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기행

2019.01.15 22:52

정용진 조회 수:49

금강산 기행
                     정용진(시인)


내가 찍은 금강산 집선봉

조국 분단 반세기만에 그리운 금강산을 찾아간다는 기쁨과 북한 땅을 밟는다는 흥분 감에 잠을 설치고 아침 7시에 서울을 떠나 속초에서 설봉호에 올랐다. 미국에서 나간 60여명 외에 국내 관광객을 합쳐 천여명 가까운 대 가족들이 미지의 세계를 찾아가는 이방인들처럼 술렁거렸다. 현재 연결 공사 중인 속초에서 고성까지 동해선 철로가 완공되면 30분이면 도착 할 수 있다는 거리를 우리는 너무 많은 세월을 허비하고 기다렸다. 오후2시 속초항을 떠나 4시간 반 만에 장전 항에 도착하였다.
어두움이 깃들 어 잠을 청하려는 듯 다소곳이 우리 일행을 맞이하는 금강산, 동해의 푸른 물결이 일궈낸 운무로 목욕을 한 탓인지 더욱 청순해 보이고 단장한 신부 같았다. 어두움이 깔려오는 북녘 조국, 온정리 텃밭에서는 주민들의 밭일이 계속되고 있었다. 어두움을 밟고 괭이로 밭을 일구는 북녘 주민들, 그 긴 그림자가 마치 밀레의 “만종”처럼
진지하기도하고 한편 애처로워 보이기도 하였다. 우리 일행은 배정된 숙소에 여장을 풀고 잠을 청하였으나 잠이 올 리 만무, 더러는 노래방으로, 몇몇은 금강산 소주로 정을 달래며 첫잠을 깨고 나니 창밖에는 외등만 졸고 있고 기대와는 달리 후두둑후두둑 빗방울이 튕기고 있었다.

금강산 만물상
아침에 일어나니 우의를 준비하라는 우리들 조장의 당부, 지난번 태풍 루사의 급습으로 600여 미리의 비가 내려 만물상 가는 길과 해금강 가는 길은 다리가 끊기고 길이 패어 계획이 변경되어 첫날은 신선들이 모여 섰다는 집선봉과 흔들바위, 배 바위가 있는 동석동(動石洞)코스로 우중 기행을 떠났다. 휴지조각하나 담배꽁초하나를 떨어트려도 벌금을 물리는 엄한 관리 탓인지 천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모습이 소중하다고 느꼈다. 수 천년을 불교문화의 영향 속에 지내온 사실을 이곳에 와서는 더욱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금강산 이름 자체가 불경 금강경에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신선들이 모여 섰다는 집선봉, 비로봉, 세존봉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산봉우리의 이름들이 그러하다. 빗속에 진흙길을 미끄러지고 넘어지면서 한 고개를 넘으면 폭포요, 또 한 고개를 넘으면 낙낙 장송이 근심 없이 자란 수림의 장관, 산 첩첩 물굽이 굽이의 절경의 연속이다. 록키산맥이나 요새미티 바위처럼 웅장하지는 못하나 섬세와 우아미 그리고 온 산을 총총히 들어선 기암  괴석은 가히 천하일품이다. 일찍이 서산대사가 지적하였다는 “금강산은 아름다우나 웅장하지 못하다.”는 말씀에 공감하였다.

금강산 장안사

저녁에는 금강산 온천에서 온천욕으로 쌓인 피로를 풀어 버리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평소에는 마음 깊은 곳에 이야기를 털어놓지 못하던 친구 사이라도 여행 중에는 서로 속마음을 열고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모습들이 정겨웠다. 선인들이 그의 인품을 바로 알려면 함께 여행을 떠나 보라는 일화가 생각난다. 다음날은 구룡련 코스로 떠났다.

