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은 평양에서 냉면으로

2018.06.08 13:55

박제철 조회 수:50

점심은 평양에서 냉면으로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박제철

 

 

 

 2002년 가을, 금강산에 간 일이 있다. 동해안쪽 육로를 거처 꽉 막혔던 휴전선의 문이 열리며 말로만 듣고 상상했던 금강산에 간 것이다. 휴전선 아래 남녘 산에는 푸른 숲이 우거지고 들녘엔 오곡백과가 익어가고 있었다. 휴전선 철책을 가운데 두고 남쪽에는 우리군 병사 2명이 1조가 되어 북쪽을, 북쪽 역시 2명이 1조가 되어 남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남북을 가로막고 있는 철조망도 남측은 대한민국 굴지의 회사에서 견고하게 설치했지만 북측의 철조망은 목재를 이용하여 엉성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3겹으로 설치된 철조망이 분단의 아픔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휴전선을 거처 북쪽 검문소에 이르자 인민군 2명이 올라와 검문을 시작했다. 나는 흠칫 몸이 오그라들었다. 내 목에 걸고 있는 신분증의 직업란에는 전북지방경찰청이라고 소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6.25전쟁 때 저들이 제일 싫어했던 사람이 경찰과 군인이었다. 마음이야 그렇지마는 어쩌랴. 당당히 검문에 응했다. 그래도 마음의 위로가 되는 것은 검문하는 인민군이 중학생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어리고 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평균신장이 줄어들었다는 말을 들었는데 참으로 그런가 싶으니 측은한 생각까지 들었다.

 

 휴전선을 통과하여 금강산으로 가는 길은 한가롭기 그지없었다. 정주영 씨가 보냈다는 소 한 마리가 한가롭게 누워있었다. 아마도 전시품으로 매어 놓은 성싶었다. 들녘을 보니 벼가 아닌 옥수수가 심어져 있고, 간간이 배추도 눈에 띄었다. 거름이 부족해서인지 옥수수가 제대로 자라지도 못하고 배추도 거름기가 없어 보였다. 인근의 산도 금강산을 제외하곤 민둥산이었다. 땔감이 부족하여 다 베어다 쓰고 보니 민둥산으로 되어 버린 성싶다.

 

 관광객이 다니는 자동차길 옆은 주민의 삶을 보지 못하도록 높은 울타리를 만들었다. 어린 학생들은 가방대신 검은 보자기에 책을 둘둘 말아서 어깨에 둘러메고 소달구지를 타고 가는가 하면, 번호판을 달고 다니는 자전거가 울타리 틈 사이로 목격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60년대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도 북녘 땅의 도로 주변은 그 흔한 휴지 한 조각 담배꽁초 하나 없었다. 휴지나 담배꽁초 등을 버리거나 관광 중 나뭇가지 하나라도 자르다 적발되면 25달라의 벌금을 물게 된다. 관광코스도 정해져 있으며 가는 길 요소요소에는 감시요원이 배치되어 있었다. 체제를 비판하는 말을 하다가 적발되면 북에 억류되기도 한다.

 

 말로만 듣던 만물상을 올라가는 날이었다. 아름다운 바위들이 모여 만 가지 형상을 이루고 있다하여 붙어진 이름이 만물상(萬物相)이다. 아침부터 가랑비가 내리더니 이내 안개가 금강산을 에워싸 버렸다. 명산일수록 수줍음이 많아 사람에게 보여 주기를 꺼린다고 하는데 금강산은 일년에 두 달 정도만 얼굴을 내민다고 한다. 비가 와도 예정된 일정대로 소화해야 했다. 정면으로 올라가는 길은 경사가 심해 줄사다리를 타고 오르기도 했다. 정상에 오르니 만물상이라는 붉은 글씨가 새겨진 1미터 남짓한 표지석이 시야에 들어왔다.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보이는 것은 안개뿐이었다. 이곳이 말로만 듣던 만물상이구나 하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하산을 하고 말았다.

 

 다음날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날이 맑았다. 가을 하늘 만큼이나 맑은 삼일포 관광에 나섰다. 삼일포는 원래 동해바다의 만()이었는데 적벽강에서 밀려오는 모래와 흙이 쌓여 만()의 입구가 막혀 호수가 되었다. 옛날 선비들이 전국을 유람하면서 아름다운 곳에서 하루씩만을 머물기로 했는데, 삼일포에 이르러서는 그 아름다운 경관에 취해 3일을 머물렀다 해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 전설에 걸맞게 아름다운 삼일포였다. 다만 크고 작은 아름다운 바위엔 하나같이 김일성부자를 찬양하는 붉은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언젠가 남북통일이 된다면 새겨진 글을 없애야 할 텐데 하는 막연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숙소인 금강산특구엔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를 비롯한 남한의 대중가요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한 밤중 화장실에 갈 때 옆 친구와 같이 가야하는 것을 제외하면 여기가 남쪽인지 북쪽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안개 때문에 보지 못한 만물상을 언젠가 다시 한 번 보겠다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23일의 금강산 여행을 마치고 귀가했다.

 

 제한된 관광이었지만 그곳을 가려면 신청해 놓고 순서를 기다려야 했다. 뒤이어 개성관광의 길도 열렸다. 많은 사람들은 금강산 또는 개성관광을 원했고, 더 많은 관광지의 문이 열리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2007712일 우리나라의 관광객 박광자 씨가 새벽 산책 중 북한군에 의해서 피살된 뒤 어렵게 열렸던 휴전선의 문이 굳게 닫혀 버리고 말았다.

 

 지난 4,27 남북정상회담 때 회담장 밖 벽면에 철조망을 마음대로 넘나드는 나비들의 영상이 너무 감동적이었다. 회담장 안에서는 나비가 아닌 사람이 넘나드는 이야기가 이루어졌을 성싶다. 남북정상회담 뒤 무엇인가 급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핵을 페기하고 체제를 인정해야 하느니, 어떤 것이 세계평화를 위한 것이고 자국의 이익이 무엇인지 따지는 것은 국가의 몫이다. 지금 이해관계에 얽혀있는 북미회담이 세계인의 눈길을 끌고 중국, 러시아, 일본까지 이해타산을 따지며 끼어들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양새다.

 

 며칠 뒤면 이해관계에 얽힌 역사적 북미회담이 싱가포르에서 열린다. 회담이 잘되어 전쟁이 없는 평화의 나라, 백두산 아래에 비행장을 만들어 중국을 경유하지 않고 직항로로 갈 수 있는 나라,  철도와 육로가 연결되어 자유자재로 왕래할 수 있는 나라가 되어, 북한이 최고의 맛이라고 자랑하는 평양냉면을 점심때 가서 먹고 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상상은 나 혼자만의 바람은 아닐 성싶다. 상상이 현실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싶다.

                                                   (201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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