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적시는 명시 산책

 

2

 

서시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르러한점 부끄럼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가는것을 사랑해야지그리고 나안테 주어진 길을거러가야겠다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그릇 1 오세영

 

깨진 그릇은칼날이 된다.

절제(節制)와 균형(均衡)의 중심에서빗나간 힘부서진 원()은 모를 세우고이성(理性)의 차가운눈을 뜨게 한다.

 

맹목(盲目)의 사랑을 노리는사금파리여.지금 나는 맨발이다.베어지기를 기다리는살이다.

상처 깊숙이서 성숙하는 혼()

칼날이 된다.

화살 고은

 

우리 모두 화살이 되어온몸으로 가자.허공 뚫고온몸으로 가자.가서는 돌아오지 말자.박혀서 박힌 아픔과 함께 썩어서 돌아오지 말자.우리 모두 숨 끊고 활시위를 떠나자.몇 십 년 동안 가진 것,몇 십 년 동안 누린 것,몇 십 년 동안 쌓은 것,행복이라던가뭣이라던가그런 것 다 넝마로 버리고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허공이 소리친다.허공 뚫고온몸으로 가자.저 캄캄한 대낮 과녁이 달려온다.이윽고 과녁이 피 뿜으며 쓰러질 때단 한 번우리 모두 화살로 피를 흘리자.돌아오지 말자!돌아오지 말자!

 

오 화살 정의의 병사여 영령이여!

 

직녀에게 문병란이별이 너무 길다슬픔이 너무 길다선채로 기다리기엔 은하수가 너무 길다단 하나 오작교마저 끊어져버린지금은 가슴과 가슴으로 노둣돌을 놓아면도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선채로 기다리기엔 세울이 너무 길다.그대 몇번이고 감고 푼 실을밤마다 그리움 수놓아 짠 베 다시 풀어야 했는가.내가 먹인 암소는 몇 번이고 새끼를 쳤는데,그대 짠 베는 몇 필이나 쌓였는가?이별이 너무 길다.슬픔이 너무 길다.사방이 막혀버린 죽음의 땅에 서서그대 손짓하는 연인아유방도 빼앗기고 처녀막도 빼앗기고마지막 남은 머리털까지 빼앗길지라도우리는 만나야 한다.우리들은 은하수를 건너야 한다.오작교가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가슴을 딛고 건너가 다시 만나야 할 우리. 칼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이별은 이별은 끝나야 한다말라붙은 은하수 눈물로 녹이고가슴과 가슴을 노둣돌 놓아슬픔은 슬픔은 끝나야 한다,연인아.

 

복숭아 최연홍

 

복숭아 하얀 꽃 보셨나요

복숭아 빨간 꽃 보셨나요

꽃이 지고나면 맺는 열매가 복숭아

여름 최고의 과실을 아시나요

여름 시골 과수원에는 복숭아 향기가 가득합니다

 

누군가 하늘의 복숭아라고 그랬요

만약이 듣지 는 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해

나들은 폭포 아래서 몸을 씻고

백일 기도후 천사가 전해준 복숭아 3개를 받아

아버지는 맛있게 드시고 쾌유되었습니다

 

아들이 세 개의 씨를 후원에 심어 여름마다 수확한 복숭아

여름은 천도 복숭아 없이 살 수 없어요

그 무더운 여름 껍질까지 먹을 수 있는 최고의 과일

내게도 3개의 복숭아를 전해줒 천사가 있어요

정애경

 

저는 지금 후기인상파 화가가 반할만한 색깔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무릉도원이 여기인가 합니다

도연명의 시 한편이 보이기 시작 합니다

시골 과수원의 봄꽃이 다시 피기 시작하네요

고마워요

 

맨발  문태준  (현대시학 20038)어물전 개조개 한 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펄과 물 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인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 갔다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늘 맨발이었을 것이다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 하고 집이 울 때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 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마광수(馬光洙)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꼭 금이나 다이아몬드가 아니더라도양철로 된 귀걸이, 반지, 팔찌를주렁주렁 늘어뜨린 여자는 아름답다화장을 많이 한 여자는 더욱더 아름답다덕지덕지 바른 한 파운드의 분() 아래서순수한 얼굴은 보석처럼 빛난다아무 것도 치장하지 않거나 화장기가 없는 여인은씬 덜 순수해 보인다 거짓 같