금강산 표훈사

어제와는 달리 오늘은 날씨가 쾌청, 모두의 마음과 발걸음이 가볍고 밝다. 외금강과 해금강은 현대가 맡아서 운영하고 내금강은 북한 주민들에게만 개방되었기 때문에 남한 관광객은 내금강에 갈 수가 없어서
최고봉인 비로봉과 절경이라는 만폭동, 그리고 천년의 한을 품고 잠들었다는 마하연 마의태자 능을 볼 수가 없어서 못내 아쉬웠다.

금강산 비로봉

금강산

해동의
슬기 기(氣)로 뭉쳐
춘하추동
금강
봉래
풍악, 개골산으로
한얼 백성들의
우람한 가슴에
빛으로 솟아 영롱하구나
하룻밤 자고 나면
동해 운무로
머리를 감고
칠보단장한
새 신부가 되어
칠천만 연인들을
설레게 하나니
저마다 보석으로
찬란히
버티고 선
만물상.
겨레의 꿈처럼
아름다운
팔선녀(八仙女)의 그윽한 전설이
넘쳐흐르는 옥류동 계곡
민족의 기상으로
요동치는
구룡의 용트림
밤 낯으로
하늘과 땅을
뒤흔드는
구룡폭포의
우레와 같은 함성이
우리 한민족의
얼을 깨우는구나.
봄빛, 여름 볕
가을 단풍
겨울 눈밭에서도
억 년 세월을 초연히
한민족의 기상으로
솟아오르는
백두대간의 젖꼭지
금강산. <정용진>

 구룡련 가는 길은 좌우의 청용과 백호가 하나같이 만학천봉(萬壑千峰) 의 기암절벽으로 병풍을 이룬다. 금강문을 지나면 좌측엔 비봉 폭포가 층암절벽으로 천년의 비정함묵을 깨고 소리 높여 쏟아지고, 우측엔 부창부수 구룡폭포가 명주 비단 폭처럼 힘차게 내려 붓는다. 누군가 이 바위를 미륵 같다하여 “미륵불“이라 크게 써넣었다.


금강산 귀면암

우선 상팔담을 오르기로 하였다. 시인 두자미의 표현처럼 “서리를 맞은 단풍은 2월의 꽃보다 붉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면서 8선녀를 만나 보기로 하였다. 한 굽이 오르면 열두 계단, 다시 물소리를 들으며 오르면 오를수록 발아래는 청용이 굽이치고 온갖 바위들이 천군만마를 호령하고 달려오는 듯, 마치 나도 천하를 호령하던 유비라도 된 듯 당당한 기쁨에 힘든 줄 몰랐다. 높은 산을 오르는 수고의 땀을 흘려본 사람이라야 정상에서 느끼는 호탕한 일망무제의 기분을 만끽 할 수가 있다. 불붙은 붉은 단풍나무 가지를 휘어잡고 한 능선 두 능선을 오르면서 잠시 쉬고 땀을 들일 때 산바람이 이마를 스치고 지나는 맛이 그리 시원할 수가 없다. 구절양장 아흔 아홉 구비를 힘겹게 올라 정상에 이르니 먼 산 앞에는 뭉게구름이 산봉우리를 가리고 계곡에는 실안개가 자욱한데 발아래 펼쳐지는 여덟 개의 연못에는 옥수(玉水)가 가득 넘쳐 산 그림자를 담고 우리 일행을 유혹한다.


