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튼비가(悲歌)

2017.04.13 01:12

정용진 조회 수:18

캄튼 비가(悲歌)

어제까지만 하여도

삐거덕 소리를 내면서

새벽을 열고

자정을 닫아걸던

녹 쓴 철문들이

오늘은 굳게 닫혀있다.

1992년 4월29일

황혼으로 물드는

캄튼의 거리에는

흑백의 대결이

눈에 불을 켜고

살기가 충천 하였다.

무서운 빈곤과

더 무서운 안일과

더더욱 죄스러운

권태와 광란

이 죽음의 거리에

생명을 내어 걸고

젖과 빵을 나르는

코리안들, 코리안들….

저들은

우리를 향하여

돈만 아는

동양의 유태인이라고

비아냥을 놓지만

우리의 가슴 속에는

뿌리를 내리려는

생명수의 푸른 꿈이 있다.

죄가 사망이 되어 타오르고

사망이 지옥이 되어 불붙는

캄튼의 거리

땅에 불이 나서

하늘이 타고

검은 동네에 불이 나서

황토 마을이 되고

숯장사가

숯을 지고 불로 들어가서

불덩어리가 되는

흑백의 처절한 대결

그리고

저 무서운 죄 값

무지는 맹목을 낳고

맹목은 파멸을 낳고

파멸은 죄를 잉태하고

예수마저 떠나간

절망의 십자거리

불이다!

불이닷!

동에서 서로

남에서 북으로

방화와 약탈

살인과 광란

아비규환으로 치닫는

광인(狂人)의 거리

깃발을 든 자는

자칭이든 타칭이든

저마다 영웅이다.

이 설움, 이 가난

가슴마다 못처럼 깊이 박힌

한을 못 풀어

실성이 나 흔들어 대는

검은 무도회

덩달아 날뛰는

히스패닉들의

판초 자락들….

왓츠와 로드니킹의

거친 숨결이 마침내

폭팔한

불모의 땅

캄튼의 거리

저들이 만일

그슬린 숯 구덩이에서

청자 항아리를 구워내고

검은 토굴에서

백자 술병을 빚어내는

백의민족의 슬기로운

오천년의 꿈을

알았더라면

부끄러워하였을 것이다.

죄스러워하였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잿더미 속에서

민족혼을 캐내는

한의 얼

한의 피

한의 꿈

천사의 도시

로스엔젤레스에서

늦잠을 깬

죄의 무리들이여

이제는

묵은 원한을 아득히 잊고

모두가 내 탓이다

모두가 내 탓이다.

죽은 거리 불탄 점포에

욥이 처럼 재를 뒤집어쓰고

용서와 화해를 구하는

의로운 모습

우리, 코리안들은

물욕에 병들어

영육이 쇠잔한

아메리카 대륙에

동방의 빛과

생기를 전하러 온

평화의 사자(使者)들

보라!

저 용솟음치는

함성의 물결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

“우리는 평화를 사랑한다.”

올림픽 거리

아드모어 공원을

길길이 메운

코리안의 물결들

코리안의 행렬들….

왓츠 폭동은 1965년 6월15일 L.A에서 인종차별 문제로 일어난 흑인 폭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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