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줄' 시작 메모

2017.04.28 00:30

정국희 조회 수:61


목줄

 

 

 

나무에 바짝 목이 매인 채

하늘을 핥고 있는 혀

비어 있는 때낀 물 그릇

한 발짝만 때어도 허공에선 비린내가 난다

 

한낮의 날카로운 이빨

밖으로 향하는 그의 시선은

사시의 눈알처럼 기우뚱하다

하얀 그늘을 뿌리 채 뽑아

컹컹 짖어보는 한낮의 곡성

 

기척없이 앉았다 섰다 힌 이빨 사이로 더운 바람 내쉰다 

비좁은 원형의 길 반복해서 돌다가 또 돌다가

어느 겨울날 눈보라를 생각해 보다가

허공에 대고 혀를 내민

혓바닥에 혈색이 없다




                                                오늘은 신선한 바람이 불어서


 

      친정어머니가 실버타운으로 가신 후부터는 내게 더 이상 친정집이 없다. 그래서 한국에 가면 이제 친정집 대신 언니집에서 머무르다 온다. 언니가 사는 아파트 단지는 산 아래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산을 오를 수가 있어서 참 좋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아파트 단지 뒤쪽에 있는 시골 정취가 물씬 나는 풍경이다. 아파트를 막 벗어나면 된장국 냄새 나는 허름한 집들이 몇 채 있고 그 주위로는 탱자나무가 쭉 늘어서 있다. 푸성귀가 심겨진 텃밧이 옹기종기 들어차 있는가 하면 들꽃들이 지천으로 피어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런 풋것의 비린내를 맡으며 평화로운 조국의 냄새를 만끽하고 있는 순간을 깨버리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순진무구한 개의 눈망울이다. 산으로 가는 좁다란 두갈래 길에는 크지도 작지도 않는 내 키 두배만한 나무 한그루가 덩그라니 서 있다. 그런데 그 나무에는 항상 개가 묶여져 있다. 그 개는 작년에 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때 낀 물그릇 옆에 온종일을 앉았다 섰다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24시간을 나무에 목줄을 바짝 매단, 행동반경이 2미터 안밖인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목줄을 싹뚝 잘라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에게 충성을 다하는 헌신적인 동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주인을 살리기 위해 희생하는 개의 이야기는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다. 주인에게 절대 복종하는 짐승이다 보니 자기를 개고기 집 주인에게 팔아 넘기는 줄 알면서도 주인의 명령따라 끌려가고, 또 주인의 손에서 목매달려 슬픈 눈망울로 죽어가기도 한다. 우리나라 민속 신앙 속의 삽살개는 악귀를 쫓는 개라는 뜻으로 ‘(없앤다, 또는 쫓는다) ’(귀신,또는 나쁜신)의 합성어이다. 다시 말하면, 예민한 귀를 가진 개는 귀신의 바시락거림을 놓치지 않는다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로 집을 지킨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토록 사람을 이롭게 하는 동물을 마구 대하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2년 전, 미국에 사는 한국사람이 집 뒤뜰 정원에 개를 묶어놓았다가 벌금을 낸 적이 있었다. 물론 그늘을 피할 예쁜 개집도 있었고 충분한 물과 밥도 있었다. 다만 직장에 나가 있는 몇시간 뿐이었는 데도 옆집 사는 미국사람이 동물보호국에 신고를 했기 때문이다. 나라마다 동물보호법은 다 다르지만 미국에서의 동물학대는 1등급 경범죄로 간주된다. 아이다호의 경우에는 초범일 경우 5백만원의 벌금과 함께 징역형에 처해진다. 캐나다에서는 살아 있는 척추동물을 묶어놓으면 3년형에 처해진다. 국민들은 90%가 이법을 지키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동물보호법 25년 째를 맞았지만 징역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한명도 없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동물학대의 온상이라 할만큼 동물을 마구 다루고 있다.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에서도 언급되었듯이 개고기를 맛있게 하기 위해 오토바이에 질질 매달고 동네를 몇 바퀴 도는 행동이라든가, 개를 나무에 매달아놓고 몽둥이로 때려서 죽이는 그런 무자비한 행동이 아직도 거침없이 자행되고 있다. 또한 개를 묶어서 기르는 건 다반사이고 뜬잠에 여러마리를 가둬 옴싹 달싹도 못하게 하는 경우도 아직 많이 볼 수 있다.


     오늘은 선선한 바람이 불어서 그나마 괜찮다. 산을 올라가는 길에 쓰다듬어 주었듯이 내려오는 길에도 한참을 쓰다듬어준다. 꼬리를 흔들며 제발 나좀 풀어주세요하는 눈망울이 내 눈에 박힌다. “미안하다 미안하다말라버린 물그릇에 병물을 마저 다 부어주고 돌아서는 데 문득 오늘따라 내가 사람인 게 죄스럽다.

 

 

 2017년 < 시와정신> 봄호
   

회원:
2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0
어제:
4
전체:
87,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