금강산 상팔담

선인들이 얼마나 이 정경에 반하였으면 상팔담이라 이름 하였겠으며 여덟 선녀가 천상에서 내려와 목욕을 할 때 이 모습에 도취된 나무꾼이 여덟 번 째 선녀의 옷을 감춰 못 올라가게 한 후 그와 결혼하고 아이를 셋 낳을 때까지는 절대로 옷을 내주지 말라는 사슴의 당부를 어기고 두 아이를 낳았을 때 옷을 내 주었더니 천상이 그리워 두 아이를 양 겨드랑이에 껴안고 하늘로 올라 간 후 나무꾼이 망연자실, 하도 애통해 하니까 선녀가 옛 정이 그리워 두레박을 내려주어 이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 함께 오래오래 살았다는 아름다운 전설이 전해 내려올까. 이런 순박한 전설과 우화 속에서 사는 우리 민족이 왜 둘로 갈리어 서로 애통해 하는지 가슴이 답답한 일이다. 새벽안개 면사포로 드리우고 선녀 옷 벗는 소리를 환상 속에 들으며 산길을 내려오는데 뒤늦게 오르는 한 일행이 내 등에 진 백팩을 보고 그 속에 무엇이 들었느냐? 묻기에 몹시 아름다운 선녀의 날개옷 한 벌이 들어 있다 고 하였더니 과연 시인다운 대답이라고 하여 힘든 산행 중에서 파안대소하였다. 구룡폭포는 여덟 선녀가 목욕을 하였다는 상팔담에서 흘러 내려 구룡연으로 쏟아지는데 이는 개성 박연폭포, 설악산 대승폭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폭포라 이른다
.
금강산 구룡연

오늘도 차고 맑은 구룡연엔 아홉 마리의 용이 여덟 선녀를 만나려고 등천의 기회를 얻기 위하여 아우성이다. 이는 마치 서울 장안에서 저마다 용이라고 외쳐대는 저들과 같다고 나 할까?
그러나 선녀 하나는 나무꾼과 짝을 만났고 또 한 선녀의 옷은 내가 백팩에 넣고 미국으로 왔으니 필히 가까운 시일 내에 이곳으로 이민을 올 것인데 구룡이 제아무리 날뛴들 여섯 선녀뿐이니 3용은 헛물을 켜고 낙담하리라.

구룡폭포

상팔담
물안개로 드리워 진
팔선녀의(八 仙女)의]신비로운 자태여
넘치는 옥류동 계곡
옥문(玉門)을 여는
천년의 물소리에 반하여
구룡이 구룡연에서
용트림을 하네.
선녀 하나 내려올 때
용이 하나 오르고
용이 하나 솟구칠 때
선녀 하나 내려오네
용과 선녀가 만나
하늘과 땅의 노래로
벌리는 잔치
어이
남과 북의
선남 선녀들이
헤어져 눈물로 보낼 거냐
청룡이 선녀를 껴안고
구름을 타고 오르는
등천의 축제를 보아라
민족의 심장
금강산에서
천지를 울리는
구룡폭포
삼천리금수강산
한민족의
영원을 노래 부르네. <정용진>

 셋째 날은 해금강 코스가 다리가 끊겨 먼발치에서만 바라보는 것으로만 만족하고 삼일포로 향하였다. 고성 평야가 한눈에 들어오는 동해 바닷가의 삼일포는 관동 8경에 하나로 어느 임금인지는 분명치 아니하나 아름다운 경치에 반하여 3일을 묵어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곳은 주위의 산경이 아름답고 물이 맑고 차다. 산마루에 우뚝 솟은 정자가 하늘을 향해 솟은 탑처럼 우람하다. 이는 아름다운 우리 선조들의 염원이기 때문이리라.

해금강 총석정

해금강

누구를 기다리다
선돌이 되었는가
타는 한(恨)
눈물로 고여
발아래 출렁이는
애절한 물결소리.
아픔의 세월
임을 기다리다
망부석이 되었구나
오늘 도
뜨거운 눈물을 식혀주는
실 안개비
끼룩 끼룩
짝을 부르는
갈매기 떼들의
눈물겨운 갈구에
해금강은 오늘도
선돌로 서서
그리운 님을
기다리는구나. <정용진>


