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추김치를 담그며

2018.07.07 07:16

최정순 조회 수:57

상추김치를 담그며

    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최 정 순

 

 

 

 

  김치 담글 채비를 보더니 또 핀잔이다. 김치를 담갔다는 자랑은 집에서나 밖에서나 핀잔거리다. 요즘 세상에 누가 김치를 담가먹느냐는 것이다. 번거로움을 생각하면 머리에 쥐가 난다며, 사서 먹는 김치도 맛있고, 따져보면 더 싸다는 친구들의 주장도 틀린 것만은 아닌 듯싶다. 다들 그런 생각일까? 누가 뭐래도 나는 김치를 담그는 순간만은 참 재미있고 행복하다. 내가 담근 김치를 받고서 엄마김치가 짱이다느니, 김치장사로 나서보라는 말을 들으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내가 생각해도 무던하다. 4월에는 파김치를 몇 번, 5월과 6월에는 열무, 오이, 상추김치를 벌써 몇 번이나 담갔는지 모른다. 가을까지 먹어야 할 고춧가루가 벌써 바닥나 버렸다.

 

  그렇다! 세상만사가 다 때가 있듯이 쪽파나 열무, 상추도‘때’를 놓치면 그 맛을 볼 수 없어서다. 쪽파는 씨알이 여물기 전에 담가야 하고, 열무나 상추는 장마가 시작되면 비에 녹아버리니 미리 담가두면 그 맛을 밥상에서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겨울에도 딸기가 나오고, 마트에 가면 없는 게 없는 세상인데, 마치 내가 알뜰주부를 자칭하는 것 같으지만, 살아보니 그렇다는 것이다.

 

  김치를 담글 수 있는 재료는 개개인의 입맛만큼이나 다양하다. 배추와 무는 기본이고 솔, 가지, 고들빼기 심지어 길가에 피는 민들레 그리고 담가보지는 않았지만 박속김치까지 있으니 말이다담그는 방법은 거의 비슷하다. 물론 집집마다 조금씩 다른 비법이 있겠지만, 고춧가루, 마늘, 생강, 젓갈에다 갖은양념으로 버무린다. 좀 곱게 담그려면 양념을 더 넣고, 덜 넣고 차이지 특별히 상추김치라 하여 금()가루를 넣지는 않는다. 각각 성분이 뚜렷한 양념들이 서로 어우러져 갖가지 김치 맛을 내듯이, 우리네 삶도 이와 같지 않은가? 어떻게 인간이 혼자 살 수 있단 말인가? 사람과 사람끼리 서로 어우러져야 사회가 형성되듯이, 그래서 인간을 사회적동물이라 하나보다. 가정도 가족끼리 한데 어우러져야 만이‘화목’이란 맛이 나오지 않던가? 세상 이치가 어찌 이것뿐이겠는가? 양념과 잘 어우러진 김치를 어머니는 맛이 호아졌다고 하셨다.

 

  여름철에 상추만큼 만만한 푸성귀도 드물다. 우리 집 텃밭에서는 봄부터 시작하여 7월이 다가도록 뜯고 또 뜯어도 하룻밤만 자고나면 상추 잎이 손바닥 만하게 자란다. 겉잎은 삶아 갖은 양념하여 생선찌개를 끓이면 비린내를 없애주는데, 보드라운 상추 잎은 생선보다 더 맛이 있다. 벼락치기 상추 겉절이며, 보리밥에 구수하게 삭은 햇된장 얹어 쌈을 싸거나 뚝뚝 손으로 부질러 고추장 한 술 넣고 밥에 비벼 먹기도 했다. 때론 어머니의 상추쌈엔 밥은 온데간데없고 된장과 고추장이 전부였던 그 옛날 대소쿠리에 수북하게 담긴 상추는 고픈 배를 채워주는 여름밥상의 꽃이었다.  

