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 두 마리

2010.10.22 23:30

정찬열 조회 수:986 추천:97


  아침에 출근을 하려는데 어디선가 푸드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집안을 둘러보니 벽난로 안에 청둥오리 한 마리가 들어 있다. 굴뚝에 들어와 허둥대다가 지쳐서 밑으로 떨어진 모양이다. 집 뒤에 산타아나 강이 있어 이따금 오리들이 뒤뜰에 날아오는 일은 있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꺼내어 날려주려고 벽난로 문을 여는데 그 새를 못 참아 문틈으로 후르르 날아오른다. 방안을 이리저리 헤매더니, 아니나 다를까 유리창에 머리를 부딪쳐 기절을 하고 만다.
정신을 잃고 누워있는 오리를 보면서 불법체류자 김선생 얼굴이 떠올랐다. 오래 전 엘에이 공항을 통해 입국해 체류기한을 넘겨 불법체류자가 되어버린 그 사람. 맘대로 들어는 왔지만 이리 밀리고 저리 채이며 출구를 찾지 못해 기진맥진 상태가 된 그의 모습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리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유리창을 열어보니 오리 한 마리가 꽥 꽤-액 소리를 지르며 지붕 위를 날아다닌다. 쓰러져 있는 오리의 짝인 모양이다.
  쓰러진 오리를 품에 안고 깨어나길 기다렸지만 한참이 지나도 녀석이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얼마나 지났을까, 깨어난 오리를 붙들고 뒤뜰에 나왔다. 기다리던 녀석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반갑다는 듯, 빨리 놓아주라는 듯, 내 머리 바로 위를 날아다니며 설쳐대는 모습이 죽음을 불사하고 금방 나를 덮칠 기세다. 오냐, 오냐, 알았다. 오리를 후르르 날려주었다. 오리 두 마리가 푸른 하늘로 나란히 날아간다.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퇴근 후, 강가로 산책을 나갔다. 강둑을 걷는데 몇 걸음 앞에서 오리 두 마리가 서성거린다. 가까이 가도 날아가지 않고 꼬리를 흔들거나 주둥이를 앞으로 내밀며 아는 채를 하는 성 싶다. 오리들이 이따금 길에 나와 있기도 했지만 오늘처럼 한동안 앞서 걸었던 적은 없었다. 그래서 혹시 아침에 날려준 두 마리 오리가 나를 알아보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러 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집에 돌아와 차 한 잔을 앞에 놓고 오리 두 마리를 다시 떠올린다. 굴뚝에 들어왔던 오리는 왜 들어온 구멍으로 되돌아 나가지 못했을까. 너무 당황하여 허둥댄 탓이 아니었을까. 좀 더 차분하고 침착하게 출구를 찾았더라면 벽난로에 떨어지는 최악의 상황까지는 가지 않았을 게 아닌가.
  지붕 위를 맴돌며 사라진 짝을 애타게 기다리던 한 마리 오리, 그 녀석의 모습이 눈에 더 생생하다. 비록 미물이지만 덜된 사람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든다. 아침 내내 애타게 기다렸을 녀석의 심정을 헤아려본다. 함께 마실을 왔다가 혹은 먹이를 구하기 위해 나왔다가 짝이 갑자기 굴뚝에 빠져 허위적 거렸을 때 얼마나 놀랐을까. 죽음에 처한 모습을 빤히 보면서도 구해내지 못한 그 마음은 또 얼마나 아프고 쓰렸을까.
  불법체류자 김선생. 그리고 지금도 한국에서 아이를 기르며 오년이 넘게 기다리고 있다는 그의 아내를 함께 떠올린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현상이 부부사이 까지 만연 되고 있다는 보도가 때로 우리를 우울하게 하고, 기러기 부부로 사는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해 가정을 놓쳤다는 이야기가 들리기도 한다.
  꿋꿋하게 살아가는 우리 김선생 부부. 지금은 비록 힘들지만, 벽난로에 빠졌다가도 기다리던 짝과 함께 푸른 하늘을 날던 청둥오리처럼, 그들에게도 머잖아 좋은 날이 오리라 믿는다. 푸르게 날아가던 오리 두 마리가 눈에 선하다.

                       <2010년 10월 21일 미주한국일보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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