쌈지에서 지갑까지/김학

2018.05.25 00:36

김학 조회 수: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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쌈지에서 지갑까지

三溪 金 鶴

(1)
새 지갑이 하나 생겼다. 멀리 스페인에서 비행기를 타고 온 귀물이다. 가죽지갑인데 카드와 신분증 그리고 지폐 등을 넣을 수납공간이 많고, 똑딱단추까지 달려 있어서 여간 편리한 게 아니다. 스페인 여행을 다녀온 여류 수필가 J가 건네준 선물이다. 더구나 돈을 불러온다는 붉은색 계통의 지갑이어서 더 마음이 끌린다.
새 지갑에는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이 들어있었다. 그게 마중물이 되어 앞으로 그 지갑에는 물 묻은 바가지 깨 들어붙듯 돈이 들어오리라 기대한다. 헌 지갑 속에 들어있던 것들을 새 지갑으로 옮겼다. 새 지갑이라 그런지, 지갑이 더 두툼해 보였다. 버릇대로 바지 왼쪽 뒷주머니에 넣었더니, 빵빵해졌다. 그렇지 않아도 내 엉덩이가 도톰한 편인데 빵빵한 지갑까지 호주머니에 넣었으니 뒤에서 내 엉덩이를 본 사람들이 얼마나 웃을지 모르겠다.
옛날쌈지는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없는 하나의 골동품이 되었다. 옛날 어른들은 천이나 가죽, 종이 등으로 만든 쌈지를 갖고 다녔다. 쌈지하면 담배쌈지를 연상하지만, 옛날 우리 조상들은 쌈지에 담배는 물론 돈이나 귀중품도 넣고 다녔다. 또 남성만이 아니라 여성도 사용했다. 이런 쌈지가 지갑으로 바뀌면서 소가죽이나 인조가죽으로 만들어졌다. 요즘엔 지갑 없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그러다 보니 지갑의 디자인과 색깔도 다양해지고, 재질도 고급화되었다.
내 헌 지갑은 검정색인데 특별한 사연을 갖고 있다. 20여 년 전 방송국에 다닐 때, 점심시간에 Y와 함께 동네목욕탕에 갔었다. 목욕을 끝낸 나는 먼저 사무실로 돌아왔는데, 헐레벌떡 뒤따라온 Y가 웃으면서 지갑이 있느냐고 물었다. 장난인 줄 알고 웃으며 왼손으로 뒷주머니를 더듬어 보니 지갑이 없는 게 아닌가? 목욕탕에서 누군가가 훔쳐간 것이다. 이미 엎질러진 물인지라 나는 체념하고 서둘러 뒤치다꺼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바로 금융기관마다 전화를 걸어 카드분실신고를 했고, 경찰서로 동사무소로 돌아다니며 운전면허증과 주민등록증 분실신고를 했다. 돈을 잃어버린 것보다 신고하러 다니느라 등에 땀이 솟았다.
지갑 분실소식이 알려지자 정이 많은 K선배는 당장 용돈이 아쉽겠다며 지폐 몇 장을 건네주었고, 마음씨 고운 K아나운서는 까만 고급지갑을 사주었다.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20년 가까이 사용한 그 지갑이 이번에 선물로 받은 스페인 지갑에게 임무를 물려주고 퇴역하게 되었다. 그 까만 지갑을 갖고 다니면서 나는 용돈부족으로 시달린 적이 없다. 그 지갑에는 언제나 넉넉하게 지폐가 담겨 있었다. K선배는 여러해 전에 하늘나라로 떠나버렸고, K아나운서는 몇 년 전 정년퇴직을 하여 만나기도 어렵다.

(2)
옛날 우리 선조들은 돈을 보관, 저장하는 용기로 금궤나 항아리 등을 사용했고, 돈을 갖고 다닐 때는 전대(錢袋)나 주머니. 쌈지 등을 사용했었다. 전대는 원래 돈을 넣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생활용품을 운반하려고 양쪽 끝이 터진 자루(포대)와 비슷한 형태의 천이나 가죽으로 만들었다. 이 전대(錢袋)는 금속화폐 등장과 더불어 중국에서 사용되었는데, 우리나라에는 기자조선 때 들어왔다.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을 때 기자조선 사람들이 그 성 쌓기를 돕고 돌아오면서 그 전대를 가지고 왔던 것이다. 또 전대(錢袋)는 옛날 병사들이 사용했던 전대(戰袋)가 발전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삼국시대 이후 우리나라 병사들은 전쟁에 나갈 때 전쟁용품을 담은 전대(戰袋)를 휴대했는데 허리에는 칼 같은 무기를 차고, 전대는 어깨와 허리에 경사지게 매고 다녔다. 이 전대는 그 편의성 때문에 일반에게도 널리 보급되었다. 고려 숙종 때부터 엽전이 널리 유통되면서 전대에 돈을 넣기 시작하여 전대(戰袋)가 전대(錢袋)로 바뀐 것이다. 돈을 휴대하는 용기로서는 전대 외에도 주머니와 쌈지가 있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한복을 입고 생활용품을 넣을 수 있는 주머니를 허리에 차고 다녔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낭(囊)이라는 주머니였다. 이 주머니는 남녀노소 모두가 갖고 다녔는데, 이 속에는 돈을 비롯해서 패물 등의 귀금속과 칼, 빗 등의 생활용품들을 넣었다.
옛날 우리 증조할머니는 가끔 이 주머니에서 사탕이나 곶감 같은 군것질거리를 꺼내주시곤 했었다. 증조할머니의 주머니는 나의 간식창고였다.
주머니는 비단이나 가죽으로 만든 남성용과 여성용, 어린이용으로 구분했었다. 그 종류는 모양과 용도에 따라 귀주머니, 두루주머니, 돈주머니, 향주머니 등 여러 가지였다.
우리가 입고 다니는 옷에 부착된 주머니를 호주머니 또는 개화주머니라고도 했는데, 중국에서 들어온 주머니여서 호(胡)주머니, 일본에서 들어온 주머니여서 개화주머니라고 불렀다.
어릴 때 어른들에게 세뱃돈을 받으면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던 추억이 새롭다. 그러다가 중학생이 되면서 지갑을 만났고, 그 뒤부터 지갑은 부적처럼 내 호주머니에서 떠나지 않았다. 늘그막에 소가죽으로 만든 새 지갑을 만났으니 든든하고 기쁘기 짝이 없다. 나는 이 새 지갑이 언제나 두툼한 배불뚝이가 되어 내 호주머니를 지켜 주리라 기대한다.
(2015.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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