감추려 하는 표정이 없이 너무 적나라하게 자신에 넘쳐나를 압도한다 뻔뻔스런 독재자처럼()처럼 속물주의적 애국자처럼화장한 여인의 얼굴에선 여인의 본능이 빛처럼 흐르고더 호소적이다 모든 외로운 남성들에게한층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게다가가끔씩 눈물이 화장 위에 얼룩져 흐를 때나는 더욱 감상적으로 슬퍼져서 여인이 사랑스럽다현실적, 현실적으로 되어 나도 화장을 하고 싶다분으로 덕지덕지 얼굴을 가리고 싶다귀걸이, 목걸이, 팔찌라도 하여내 몸을 주렁주렁 감싸 안고 싶다현실적으로진짜 현실적으로

 

겨울 바다 김남조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未知)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버리고 허무의 불 물이랑 위에 불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남은 날은 적지만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게 하소서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인고(忍苦)의 물이 수심(水深) 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행복 허영자눈이랑 손이랑깨끗이 씻고자알 찾아보면 있을거야깜짝 놀랄 만큼신바람나는 일이 어딘가 어딘가에 꼭 있을 거야아이들이보물찾기 놀일 할 때보물을 감춰 두는바위틈새 같은 데에나뭇구멍 같은 데에幸福은 아기자기숨겨져 있을 거야.

 

나는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류 시 화

물 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하늘에는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그리고 내 안에는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민들레의 영토 이해인 수녀

 

기도는 나의 음악 가슴 한복판에 꽂아놓은 사랑은 단 하나의 성스러운 깃발 태초부터 나의 영토는 좁은 길이었다 해도 고독의 진주를 캐며 내가 꽃으로 피어나야 할 땅 애처로이 쳐다보는 인정의 고움도 나는 싫어 바람이 스쳐가며 노래를 하면 푸른 하늘에게 피리를 불었지 태양에 쫓기어 활활 타다 남은 저녁노을에 저렇게 긴 강이 흐른다. 노오란 내 가슴이 하얗게 여위기전 그이는 오실까당신의 맑은 눈물 내 땅에 떨어지면 바람에 날려 보낼 기쁨의 꽃씨 흐려오는 세월의 눈시울에 원색의 아픔을 씹는 내 조용한 숨소리 보고 싶은 얼굴이여.

 

선운사에서 최영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그대가 처음내 속에 피어 날 때처럼잊는 것 또한 그렇게순간이면 좋겠네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넘어 가는 그대여

 

긍정적인 밥 함민복

 

()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 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밥풀 권영상

 

밥상을 들고 나간 자리에 밥풀 하나가 오도마니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겼다바깥을 나가려든 참에 다시 되돌아보아도밥풀은 흰 성자의 모습으로 그 자리에 앉았다바쁜 발걸음 아래에서도 발길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밟히면 그 순간 으깨어지고 마는 두려움,그런 두려움도 없이이아침, 분주한 방바닥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겼다나이 어린 성자의 얼굴로

대추 한 알 장석주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낱

 

시란 생명체에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니고 무생물이나 고체 또는 생활용품이나 가구 등에도 시제로 사용되어 시상으로 살아난다.

박이도의 명함, 정재호의 , 김성용의 의자등이 그 좋은 예에 속한다.

박이도의 죽어가는 즐거움과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정현종의 견딜 수 없네도 인간의 삶과 죽음 그리고 고뇌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명함 박이도

 

하나님께

실력과 명예로

꽉 채운

명함을 드렸더니

받지도 않습디다.

 

거짓 내용이라고

그래서

마귀에게 드렸더니

참 훌륭한 분이라고

하며 받습디다.

 

그러나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마귀의 칭찬이;

더 괴로운 이유를

오늘도 운명처럼

멋진 명함을 들고

받을 사람을 찾아

집을 나섭니다.

교만한 인간처럼

정재호

 

철없이 벽에도, 남의 가슴에도숱한 못을 박아놓았다부모님, 형제, 친구, 제자, 아내, 자식들 가슴에알게 모르게 박아 놓은 못죽기 전에 내 손으로 그것을 뽑아 버려야 할 텐데부모님은 이미 먼 길 떠나셨고아내는 병이 들었고형제는 절반이 이승을 떠났고자식들은 다 커 버렸다지금도 그대들 가슴속 어딘가 박혀 있을 못을무엇으로 뽑아내나뉘우침이 못이 되어내 가슴 깊이 박힌다.