 

  지금도 상추를 씻으려면 가끔 떠오르는 그리운 추억 하나가 있다. 해거름에 대소쿠리를 옆에 놓고 상추를 뜯고 있노라면 울타리 너머로 나를 부르던 그 목소리. 부끄러워 소쿠리에 고개를 처박았던 일이며, 상추를 씻으러 우물에 가는 일이 정말 싫었다. 두레박으로 널벅지에 물을 가득 부어 놓고는 말없이 자기 집 툇마루로 사라졌던 그 청년은 당시 대학생이었다. 나와 같은 반 똥냄이 형이고 탱자나무집 아들로 통했다. 낯 뜨거워 고맙다는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던 내숭쟁이 단발머리소녀였던 나. 중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하루는 학교에 가자마자 담임선생님이 교무실로 불렀다. 그 당시 교무실을 들락거리는 것은 사고뭉치 아니면 모범생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 같은 것이었다. 선생님 책상에 웬 군사우편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이게 누구냐고 묻는 말씀에 무슨 대답을 했는지 기억은 없으나 편지 첫머리에‘귀여운 정순아!’란 단어는 지금도 생생하다. 답장을 써놓고 어머니한테 들키는 바람에 붙이지도 못했던 일이 오늘따라 생각할수록 달콤하다. 나에겐 그 편지가 이성한테 받아본 첫 번째 편지었다. 그 뒤 바람결에 들은 이야기로는 결혼했으나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는 소식이 전부였다.

  소서 무렵이면 상추에 꽃대가 올라와 끝물이 된다. 씨받을 꽃대 몇 개만 남기고 모두 잘랐다. 꽃대를 전부 자른 날은 상추김치 담그는 날이었다. 상춧대를 풋돌로 자근자근 찧어 살짝 간하여 쓴맛을 뺏다. 돌확에 붉은 고추와 마늘 생강을 넣고 풋돌로 갈다가 밥도 넣고 갈았다. 양념냄새가 앞집 뒷집 고삿까지 소문을 냈다. 그 생각을 하니 금세 입안에 침이 고인다. 돌확으로 모여와 한 입 받아먹고는 상추 특유의 쓴맛과 얼큰한 맛으로 맹물을 들이켜야 했다. 그런데 상추꽃이 필 무렵이면 아버지의 속앓이가 시작되었다. 강둑에서 뜯어온 쏙으로 즙을 내서 장독대에 놓고 밤이슬을 맞힌 다음 아침마다 마셨다. 쓴 냄새가 진동했으니 맛은 얼마나 썼을까? 그때 어머니와 아버지는 쌉쌀한 상추김치와 쓰디쓴 쑥즙을 마시면서도 왜 뒷맛이 달달하다고 하셨을까? 그 쌉쌀한 맛과 그 쓰디쓴 냄새를 어디서 만나볼 수 있을까? 이해가 되지 않았던 그 시절이 정말 그립다.

 

  옛 추억을 더듬으며 상추김치를 담갔다. 쌉쌀하면서도 뒤끝이 개운한 이 맛이라니! 자식이 무엇이기에, 바로 택배로 부쳤다.‘엄마김치 맛이 짱이네, 김치장사로 나서봐’라는 말을 은근히 기대하면서 전화오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전화가 왔다. 그런데 딸애의 첫마디가 예상외였다.

 “엄마, 김치가 왜 이렇게 써요? 몇 번을 먹어봐도 쓰네요.”

  이 말을 듣는 순간, 서운한 마음까지 들었지만 그 마음은 잠깐이었다. 계속해서 뒷맛이 개운하다는 등 다시 먹어보라는 등 전화기에 대고 내가 정말 김치장사처럼 설득하다시피 했지만, 끝내 '엄마김치 짱'이란 말은 듣지 못하고‘엄마 수고하셨어요. 잘 먹을게요.'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는 끊겼다.

 

  딸아! 쓴맛이 어찌 음식에만 있더냐. 쓴맛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단다. 달콤함이 행복이라면 쓴맛은 고달픔이란다. 살다보면 쓴맛 같은 인생길이 펼쳐질 때도 있을 터인데, 처음엔 쌉쌀한 맛이지만 뒷맛이 개운하면서 잃었던 입맛을 되찾게 해주는 상추김치처럼, 고생 끝에는 반드시 즐거움이 온다는 뜻이다. 인생 칠십 고개를 넘긴 어미도 이제야 상추김치의 쓴맛에 매료되었단다. 오늘따라 쌉쌀한 상추김치와 쓰디쓴 쑥즙을 마시면서도 자식들 앞에서는 달달하다고 하셨던 부모님이 사무치도록 보고 싶다.

 

                                        (2018.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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