우리는 앉아서 글을 써야 합니다. 보통 사람들이 시간 허비할 때에 우리도 따라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는 보통 사람이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는 기개 있는 도토리이고 위대한 올챙이입니다. 우리는 글을 통해서 삶을 말하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인생의 마지막 부분을 찬란하게 장식할 사람들입니다. 사실 나도 젊을 때에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많은 아까운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미주 소설가 협회 모임"이라고 현판을 쓰는데 큰 글자로 쓰다 보니까, 어, 자리가 모자라, 그래서 끝에 있는 "협회 모임"이라는 글씨는 아주 조그맣게 되어 버리는 것처럼 인생이 그렇게 되어 버린 겁니다. 그러나 어찌 되었건 계속 쓰기로 합시다. 계속 말입니다. 마냥 퍼져서 후회만 하고 있으면 누가 알아 줍니까? 지금 이 글은 미니멀리즘Minimalism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꽤 장황하게 떠벌렸으니까요. 회원 김영문 (2013년 1월 27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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