너에게 묻는다 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견딜 수 없네  정현종갈수록, 일월(日月)이여, 내 마음 더 여리어져

가는 8월을 견딜 수 없네. 9월도 시월도 견딜 수 없네. 흘러가는 것들을 견딜 수 없네. 사람의 일들 변화와 아픔들을 견딜 수 없네. 있다가 없는 것 보이다 안 보이는 것 견딜 수 없네. 시간을 견딜 수 없네. 시간의 모든 흔적들 그림자들 견딜 수 없네. 모든 흔적은 상흔(傷痕)이니 흐르고 변하는 것들이여 아프고 아픈 것들이여

* 1회 미당문학상 수상작

 

벗어놓은 스타킹     나희덕

 

지치도록 달려온 갈색 암말이

여기 쓰러져 있다

더 이상 흘러가지 않을 것처럼

 

생의 얼굴은 촘촘한 그물 같아서

조그만 까그라기에도 올이 주르르 풀려나가고

무릎과 엉덩이 부분은 이미 늘어져 있다

몸이 끌고 다니다가 벗어 놓은 욕망의

껍데기는 아직 몸의 굴곡을 기억하고 있다

의상을 벗은 광대처럼 맨발이 낯설다

얼른 집어 들고 일어나 물속에 던져 넣으면

달려온 하루가 현상되어 나오고

물을 머금은 암말은

갈색 빛이 짙어지면서 다시 일어난다.

또 다른 의상이 되기 위하여

 

()으로 창()을 내겠소 김상용

 

()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 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요.

갱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껍데기는 가라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껍데기는 가라.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부끄럼 빛내며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한라에서 백두까지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빨랫줄 서정춘

 

그것은, 하늘 아래처음 본 문장의 첫줄 같다그것은, 하늘 아래이쪽과 저쪽에서길게 당겨주는힘줄 같은 것이 한 줄에 걸린 것은빨래만이 아니다봄바람이 걸리면연분홍 치마가 휘날려도 좋고비가 와서 걸리면떨어질까 말까물망울은 즐겁다그러나, 하늘 아래이쪽과 저쪽에서당겨주는 힘그 첫 줄에 걸린 것은바람이 옷 벗는 소리한 줄뿐이다

 

낡은 집 이용악

 

날로 밤으로왕거미 줄치기에 분주한 집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이 집에 살았다는 백성들은대대손손에 물려줄은동곳도 산호관자도 갖지 못했니라재를 넘어 무곡을 다니던 당나귀항구로 가는 콩실이에 늙은 둥글소모두 없어진 지 오랜외양간엔 아직 초라한 내음새 그윽하다만털보네 간 곳은 아무도 모른다찻길이 놓이기 전노루 멧돼지 쪽제비 이런 것들이앞뒤 산을 마음놓고 뛰어다니던 시절털보의 셋째아들은나의 싸리말 동무는이 집 안방 짓두광주리 옆에서첫울음을 울었다고 한다털보네는 또 아들을 봤다우송아지래두 불었으면 팔아나 먹지마을 아낙네들은 무심코차거운 이야기를 가을 냇물에 실어보냈다는그날 밤저릎등이 시름시름 타들어가고소주에 취한 털보의 눈도 일층 붉더란다갓주지 이야기와무서운 전설 가운데서 가난 속에서나의 동무는 늘 마음 졸이며 자랐다당나귀 몰고 간 애비 돌아오지 않는 밤노랑고양이 울어 울어종시 잠 이루지 못하는 밤이면어미 분주히 일하는 방앗간 한구석에서나의 동무는도토리의 꿈을 키웠다그의 아홉살 되던 해사냥개 꿩을 쫓아다니는 겨울이 집에 살던 일곱 식솔이어데론지 사라지고 이튿날 아침북쪽을 향한 발자국만 눈 우에 떨고 있었다더러는 오랑캐령 쪽으로 갔으리라고더러는 아라사로 갔으리라고이웃 늙은이들은모두 무서운 곳을 짚었다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집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제철마다 먹음직한 열매탐스럽게 열던 살구살구나무도 글거리만 남았길래꽃피는 철이 와도 가도 뒤울안에꿀벌 하나 날아들지 않는다

 

목마와 숙녀 박인환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등대(燈臺)…… 불이 보이지 않아도 거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거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 백 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질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위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도 않고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 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새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장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은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위 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 <학풍>(1948) -

 

