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우의 시 두 편 감상

2019.02.24 02:08

정국희 조회 수:46



1) 11월의 나무

 

 

 

11월의 나무는, 난감한 사람이

머리를 득득 긁는 모습을 하고 있다

. 이 생이 마구 가렵다

주민등록 번호란을 쓰다가 고개를 든

내가 나이에 당황하고 있을 때

환등기에서 나온 것 같은, 이상하게 밝은 햇살이

일정 시대 관공서 건물 옆에서

이승 쪽으로 촉광을 강하게 때리고 있다

11월의 나무는 그 그림자 위에

가려운 자기 생을 털고 있다

나이를 생각하면

병원을 나와서도 병명을 강하게 때리고 있다

11월의 나무는

그렇게 자기를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처럼

내가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나는 등뒤에서 누군가, 더 늦기 전에

준비하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다.

 

11월은 마지막 달을 딱 한 달 남겨둔 끝에서 두 번째 달이다. 첫 달도 아니고 중간 달도 아니고 그렇다고 마지막 달도 아닌 애매한 달이다. 처음은 처음이라서, 끝은 끝이라서 관심을 가지지만 끝에서 두 번째는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꽃으로 치면 고개 숙인 지 한참인 때이고, 하루로 치면 저녁의 끄트머리라 뭐를 시작하기에도 어중간하고 잠자기도 좀 그런 시간이다. 말하자면 있어도 되고 없어도 아무 상관없는 관점에서 화자는 , 이 생이 마구 가렵다고 말하고 있다. 가렵다는 건 그저 긁으면 시원해지는 그런 가려움이 아닌 것이다.

 

작가는 11월의 나무를 난감한 사람이 머리를 득득 긁는 모습으로 표현했다. 보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표현이다. 문학적으로 형상화된 상상력이란 언제나 현실의 반영이면서 또한 왜곡된 현실을 담고 있다. 여기서 왜곡된 현실이란 포착될 수 없는 어떤 세계의 참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말도 된다. 어떤 때는 왜곡의 불확실한 묘사 자체가 더 자연스러울 때도 있지만 작가의 상상력에 따라 문학적 장치가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 시에서 작가는 사물 자체를 바라보고 경험하는 사람으로서 단순한 왜곡이 아닌 진실이 담긴 왜곡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주민번호를 쓰다가 나이에 당황하고 있을 때 이상하게 밝은 햇살이 일정시대 관공서 건물 옆에서 이승 쪽으로 촉광을 때리고 있다이 표현은 한마디로 민주와 운동으로 겪은 자신의 불행한 지옥의 계절을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황지우는 <<나는 지금도 머리 감다가 물이 코로 조금만 들어가도 숨이 헉 멈춰버리고, 금방 그 지긋지긋한 고문실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자신에게로 돌아갑니다.>> (황지우끔찍한 모더니티<황지우 문학앨범>웅진출판) 라고 말했다. 이렇듯 황지우는 표현의 자유가 억압된 상황에서 진실을 말하다가 끔찍한 시련을 당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강한 햇살만 봐도 가려운 자기 생을 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살아가는 모든 일이 그저 가려움으로 끝나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시다.

 

 

2). 우울한 거울 3

 

 

한때 나는 저 드높은 화엄 창천에 오른 적 있었지

수캐미 날개만한 재치 문답으로!

어림 턱도 없어라

 

망막을 속이는 빛이 있음을 모르고

흰 빛 따라가다

철퍼덕 나가떨어진 이 궁창: 진흙-거울이어라

 

진흙-마음 밭에 부리 처박고 머리털 터는 오리 꼴이라니

더욱 두려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니

신간은 편하다만

 

이렇게 미친 척 마음 가지고 놀다

병 옮으면 이 우울한

거울 3

다시 빠져나갈 수 있을지 아슬아슬하다

 

돌아갈 길목에다가

램프를 두고 왔던가?



가장 높이 날아야만 여왕벌과 결혼 할 수 있는 수캐미의 날개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다. 그 날개만한 재치 문답으로 화엄 창천에 오른 사람들이 어디 화자뿐이랴. 아무리 얇고 작아도 그 날개를 바탕으로 자존심을 세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땅 위에는 부지기수다. 바로 그 작은 것이 존재하는 힘을 주기 때문이다. 이 시는 화자가 자신의 이런 모순을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 즉 어리석음을 인식함으로써 생생한 긴장감을 이끌어내고 있는 시라고 하겠다.

 

망막을 속이는 빛이 있음을 모르고 흰 빛 따라가다 철퍼덕 궁창에 나가떨어진다는 화자는 이 시가 들어 있는 시집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에서 진흙이라는 단어를 여러 번 쓰고 있다. 빛과 진흙은 서로 정 반대인 뜻으로 천당과 지옥 같은 의미로서 마치 자유와 구속으로 비교할 수 있다. 따라서 화자는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기 위하여 그에 상응하는 상황을 생각한다. 그러면서 지신의 히스토리를 구성하고 있다.

 

이 시를 쓸 때의 작가는 아마도 자신의 비참한 처지에서 오는 현실에 회의를 느끼고 있을 때라고 생각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감옥에서 극심한 고통을 겪어야 했던 화자가 자신의 처지를 깨달은 실존적 처량함이다. 그러므로 마음 밭에 부리를 처박고 머리털 터는 오리꼴이라도 더 두려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그래서 오히려 더 나아가서는 신간이 편하다고 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삶의 가치는 더 나은 조건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포기하는 데서 얻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결국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일이다. “돌아갈 길목에다가 램프를 두고 왔던가?“ 하는 마지막 의문점은 결국은 돌아간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는 뚯이다. 화자는 미친 척 마음을 가지고 놀다 아슬아슬 빠져나갈 것이다라고 한다. 우울한 거울 3은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의 고통에서 상상 유토피아를 찾아가는 현실도피적인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그 목표를 위한 하나의 성취대상이 보다 나은 가치를 추구하게 된다는 점에서 화자의 깊은 의지를 보여주는 시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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