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 속에서 나온 사람

2018.07.08 19:32

한성덕 조회 수:3

관 속에서 나온 사람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한성덕

 

 

 

  어느 날이었다. 알렉산더는 ‘더 이상 정복할 세계가 남아 있지 않다.’고, 울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한창 나라가 확장일로에 있을 때, 32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왜 죽었는지 정확한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그가 죽어서 유리관 속에 넣어져 알렉산드리아로 옮겨진 뒤,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석관 속에 안치되었다는 사실이다.

 천하를 호령하던 알렉산더대왕도 죽음 앞에서는 무기력하고, 나약한 존재에 불과했다. 그래도 기백하나만큼은 살아있어서, 마지막 그가 남긴 유언은 오늘날까지 사람들의 마음을 숙연케 하고 있다.

  “내가 죽으면 관 양쪽으로 구멍을 뚫어서 손이 보이게 하라.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게 인생인 것을 온 천하가 알 수 있도록 말이다.”    

  이렇듯, 죽으면 필수적인 게 관이다. 그러면서도 제일 싫어하는 것 중의 하나가 관이다. 그런 관 속에서 ‘사람이 나왔다’니 어찌된 일인가?

 목회를 가리켜서 ‘종합예술’이라고 칭한다. 사람에 관한 모든 일을 하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설교는 ‘목회의 꽃’이라 부른다. 그리고 여러 일들이 있는데, 내 나름의 별칭을 붙였다. 아기 때 베푸는 유아세례나, 14에 실시하는 세례식은 ‘인생의 꽃’, 성년이 되어 짝을 찾아서 행하는 혼례식은 ‘사랑의 꽃’, 인생을 마무리하는 장례식은 ‘영혼의 꽃’이라고 말이다.

  이 중, 사람의 마음을 찡하게 하는 것은 장례식이다. 목회초기만 해도 ‘장례식장’이라는 게 없었다. 교인이 사망하면 23일 동안의 모든 장례절차를 교회 대표들과 함께 목회자가 손수 진행했다. 임종예배에 이은 입관예배, 하루 한 번의 위로예배, 땅에 묻힐 때의 하관예배, 집에 와서 마지막으로 드리는 위로예배, 때문에 3일간의 장례식을 어떻게 치르느냐에 따라서 목회의 성패가 좌우될 만큼 각 가정의 관심도가 매우 높았다.

  그러나 가장 힘들고 하기 싫은 게 ‘염장이’노릇이었다. 좋은 말로 ‘사람의 마지막 모습을 아름답게 꾸며주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차디찬 시체를 만진다는 게 어디 좋은 일인가? 먼저 시체의 모든 구멍을 막아 놓아야한다. 시간이 되면 대야에 알코올을 붓고 솜에 적셔서 몸을 닦는다. 고무장갑을 끼고 시신을 닦으면 좋으련만, 유족들의 싫어하는 눈치가 보여서 그저 맨손으로 했다. 부모일 경우 자녀들에게 마지막이니까 손수 ‘씻겨드리라.’고 알코올 솜을 내밀면, 대부분은 흠칫하면서 받는다. 속옷부터 시작해서 두루마리를 입히고, 손과 발을 꽁꽁 묶어 관속에 넣으면 입관이 끝난다.

  염을 할 때마다 나타나는 현상들이었다. 얼굴에서는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속옷은 등줄기에 찰싹 달라붙는데, 방안의 역겨운 냄새는 코를 찔렀다. 행여 실수할까봐 조마조마한데, 한 시간이 하루처럼 느껴지고, 유족들의 흐느낌을 달래야 하는 고충(?)은 괴로움을 더했다. 일이 다 끝나고 나면 피곤이 밀려와 온몸이 나른했다. 그래도 눈물을 그렁그렁하며 ‘수고하셨다’고 박수를 보내는 유족들을 보면 피곤이 스르르 녹아내렸다. 그렇다 해도 ‘염’은 진땀나는 작업이요, 사명감으로 해야 하는 목회자의 몫이다.

 

   1984년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3학년 졸업반이었다. 학부 과정에서부터 시작한 7년 과정의 신학수업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학기 초였다. 우리 신학대학원 ‘원우회’ 주최로 장례식에 관한 세미나가 있었다.

  그 세미나에서 ‘시체모델’을 찾았다. 시간이 흐르지만 선뜻 나서는 자가 없었다. 내가 손을 들자 곧바로 불려나갔다. 원우들 600여 명 중에서 특별 선발된 게 아닌가? 단 한 사람의 경쟁자도 없이 합격되기는 생전 처음이다.

  뽑힌 뒤에는, 앞서 얘기했던 모든 일의 시체가 되었다. 한 시간가량 진행되었으며, 관속에서 20분 남짓 있었다. 다 끝나고 일어날 시간인데, 강사는 귓속말로 ‘나오라’ 하면 벌떡 일어나라고 했다. 말대로 ‘벌떡’ 일어났더니, 원우들 모두가 “와~”하고 비명을 질렀다. 알면서도 온 몸을 삼베로 칭칭 감은 채 일어났으니 아찔했으리라. 지금도 그 비명소리가 선명하게 들리는 성싶다.

 그 때 관속에서의 느낌은 ‘죽음이 별거 아니라.’는 감정이었다. 결코 두렵지 않다는 건데 지금도 그 생각은 여전하다. 기독교 신자요 목사로서 천국을 소망하는데 따른 신앙심 때문이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도 ‘두려움이 없다’는 믿음이, 내 인생을 폼 나고, 멋스럽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그래도 힘들고 어려울 때는, 꽁꽁 묶인 몸으로 ‘벌떡’ 일어났던 힘으로 벌떡 벌떡 일어나곤 한다. 관 속 20분의 죽음(?)이 나를 새로운 인생으로 태어나게 했다. 그 힘으로 60대를 살고 있다면, 억지요 우스꽝스러운 표현이라 할까?  

                                                                    (2018.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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