낙엽끼리 모여산다 조병화

낙엽에 누워 산다낙엽끼리 모여 산다지나간 날을 생각지 않기로 한다낙엽이 지는 하늘가에가는 목소리 들리는 곳으로 나의 귀는 기웃거리고얇은 피부는 햇볕이 쏟아지는 곳에 초조하다항시 보이지 않는 곳이 있기에 나는 살고 싶다살아서 가까이 가는 곳에 낙엽이 진다아 나의 육체는 낙엽 속에 이미 버려지고육체 가까이 또 하나 나는 슬픔을 마시고 산다비내리는 밤이면 낙엽을 밟고 간다비내리는 밤이면 슬픔을 디디고 돌아온다밤은 나의 소리에 차고나는 나의 소리를 비비고 날을 샌다낙엽끼리 모여 산다낙엽에 누워 산다보이지 않는 곳이 있기에 슬픔을 마시고 산다한 잎의 여자 오규원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 그 한 잎의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여자만을 가진 여자, 여자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여자, 여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여자, 눈물 같은 여자, 슬픔 같은 여자, 병신(病身) 같은 여자, 시집(詩集) 같은 여자, 그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 그래서 불행한 여자. 그러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여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여자. <1978>

 

남해 금산 이성복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입 속의 검은 잎 기형도

 

택시 운전사는 어두운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이따금 고함을 친다, 그때마다 새들이 날아간다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나는 한번도 만난 적 없는 그를 생각한다.

 

그 일이 터졌을 때 나는 먼 지방에 있었다먼지의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문을 열면 벌판에는 안개가 자욱했다그 해 여름 땅바닥은 책과 검은 잎들을 질질 끌고 다녔다접힌 옷가지를 펼칠 때마다 흰 연기가 튀어나왔다침묵은 하인에게 어울린다고 그는 썼다나는 그의 얼굴을 한 번 본 적이 있다신문에서였는데 고개를 조금 숙이고 있었다그리고 그 일이 터졌다, 얼마 후 그가 죽었다.

 

그의 장례식은 거센 비바람으로 온통 번들거렸다죽은 그를 실은 차는 참을 수 없이 느릿느릿 나아갔다사람들은 장례식 행렬에 악착같이 매달렸고백색의 차량 가득 검은 잎들은 나부꼈다나의 혀는 천천히 굳어갔다, 그의 어린 아들은잎들의 포위를 견디다 못해 울음을 터뜨렸다그 해 여름 많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없어졌고놀란 자의 침묵 앞에 불쑥불쑥 나타났다.망자의 혀가 거리에 흘러 넘쳤다택시운전사는 이따금 뒤를 돌아다본다나는 저 운전사를 믿지 못한다, 공포에 질려나는 더듬거린다, 그는 죽은 사람이다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장례식들이 숨죽여야 했던가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내가 가는 곳은 어디인가나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디서그 일이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어디든지가까운 지방으로 나는 가야 하는 것이다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

<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지성사, 1989>

 

북치는 소년 김종삼 (1921~1984)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 가난한 아이에게 온 서양 나라에서 온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카드처럼 어린 양()들의 등성이에 반짝이는 진눈깨비처럼

 

견딜 수 없네  정현종갈수록, 일월(日月)이여, 내 마음 더 여리어져

가는 8월을 견딜 수 없네. 9월도 시월도 견딜 수 없네. 흘러가는 것들을 견딜 수 없네. 사람의 일들 변화와 아픔들을 견딜 수 없네. 있다가 없는 것 보이다 안 보이는 것 견딜 수 없네. 시간을 견딜 수 없네. 시간의 모든 흔적들 그림자들 견딜 수 없네. 모든 흔적은 상흔(傷痕)이니 흐르고 변하는 것들이여 아프고 아픈 것들이여.

* 1회 미당문학상 수상작

장식론 홍윤숙여자가장식을 하나씩달아가는 것은젊음을 하나씩잃어가는 때문이다씻은 무우 같다든가뛰는 생선 같다든가(진부 陳腐한 말이지만)그렇게 젊은 날은젊음 하나만도빛나는 장식이 아니었겠는가때로 거리를 걷다 보면쇼우윈도우에 비치는내 초라한 모습에사뭇 놀란다어디에그 빛나는 장식들을잃고 왔을까이 피에로 같은 생활의 일상들은무엇일까안개같은 피곤으로문을 연다피하듯 숨어보는거리의 꽃집젊음은 거기에도만발하여 있고꽃은 그대로가눈부신 장식이었다꽃을 더듬는내 흰 손이물기 없이 마른한장의 낙엽처럼 쓸쓸해져돌아와몰래진보라 고운자수정 반지 하나 끼워달래어 본다

 

죽편 서정춘

 

여기서부터, -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 년이 걸린다

산정묘지 조정권

 

