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만드는 좋은 하루

2016.08.08 14:50

노 기제 조회 수:71

20160130                                        함께 만드는 좋은 하루

                                                                                                       노기제

 

    에어라인 카운터 앞에서 컴퓨터로 체크인을 시도 한다. 못할 이유 없다고 생각 되어 컴퓨터가 하라는 대로 차근차근 따라 한다. 잘 안 된다. 다시 처음부터 해 본다. 똑같은 화면에서 딱 멈추곤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도움을 청하려 주위를 둘러본다. 카운터 앞 컴퓨터로 보딩패스를 빼고 있는 손님들 대상으로 전용 도우미 인 듯한 여자 직원이 있다. 손을 들고 눈을 마주치려 해보니 내 옆 사람에게로 다가간다. 내 옆 사람은 도움을 청하지도 않은 상태인데, 자진해서 자기가 직접 화면을 바꾸면서 보딩패스를 빼 준다. 쉽게 금방 나온다.

  

   내 차례라고 생각하고 그 직원이 내게 오기를 기다렸다. 방향을 바꿔 내게서 멀어 진다. 서둘러 불렀다. 처음 나를 인식 한 후 몇 사람을 거치고도 나를 지나쳐 그냥 간다. 할 수 없이 나 혼자 다시 시도 한다. 똑같은 화면에서 또 멈춘다. 직원을 찾는다. 다른 곳에서 다른 일로 바쁜 듯 보인다. 나랑 서 너 번 눈이 마주 쳤지만, 아는 척을 안 하면서 계속 이리 저리로 이동 한다. 빤히 내 얼굴을 보면서도 반응을 안 준다. 나의 어떠함이 네 눈에 들지 않아, 네가 나를 이 모양으로 홀대를 하는지 모르겠다. 큰소리로 불러 세워서 더 큰소리로 도움을 청해도 계속 무시당한다면 내가 어떻게 행동 할는지 나도 모른다. 평생을 까칠한 여자로, 한 성깔 하면서 살아 온 악명 높은 내가 아닌가.

  

   숨 한 번 크게 들이 쉬고 잠깐 멈춰 본다. 깊은 곳에 자리한 또 다른 내가 속삭인다. 별일 아니다. 저 여자 직원도 나도 평안하고 행복한 하루를 살아야 한다. 더구나 난, 팔자 좋게 비싼 스키여행 떠나는 입장이다. 일에 찌들고 많은 사람들에게 깍듯이 인사 차려야 하고, 여러 가지 면에서 자신이 원치 않는 일로 시달리고 있는 저 여자 직원에게 조금 양보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러자. 내가 만만해 보여서 투정을 부리는 모양이다. 잠잠히 기다리자. 조금 노력해서 너도 나도 즐거운 마음이 되고 싶다.

  

   스키클럽 40 여명이 단체로 떠나는 여행이다. 엘에이에서 두 시간 비행거리다. 와이오밍 주에 있는 잭슨홀 스키장인데 난 초행이다. 작년 카나다 벤프 여행에 이어 금년이 두 번째로 이 클럽과 함께 가는 여행이다. 매주 여러 가지 취미 활동들을 하는 클럽에 난 오직 일 년에 두 번 있는 스키 여행만 따라 간다. 딱히 얼굴 익힌 회원도 없다. 있다 해도 일 년이 지났으니 다 잊은 상태다. 더구나 스키 여행은 스키 타는 동안 고글과 마스크로 얼굴을 온통 가리고 종일 스키만 타는 이유로 저들이 나를 구분해서 기억 해 준다는 확신도 없다. 나는 저들 몇을 기억하지만, 회원이다 싶은 사람에게 다가가 물어 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다시 휘 둘러보며 직원을 찾다가 서로 눈이 마주쳤다. 굳은 표정으로 빤히 보기만 한다. 부글거리는 마음을 달래며 달콤한 미소와 미안하단 소리와 나는 모르고 너는 다 잘 아니까 너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는 내용을 자세를 낮추며 진실한 눈빛으로 호소하면서 눈을 한참동안 맞추고 있었더니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나를 응시 하면서 억지로 그리고 느릿느릿 나를 향해 온다. 잠시 후, 그 직원의 굳어 있던 얼굴이 변하기 시작한다. 빠르게 부드러워 지면서 예쁜 미소가 번지기 까지 한다. 아아, 그리 딱딱하던 얼굴이 어느새 곱고 이쁜 얼굴이 되고 있다.

  

   곁에 널부러져 있는 내 스키를 가리키며 스키는 어떻게 배웠느냐고 상냥하게 묻는다. 예상 못했던 질문에 당황스러워 아주 환하게 웃어 주며 오래전 이라.....며 얼버무렸다. 자기는 스키 같은 건 배워 보지도 못했단다. 뭔가 짐작이 간다. 스키 클럽에서 유일한 동양인인 내 존재를 알아 차렸나 보다. 이 곳 저 곳 다니며 스키를 소지한 사람들 짐 부치는 걸 도와주면서 내 모습에 비위가 상했던 모양이다.

  

   내가 당당하게 받아야 할 서비스를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손해를 봐야 하다니. 평상시 나의 모습대로, 나는 손님이고 너는 나를 고분고분 섬겨야 되는데 너의 이 태도는 뭐냐고 냅다 고함이라도 질러 대고 계속 째려보고만 있었다면, 난 결국 비행기를 놓치고 말았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호명을 받으며 급하게 뛰어서 탑승 했다. 욕 한마디 입에 올리지 않고 무사히 어두운 터널을 빠져 나온 셈이다. 그 여직원의 오늘 일과가 어땠을까? 나처럼 기분 좋은 하루가 되었을 것이라 짐작 하면서 낯선 스키장에서의 행복한 일주일을 기대 해 본다.

 

 

 

미주문학 2016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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