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시도 3형제

2018.07.05 14:44

전용창 조회 수:3

신시도 3형제

꽃밭정이수필문학회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전 용 창

 

 

 

 아마 20여 년도 훌쩍 지난 것 같다. 대학 후배 P와 그의 동기 K, 그리고 나는 여름휴가차 P의 고향인 고군산군도 신시도를 찾았다. 군대생활을 백령도, 연평도에서 보낸 나는 섬에 대한 향수가 많았다. 셋이서 한 차를 타고 비응도 선착장에 도착하니 P의 형님이 조그만 어선을 가지고 와서 기다리고 계셨다. 신시도로 가는 동안 형님은 나와 동생 친구를 번갈아 보며 몹시 반가워하셨다. 우리가 형님 집에 다다르니 집 밖에는 형수님이 마중을 나와 얼른 짐을 받아 주셨다. 짐을 푸니 형님은 이틀 전에 쳐 놓은 어망을 회수하자며 나가자고 했다. 부표를 찾아 어망을 당기니 우럭, 간자미, 꽃게, 전어 등이 들어 있었다. 우리는 통발도 건져 올렸다. 통발에는 낙지와 주꾸미가 잡혔다. 무값으로 우리에게 생선을 제공한 바다가 고마웠다.

 

 후배는 물고기를 형수님께 전하고는 신시도초등학교에 가서 족구를 하자고 했다. 학교는 집과 가까운 거리에 있었고, 바다와도 가까웠다. 그곳에 있는 오래된 향나무, 아름드리 벚나무가 오랜 역사를 말해주고 있었다.

 

 “해당화 피고 지는 섬 마을에 / 철새 따라 찾아온 총각 선생님

 19살 섬색시가 순정을 바쳐 / 사랑한 그 이름은 총각 선생님~(이하 생략)

 나는 교정에 들어서자 주위는 아랑곳없이 '섬마을 선생님'이란 노래를 불렀다.

 

 내가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꼭 한 번 하고 싶은 게 섬마을선생님이다. 백령도에서 군대생활을 할 때 ‘청산학원’이라는 야학교에서 1년남짓 수학을 가르친 적이 있다. 그때 학생들은 10대에서 30십대까지가 한자리에서 공부를 했었다. 스무 살이 넘은 학생들이 보자기에 싸온 굴전의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신시도학교는 학생이 10여 명에 불과하다. 그래도 운동장은 넓었다. 후배는 자신이 뛰놀며 꿈을 키운 초등학교라며 운동장을 펄쩍펄쩍 뛰어 다녔다. 형님과 내가 한편이 되고 후배들이 한편이었는데 P라는 후배가 어찌나 날아다니며 킥을 하던지 우리는 상대가 되지 않았고, 매번 졌다. 그럼에도 형님과 나는 서로의 헛발질을 보며 어찌나 웃었든지 배꼽이 쑥 들어갔다. 형님은 동생에게 다친 데는 없느냐며 무척이나 사랑스러워했다.

 