갈가마귀 울음 자옥이 잦아가는언 하늘에온통 시퍼런 靑竹을 치겠다.삭풍이여, 삭풍이여,우리를 다시 한 몸으로 묶으라.또 한 차례 땅속 깊은 뿌리들을 출렁이게 하고우리들을 다시 한 뿌리로 묶으라.그리고 지상에 홀로 남아칼을 입에 물고 노래하는 歌人오래 머물게 하라.切腹의 시대가 온다.삽과 망치와 깃대를땅속 깊이 매장하고, 삭풍 앞에 나서입에 문 칼끝을 삼키면서스스로를 증명하는切腹의 시대가 온다.한 뿌리에서 올라온 수천의 잎다 찢겨가고헐벗은 나뭇가지에 언 하늘 빛 뿜을 때언 하늘에다을 치며, 을 치며자신이발등에다스스로 얼음을 터뜨리며스스로 맨발로 얼음 위를 딛는.....스스로 증명하는 이여.증명하는 이여切腹의 시대가 오고 있다.

 

 

노동의 새벽 박노해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새벽 쓰린 가슴 위로차거운 소주를 붓는다이러다간 오래 못 가지이러다간 끝내 못 가지설은 세 그릇 짬밥으로기름투성이 체력전을전력을 다 짜내어 바둥치는이 전쟁 같은 노동일을오래 못 가도끝내 못 가도어쩔 수 없지탈출할 수만 있다면,진이 빠져, 허깨비 같은스물아홉의 내 운명을 날아 빠질 수만 있다면아 그러나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지죽음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이 질긴 목숨을,가난의 멍에를,이 운명을 어쩔 수 없지늘어쳐진 육신에또다시 다가올 내일의 노동을 위하여새벽 쓰린 가슴 위로차거운 소주를 붓는다소주보다 독한 깡다구를 오기를분노와 슬픔을 붓는다어쩔 수 없는 이 절망의 벽을기어코 깨뜨려 솟구칠거치른 땀방울, 피눈물 속에새근새근 숨쉬며 자라는우리들의 사랑우리들의 분노우리들의 희망과 단결을 위해새벽 쓰린 가슴 위로차거운 소주잔을돌리며 돌리며 붓는다노동자의 햇새벽이솟아오를 때까지

 

타는 목마름으로 김지하

 

신새벽 뒷골목에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가닥 있어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

아직 동 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발자국소리 호르락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살아오는 삶의 아픔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백묵으로 서툰 솜씨로쓴다.숨죽여 흐느끼며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타는 목마름으로타는 목마름으로민주주의여 만세

 

사평역에서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 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에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한계령을 위한 연가 문정 희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 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면 풍요는 조금씩 공포로 변하고, 현실은 두려움의 색채를 드리우기 시작하지만 헬리콥터가 나타났을 때에도 나는 결코 손을 흔들지는 않으리. 헬리콥터가 눈 속에 갇힌 야생조들과 짐승들을 위해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 젊은 심장을 향해

까아만 포탄을 뿌려대던 헬리콥터들이 고라니나 꿩들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자비롭게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나는 결코 옷자락을 보이지 않으리.

아름다운 한계령에 기꺼이 묶여 난생 처음 짧은 축복에 몸 둘 바를 모르리.

 

마음의 수수밭 천양희 마음이 또 수수밭을 지난다.

머위 잎 몇 장 더 얹어 뒤란으로 간다.  

저녁만큼 저문 것이 여기 또 있다.

개밥바라기 별이내 눈보다 먼저 땅을 들여다본다.세상을 내려 놓고는 길 한쪽도 볼 수 없다.논둑길 너머 길 끝에는 보리밭이 있고보릿고개를 넘은 세월이 있다.바람은 자꾸 등짝을 때리고, 절골의그림자는 암처럼 깊다. 나는몇 번 머리를 흔들고 산 속의 산, 산 위의 산을 본다. 산은 올려다보아야한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저기 저

하늘의 자리는 싱싱하게 푸르다.푸른 것들이 어깨를 툭 친다. 올라가라고 그래야 한다고. 나를 부추기는 솔바람 속에서내 막막함도 올라간다. 번쩍 제 정신이 든다.정신이 들 때마다 우짖는 내 속의 목탁새들 나를 깨운다. 이 세상 없는 길을 만들 수가 없다산 옆구리를 끼고

절벽을 오르니, 천불산(天佛 山)

몸 속에 들어와 앉는다.내 맘 속 수수밭이 환해진다.