금강산 표훈사

 저녁에는 공연장으로 가서 평양 모란봉 교예단의 공연을 관람하였다. 말로만 듣던 공연은 생명을 내거는 아슬아슬한 연기가 실로 일품이었는데 과연 자유를 만끽하는 자본주의 국가의 어느 청소년들이 생명을 내건 위험을 무릅쓰고 저런 연기를 할 수 있을까 의심하며 눈물을 흘리는 동족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것이 곧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표현이 아니고 무엇이랴. 예술의 진수를 보여주기 위하여 인간 체력의 한계를 넘어선 묘기를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외금강과 해금강은 1조원이 넘는 막대한 비용을 투입하여 현대가 이루어 놓은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고 항만 시설, 온천장, 호텔, 식당, 숙소, 기념품점등 현대 시설로 꾸며져 있고 이곳엔 수많은 현대 버스와 중장비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속초 어디쯤이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이는 고 정주영 회장의 큰 포부와 애향심의 산물이란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졌고 북한 주민들은 내금강 외엔 올 수 없다는데, 운전기사들은 대부분 조선족 동포들이었고 안내원, 점원, 식당 종업원들은 거의가 남한 분들이었다. 가냘픈 몸매에 수동식으로 일하는 저들 모두가 같은 우리 동족들인데 서로 도와주면서 빠른 시일 안에 통일을 이룩하여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앞섰다. 거의 1키로 정도의 간격으로 북한 동족들의 안내원 남녀가 배치도어 있는데 대부분 아름다운 용모와 깨끝한 옷차림 그리고 질문에 친절하게 대하는 매너가 나무랄데 없었다. 그들은 여러 가지 질문에도 진지하게 응해 주었다.

 우리 정부가 북한 주민들을 위하여 지원하는 금액이 미국, 일본 중국에도 못 미치는데 “무조건 퍼주기” “대등을 원하는 교역” 운운하는
정치가들은 과연 어느 나라 백성들인지? 의식 수준이 어느 정도인 유권자들이 이들을 국민의 대변자로 뽑아 주었는지 그 수준이 의심스럽다. 조용히 그리고 베푸는 자가 겸손한 자세로,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할 수는 없는지 걱정이 앞선다. 지도자들의 의식 구조가 변해야 민중의 의식 구조가 변하지 아니 하겠는가? 우리 모두는 우리 후손들에게 어떠한 민족관과 통일 의식을 심어 주어야 할지 깊이 자성해 볼일이다.


 내 생각으론 적어도 6.25를 이르키고 이 뼈아픈 민족의 상잔을 모르는 후손들이 이 민족의 염원인 조국 통일을 이룩하게 될 것 같다.
북에 아내를 두고 남에 와서 아내를 만나고 자식을 얻고. 또 북에서 떠난 남편을 만날 수 없어 결혼하여 자식을 둔 저들을 하나님인들 어이 하시겠는가? 실로 민족의 비극이요 상처가 아닐 수 없다. 남한 각처에서 소풍을 온 중. 고등학생들의 천진난만한 음성이 들끓는 소리를 뒤로하고 속초로 돌아왔다. 동해선이 뚫리는 날 민족의 마음이 하나로 연결되는 감격을 생각하면서 다음 기회에 다시금 내금강을 가 보았으면 기대하고 있다. 분명 우리 민족의 통일은 우리 민족 모두의 소원이다. 미국이, 중국이, 소련이, 일본이 해주기를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그들은 우리 민족의 영구 분단으로 유익을 구하려 할 것이다.


금강산 만경대

우리 남북한 형제만이 통일의 주체요 한반도의 영원한 주인이다. 민족 분단의 아픔과 상처는 우리 남북한 동포들이 스스로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할 숙제요 역사의 준엄한 명령임이 분명하다.
가을 술에 취한 듯 주홍으로 물든 고운 단풍을 뒤로하고 금강산을 떠나 왔다. 옛 시인의 아름다운 시 가 떠오르는 10월의 산행 “통천과 고성엔 눈이 많이 오고 (通高之雪), 양양과 강릉엔 바람이 많이 부는데 (襄江之風), 그것을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一口之難說).”를 되 뇌이면서 통천, 고성, 양양, 강릉을 떠나왔다. 10월에 접어들었으니 풍악산은 곧 개골산으로 변하여 긴 겨울 속에서 금강산을 잉태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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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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