  집에 오니 형수님이 생선회에 소주를 준비해놓으셨다. 횟감이 혀에 닿기 무섭게 녹아내렸다. 소주는 술이 아니라 보약 같았다. 형님은 늦게 결혼하여 후배의 조카들 나이와 비슷비슷하다고 했다. 형수님은 신시도교회 집사인데 믿음이 아주 좋다고 했다. 내가 본 형수님 모습은 키도 크고 얼굴도 예뻐서 섬에 있기는 아까웠다. 마치 나무꾼에게 시집온 선녀 같았다. 그날 밤 우리는 술도 깰 겸 바닷가로 나가서 수영을 하였다. 바다를 보니 나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좋았고, 후배는 멀리 가지 마라며 고함을 쳤다. 우리는 모래사장에 앉아서 합창으로 포크송을 불렀다. 윤형주의 ‘조개껍질 묶어’, ‘두 개의 작은 별’도 불렀고, 어니언스의 ‘편지’도 불렀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니 형수님은 저녁식사를 내 오셨다. 여러 가지 생선을 넣어서 끓였다는 잡 어탕을 들으니 속이 후련했다. 아무리 술을 들어도 어탕 국물만 마시면 취하지 않았다. 우리는 고스톱을 쳤다. 형님은 구경한다 하여 셋이서만 밤새 즐겼다. 형수님은 심판관이었다. 잔돈을 바꿔주면 10%는 형수님 몫으로 드렸다. 나는 지금껏 그날처럼 잘 된 날이 없다. 초반부터 끗발이 좋았는데 끝내 기선을 잡았다. 아무리 져주려고 광을 내주고 쌍 피를 던져도 다시 부쳐오니 어쩔 수가 없었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판이 끝났다. 내가 싹쓸이했다. 후배들에게 나누어 주려 하였으나 그러면 재미가 없다고 하여 화투판 밑에 있는 돈을 몽땅 꺼내서 형수님에게 드리며 오늘 교회에 가시면 감사헌금으로 바치라고 했다. 형수님은 그 많은 돈을 주느냐며 놀라워 했다. 취기가 남아 있어 술 냄새가 나지만 후배는 늦잠을 자고, 나는 신시도교회에 갔다. 교인들 대부분이 할머니들이었는데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이상한 듯 쳐다보았다. 낯선 이방인이 와서 궁금도 했겠지만 아마도 신선한 교회에서 술 냄새를 피웠기 때문일 게다. 훗날 얘기를 들으니 술은 들었어도 주일예배를 지켰고 조그만 섬교회에 무명으로 감사헌금도 많이 했다며 기특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후배는 전주에서 주방기구, 위생기구 및 타일을 취급하는 건설자재 판매업을 하는데 내가 간혹 물건을 사러 후배 가게를 가면 그곳에는 항상 동생이 있었다. 남동생을 거두며 함께 사업을 한다. 어떻게 그 오랜 세월을 충돌 없이 동생과 사업을 하느냐고 물으면 오죽하면 형님 밑에 있겠냐며 서운한 일이 있어도 이해하고 잘했다고 칭찬을 한다고 했다. 신시도에 계시는 형님의 안부를 묻는 나에게 아직 하나도 결혼시키지 못하여 걱정된다며 형님을 염려했다. 그런 후배가 훌륭했다. 지난해 형님에게 서운한 말을 들어 삐져서 설에도 찾아뵙지 못한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복날에는 꼭 찾아뵈어야겠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후배는 형님을 아버지처럼 섬겼고, 동생을 건사하고 있었다. 며칠 전에 그런 후배와 점심식사를 했다. “지금도 3형제 사이가 좋으냐?”라고 물으니 “그럼요. 형님은 신시도에서 잘 살고 있고 동생은 지금도 저를 돕고 있어요.” 후배는 신앙심이 좋고 심성이 착하다. 그의 사무실에 가면 혼자서 성경을 펴놓고 말씀을 묵상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비록 아직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지만, 그럼에도 그를 만나면 마음의 평안을 얻는 것은 그가 받은 은혜가 나에게 전해져서가 아닐까?

 이제 신시도가 섬이 아니니 조만간에 당일치기로 다녀오자고 부탁했다. 인간은 시간을 사건으로 기억한단다. 나는 그때의 추억을 더듬으며 밤새 노래 부른 해변을 걷고도 싶고, 함께 족구를 하며 배꼽 빠지게 웃었던 형님도 만나고 싶다. 밤새 어탕을 끓여주며 건강을 챙겨주시던 형수님을 위해서는 조그만 선물도 전해드리고 싶다. 언덕 위에 있는 신시도교회에 가서는 술 취해서 예배드린 잘못도 뉘우치고 싶다. 그곳에 없는 수박이랑, 참외랑, 복숭아랑, 그리고 수다를 떨며 심심풀이로 꺼내먹는 강냉이 튀밥도 가지고 가고 싶다.

                                                    (2018.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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