 

나는 왕이로소이다 홍사용

 

나는 왕이로소이다. 나는 왕이로소이다. 어머님의 가장 어여쁜 아들 나는 왕이로소이다. 가장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서.그러나, 시왕전(十王殿)에서도 쫓기어 난 눈물의 왕이로소이다.<맨 처음으로 내가 너에게 준 것이 무엇이냐> 이렇게 어머니께서 물으시며는<맨 처음으로 어머니께 받은 것은 사랑이었지요마는 그것은 눈물이더이다>하겠나이다. 다른 것도 많지요마는.맨 처음으로 네가 나에게 한 말이 무엇이냐> 이렇게 어머니께서 물으시며는맨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드린 말씀은 '젖 주셔요'하는 그 소리였지요마는, 그것은 '으아-'하는 울음이었나이다> 하겠나이다. 다른 말씀도 많지요마는.

이것은 노상 왕에게 들리어 주신 어머니의 말씀인데요.왕이 처음으로 이 세상에 올 때에는 어머니의 흘리신 피를 몸에다 휘감고 왔더랍니다.

그 날에 동내의 늙은이와 젊은이들은 모두 '무엇이냐'고 쓸데없는 물음질로 한창 바쁘게 오고 갈 때에도

어머니께서는 기꺼움보다는 아무 대답도 없이 속 아픈 눈물만 흘리셨답니다.

빨까숭이 어린 왕 나도 어머니의 눈물을 따라서 발버둥질치며 '으아-' 소리쳐 울더랍니다.

 

그날 밤도 이렇게 달 있는 밤인데요

으스름 달이 무리스고 뒷동산에 부엉이 울음 울던 밤인데요.어머니께서는 구슬픈 옛이야기를 하시다가요, 일없이 한숨을 길 게 쉬시며 웃으시는 듯한 얼굴을 얼른 숙이시더이다.

왕은 노상 버릇인 눈물이 나와서 그만 끝까지 섧게 울어 버렸소이다. 울음의 뜻은 도무지 모르면서도요.

어머니께서 조으실 때에는 왕만 혼자 울었소이다.

어머니께서 지우시는 눈물이 젖 먹는 왕의 뺨에 떨어질 때이면 왕도 따라서 시름없이 울었소이다.

 

열한 살 먹던 해 정월 열나흘 날 밤, 맨재텀이로 그림자를 보러 갔을 때인데요, 명이나 긴가 짜른가 보랴고.

왕의 동무 장난꾼 아이들이 심술스럽게 놀리더이다. 모가지 없는 그림자라고요.

왕은 소리쳐 울었소이다. 어머니께서 들으시도록, 죽을까 겁이 나서요

 

나무꾼의 산타령을 따라 가다가 건넛 산 산비탈로 지나가는 상두꾼의 구슬픈 노래를 처음 들었소이다.

그 길로 옹달 우물로 가자고 지름길로 들어서며는 찔레나무 가시덤불에서 처량히 우는 한 마리 파랑새를 보았소이다.

그래 철없는 어린 왕 나는 동무라 하고 좇아가다가, 돌뿌리에 걸리어 넘어져서 무릎을 비비며 울었소이다.

 

해바라기의 비명(碑銘) 함형수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거운 비()돌을 세우지 말라.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폭풍의 노래 성춘복

바람이었네, 천둥이었네가슴 깊은 모랫벌을 쓸고 가는가을 밤의 폭풍이엇네고목 사이 손을 뻗으면새 한마리슬퍼도 울지 않는 둥지였네빗소리였네, 어둠이었네뱃머릴 흔드는사나운 흐름이었네.곤히 잠들었던 내 출항지한 방울의 파문으로도가라앉으려 하네.바람은 없었네, 어둠은 없었네썰물과 밀물에 들고날나의 길은 없었네.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 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한국의 아이 황명걸

 

배가 고파 우는 아이야울다 지쳐 잠든 아이야

장남감이 없어 보채는 아이야보채다 돌맹이를 가지고 노는 아이야네 어미는 젖이 모자랐단다네 아비는 벌이가 시원치 않았단다네가 철나기 전 두 분은 가시면서어미는 눈물과 한숨을아비는 매질과 술주정을벼 몇 섬의 빚과 함께 남겼단다뼈공이 부숴지게 일은 했으나워낙 못사는 나라의 백성이라서하지만 그럴수록 아이야사채기만 가리지 않으면성별을 알 수 없는 아이야누더기옷의 아이야계집아이는 어미를 닮지 말고사내아이는 아비를 닮지 말고못 사는 나라에 태어난 죄만으로보다 더 뼈골이 부숴지게 일을 해서멀지 않아 네가 어른이 될 때에는잘 사는 나라를 이룩하도록 하여라멀지 않아 네가 어른이 될 때에는잘 사는 나라를 이룩하도록 하여라그리고 명심할 것은 아이야일가친척 하나 없는 아이야혈혈단신의 아이야너무 외롭다고 해서숙부라는 사람을 믿지 말고외숙이라는 사람을 믿지 말고그 누구도 믿지 마라가지고 노는 돌멩이로미운 놈의 이마빡을 깔 줄 알고정교한 조각을 쪼올 줄 알고하나의 성을 쌓아 올리도록 하여라맑은 눈빛의 아이야빛나는 눈빛의 아이야불타는 눈빛의 아이야

