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에 어리는 얼굴

2017.11.15 04:37

김수영 조회 수:90

노란단풍2.JPG

                                           Lake Tahoe와 노란 단풍


단풍에 어리는 얼굴


   수년 전 대학동문들과 한국의 단풍관광을 간 적이 있었다. 속리산 지리산 내장산 오대산 등 수려한 가을 단풍산을 바라보면서 탄성을 지르며 가을을 만끽했었다. 단풍이 그리워 레이크 타호 단풍관광 광고를 보고 단풍 여행을 떠났다. 조국의 단풍처럼 예쁜 단풍은 아니었지만 노란 단풍을 볼 수 있어서 그나마 펵 다행한 일이었다. 빨간 단풍은 산에서는 별로 볼 수 없었고 길가에 드문드문 가로수에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별로 볼 수 없는 노란 단풍이 보기가 참 아름다웠다. 은행 단풍잎은 아니었는데도 샛노란 단풍이 푸른 상록수들과 대조를 이루며 에메랄드 호수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레이크 타호는 주위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소나무와 잣나무 등 상록수로 뒤 덮여 있다. 이곳의 에메랄드 베이는 꼭 보아야 한다기에 배로 크르즈 관광을 했다. 호수 빛깔이 짙은 에메랄드 색깔이어서 주위 산에 있는 녹색 소나무들과 잘 어울렸다. 씨에라 네바다 산맥을 끼고 펼쳐지는 레이크 타호는 북미에서 산 정상에 자리잡은 호수 가운데 가장 큰 호수이다. 가주와 네바다 경계선이 이 호수를 가로 지르고 있다. 깊이가 501 m 나 된다. 

   수년 전 사부인과 딸네 가족과 겨울 스키를 즐기려 이곳에 처음 와 보았다. 겨울철이라 온 산이 눈으로 뒤덮어 있었다. 소나무들과 잣나무들이 눈으로 옷을 가라입고 바람에 나부끼며 햇빛에 반사되어 은 사시나무처럼 떠는 모습이 정겨웠다. 그 추운 겨울에도 호수는 얼지 않았다. 겨울바람에 물결이 계속 일렁이며 움직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석양에 비취는 호수의 노을 빛 색깔과 푸른 하늘을 지나 노을을 향해 날라 가는 기러기 떼들의 군무를 보면서 무아지경으로 몰입하는 경이로움을 느꼈다. 

   북가주에 살았던 사부인은 그 당시 폐암으로 매우 고생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가족들과 나를 데리고 겨울 레이크 타호를 관광시켜 주었다. 그 후 사부인은 일 년도 못 살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아들과 손녀들의 스키 타는 모습을 보고 매우 좋아하며 환히 웃던 모습이 떠 올랐다. 빨간 단풍처럼 노년기 마지막 인생을 아름답게 꽃피우며 살아온 사부인처럼 나도 그렇게 살고 싶어졌다. 빨갛게 그렇게 타오르는 촛불처럼 마지막 생명을 불태우는 단풍나무는 참 아름다운 삶을 살다가 떠나는 나그네와 같다. 

   가이드의 안내 방송에 꿈에서 깨어 난 듯 깨어 나 보니 에메랄드 베이 입구에 아름다운 작은 섬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해변 가까운 곳에 스칸디나비아 건축가가 1920년에 지은 아름다운 집이 있다. 참 고풍스러워 보이지만 입구에 도로 공사가 있어서 직접 들어가 보지 못해 못내 아쉬웠다. 1930년대 히트를 한 영화 ‘인디언 러브 콜(Indian Love Call)’ 찰영지가 이곳이라고 해서 정말일까 생각했다. 영화로 만들기 전 ‘로즈메리(Rose Marie)’란 뮤지컬로 유명세를 치른 작품이기 때문이다. 

   나는 집에 돌아와 인터넷을 뒤져보니 찰영지가 이곳이 아니고 캐나다 록키산맥에서 찰영이 되었다고 했다. 캐나다에 살았던 캐나다 원주민 인디언들의 두 부족이 서로 앙숙이었는데 두 부족에 속한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의 사랑 얘기를 다룬 영화였다. 두 청춘남녀의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역할이 애절했고 노래가 산울림으로 들려오는데 서로 산울림으로 화답하는 모습이 참 감동적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사부인을 생각하게 되었고 잊히지 않는 영화를 생각나게 해 주어 특별한 여행이 되었다./중앙일보 ‘이아침에’ (10-28-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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