 

학살2 김남주

 

오월 어느 날이었다 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12시 나는 보았다 경찰이 전투경찰로 교체되는 것을 12시 나는 보았다 전투경찰이 군인으로 대체되는 것을 12시 나는 보았다 미국 민간인들이 도시를 빠져나가는 것을 12시 나는 보았다 도시로 들어오는 모둔 차량들이 차단되는 것을 아 얼마나 음산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계획적인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 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 날 낮이었다 12시 나는 보았다 총검으로 무장한 일단의 군인들을 12시 나는 보았다 이민족의 침략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12시 나는 보았다 민족의 약탈과도 같은 일군의 군인들을 12시 나는 보았다 악마의 화신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아 얼마나 무서운 낮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노골적인 낮 12시였던가 오월 어느 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12도시는 벌집처럼 쑤셔놓은 심장이었다 12거리는 용암처럼 흐르는 피의 강이었다 1바람은 살해된 처녀의 피묻은 머리카락을 날리고 12밤은 총알처럼 튀어나온 아이의 눈동자를 파먹고 12학살자들은 끊임없이 어디론가 시체의 산을 옮기고 있었다 아 얼마나 끔찍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조직적인 학살의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 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 날 낮이었다 12하늘은 핏빛의 붉은 천이었다 12거리는 한 집 건너 울지 않는 집이 없었다 무등산은 그 옷자락을 말아올려 얼굴을 가려 버렸다 12영산강은 그 호흡을 멈추고 숨을 거둬 버렸다 아 게르니카의 학살도 이리 처참하지는 않았으리 아 악마의 음모도 이리 치밀하지는 않았으리

풀잎 강은교

 

아주 뒷날 부는 바람을 나는 알고 있어요. 아주 뒷날 눈비가 어느 집 창틀을 넘나드는지도. 늦도록 잠이 안 와 () 밖으로 나가 앉는 날이면 어쩌면 그렇게도 어김없이 울며 떠나는 당신들이 보여요. 누런 베수건 거머쥐고 닦아도 닦아도 지지 않는 피()들 닦으며 , 하루나 이틀 해저문 하늘을 우러르다 가네요. 알 수 있어요. 우린 땅 속에 다시 눕지 않아도.

 

그대 아끼게나 청춘을 류달영그대아끼게나 청춘을이름 없는 들풀로사라져 버림도永遠에 빛날삶의 光榮젊은 時間쓰임새에 달렸거니오늘도가슴에 큰뜻을 품고젊은 하루를뉘우침 없이 살거나

 

모나리자의 손 고원

 

저녁 냄새가 번지는 미소,

그쪽으로 가까이 가면서

나는 유난히 커다란

모나리자의 손을 느낀다.

두껍고 따뜻하다.

 

이 손은 나의 어느 부분이든지

스쳐가거나 휘감을 수 있고, 나를

저 아래로 밀어 넣을 수도 있다.

그러나 미소 뒤의 세계는

그 손, 큰 손 때문에

어둡고 차지 않은가?

놀빛 속에 입술이 흐르는구나.

 

자화상 마종기

 

흰색을 많이 쓰는 화가가 겨울 해변에 서 있다. 파도가 씻어버린 화면에 눈처럼 내리는 눈. 어제 내린 눈을 덮어서 어제와 오늘이 내일이 된다. 사랑하고 믿으면, 우리는 모든 구속에서 해방된다. 실패한 짧은 혁명같이 젊은이는 시간 밖으로 걸어나가고 백발이 되어 돌아오는 우리들의 음악, 움직이는 물은 쉽게 얼지 않는다. 그 추위가 키워준 내 신명의 춤사위.

 

혼자울지 마라 정용주 (정용진의 아우)

 

하늘아래

어떤 슬픔도

온전히 한 존재의 몫으로

주어진 것은 없다.

먼 단풍도

홀로 붉지 않는다.

 

한 바람이

서늘한 능선의 가슴을 쓸면

마침내 모든 나무가

서로에게 물들어

 

가난한 영혼의 연대가

온 산에 붉다.

 

들꽃을 바라볼 때

꽃의 귀는

너를 듣는다.

 

홀로 슬퍼지기를 연민할 때도

꽃은 피고사랑은 간다.

 

한 마음 괴롭히는 그 까닭으로

모든 영혼이 운다

 

우리 모두는

물들어간다

혼자 울지 마라. <치악산 화전민 집에서 독거>

 

사 랑 정용진

 

그대는 누구 이길래,

고요히 앉아 있어도

속마음에 가득 차오르고

 

문을 닫아 걸어도

가슴을 두드리는가

 

내가 찾지 못하여

서성이고 있을 

그대 마음도 그러하려니

차가운 돌이 되어

억년 세월을 버티지 말고

차라리

투명한 시내가 되어

 앞을

소리쳐 지나가게나,

 

골목을 지나는 바람처럼

바람에 씻기는 별빛같이

그대는 누구 이길래,

 밤도

 비인 나의 마음을

가득 채우는가. 

 

*Editor's Award. by The International Library Of Poetry(03)

*권길상 작곡가에 의하여 가곡으로 작곡됨.

 

LOVE by Yong Chin Chong

 

I wonder who you are,

you who fill up the depth of my mind

while I keep sitting alone in silence.

 

You knock on my heart

even when I lock it tight.

 

You might be doing the same

when I roam about

looking all around for you.

 

Instead of a cold rock

standing upright beyond time,

may you rather become

a clear river

passing in front of me

with a splashing sound.

 

Like the breeze moving along an alley

as the starlight shining in the wind,

you charge my

whole empty soul tonight.

Wondrous you are.

By The International Society of Poetry

Editor’s Choice Award.(2003)

 

 

<축시>

기미3.1독립운동 100주년 기념 축시정용진 시인,오 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임과자주민임을 세계만방에 고하노라.동경에서 조선 유학생들의 2.8 독립선언일제 폭정 앞에서 당당히 외치신 33인들과 김구 안창호 조만식 안중근 한용운 민영환감옥에서 옥사한 유관순 열사윤동주 시인헤이그에서 분사한 이준열사샌프란시스코에서스트븐슨을 저격한장인환 전명운 의사우리 모두는 자랑스러운 선조들의 공로로서오늘날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왜정 시대에 학자는 강단에서정치가는 실제에서아 조정세업을 식민지시하고 토매인우하여한갓 정복자의 쾌를 탐하고우리의 영토에서 절대 권력을 행사했던왜인들의 학정을 꿈속에서라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은우리의 조상들이피흘려 지켜 전해주신옥토이기 때문이다.오늘날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조국을 우리의 힘으로 통일하고조상들 앞에 당당하고떳떳하게 서는 것이다.조선독립만세대한독립만세조국통일만세.

*여기 시를 등재한 순서는 무순임을 알린다.

 

 

정용진(鄭用眞) 詩人의 약력

(yong chin chong)

39. 경기 여주출생(아호 秀峯)

1971 년 도미. 지평선 시인동인

미주한국문인협회협 이사장. 회장 역임.

한국 크리스챤 시인협회. 민족문학 작가회의. 한국문인협회. 행문회 회원.

Pen USA. The International Society of Poets VIP회원.

미주문학상. 한국 크리스챤문학상 대상.

Outstanding Achievement Award.(07.08)

(The International Society of Poetry)수상.

The Best Poems & Poets (05.07) 선정됨.(미국. 국제시협)

시집 : 강마을. 장미 밭에서. 빈 가슴은 고요로 채워두고. 금강산.

너를 향해 사랑의 연을 띄운다(한영). 설중매. (미래문화사)

에세이 : 마음 밭에 삶의 뜻을 심으며. 시인과 농부.

문예창작교본 : 시는 언어로 그리는 영혼의 그림.

샌디에고에서 에덴농장 경영. 열린 문학교실. (샌디에고 문장교실) 운영.

E-mail yongchin.chong@gmail.com

Home Page. my home mijumunhak.com/chongyongchin/

Cafe.daum.net/chongyongchin/ 전화번호(760) 468-0089

 

철인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인간 최대의 목표는 행복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시인이 시를 쓰고, 독자들이 좋은 시를 즐겨 암

송하는 것도 자신이 기쁘고 행복하기 때문이다.

행복은 만인의 원이요. 인간 궁극의 목표다. 모두들 행복하시기를

기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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