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 쓰기

2018.07.11 18:40

김학 조회 수:15

<나의 수필 쓰기>

                                    *늘 초심으로 수필을 쓰고 싶어

                                                                                                                  김 학





*수필과 나의 인연

나는 지금까지 <수필아, 고맙다>, <쌈지에서 지갑까지> 등 14권의 수필집을 냈고, 어림잡아 6백여 편의 글을 써서 수필이란 탈을 씌워 우리 수필문단에 내놓았다. 1962년 대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아웃사이더의 사랑이야기」란 수필을 써서 대학신문에 발표한 이래 무려 56년 동안 이만큼의 수필을 썼으면 지금쯤 도가 터서 누가 제목만 던져 주면 거미꽁무니에서 거미줄이 나오듯 술술 단숨에 쓸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도 나는 처음에 글을 쓸 때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큰 변화가 있을 것 같지도 않다.

내가 처음으로 수필에 관심을 가졌을 때는 지금과 사뭇 다른 여건이었다. 지금처럼 수필의 이론과 창작실기를 배울 수 있는 교육기관도 없었고, 또 수필이론서도 구하기 어려웠다. 그러니 학창시절 국어시간에 배운 수필공부가 전부였고, 선배들이 발표한 수필작품을 읽으면서 어깨너머로 익혀야 했다. 등불도 없이 어두운 동굴 속을 걷는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선배들의 작품을 읽고 흉내 내기를 되풀이하면서 수필작법을 스스로 터득해야 했다. 그러기에 나는 문학이론보다는 경험을 스승으로 여기면서 수필을 쓴다. 그런 어려움을 겪었기에 나는 새로 문단에 얼굴을 내민 신진 수필가들이 한없이 부럽고 또 두렵다. 그래서 후생가외(後生可畏)란 말이 생겼는지는 모르지만…….

요즘에는 누구나 형편이 나아졌으니 좋은 수필집을 얼마든지 구해서 읽을 수 있고, 다양한 수필이론서들이 많이 출간되었으니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수필이론을 독학할 수 있으며, 또 전국 방방곡곡의 대학교 평생교육원을 비롯하여 문화원과 도서관, 백화점 등 곳곳에서 수필문학강좌를 열고 있으니 수필공부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얼마나 좋아졌는가.

 

*수필소재와의 만남

나는 수필의 소재를 내 생활주변에서 찾는다. 나의 갖가지 체험은 물론이요, 신문이나 잡지, 텔레비전이나 인터넷까지도 나에게 좋은 소재를 제공해 준다. 그 소재가 내 눈에 띄는 순간 ‘이것으로 수필 한 편 써야겠다.’ 싶으면 바로 컴퓨터 앞에 앉는다. 그런 창작태도가 이제는 버릇이 되었다.

처음 수필집을 한 권 내고나니 이제는 소재가 없어서 더 수필을 쓸 수 없겠구나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우수마발(牛溲馬勃)이 모두 수필의 소재라더니, 수필소재를 알아보는 눈만 있다면 우리 주변에는 수필 감이 무한대로 널려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수필은 문장으로 엮는 문학이다. 때문에 수필가라면 제대로 문장을 엮어갈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글맞춤법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인터넷을 뒤지니 <한글 맞춤법>과 <한글 누리집[www.hangeul.or.kr]> 등이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맞춤법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아무리 좋은 소재로 요리한 수필일지라도 단어표기, 띄어쓰기, 어법, 어순, 문장부호 등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으면 좋은 수필이 될 수 없고, 그런 작품은 독자를 감동시키지도 못한다. 특히 문장부호는 그 용법을 알고 정확하게 활용해야 한다. 또 어떤 이는 물음표(?)나 느낌표(!) 다음에 또 마침표(.)를 나란히 찍기도 한다. 그러나 물음표나 느낌표도 엄연히 하나의 문장부호인 만큼 그 뒤에 마침표를 더 찍을 필요가 없다. 또 산문시와 짧은 수필은 그 길이로만 보면 분간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띄어쓰기를 제대로 하지 않고 문장부호를 사용하지 않았으면 그것은 산문시이고, 띄어쓰기를 잘 지키고 필요한 곳에 문장부호를 넣었으면 그건 수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수필가는 과학자들처럼 항상 물음표를 갖고 살아야 한다. ‘왜 그럴까?’ 생각하는 버릇을 지녀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같은 소재일망정 수필가 나름의 독창적인 해석이 가능한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耳目口鼻, 眞善美貞叔賢, 東西南北, 梅蘭菊竹, 身言書判, 仁義禮智信 등 한자숙어를 보면서 왜 한자의 배열 순서를 그렇게 고정시켰을까를 따져 보라는 이야기다. 그것이 오랜 관행이라 할지라도 한 번쯤은 ‘왜 순서가 그렇게 되었을까, 그 순서를 바꾸면 어떨까?’를 생각해 보며 어순을 바꿔보는 것도 좋다.

 

*나의 수필 쓰기 5단계 전략

나는 수필을 쓸 때 내 나름대로 정해둔 수필쓰기 5단계 전략이 있다. *주제선정-*관련소재 모으기-*틀 짜기-*원고 쓰기-*글다듬기가 그것이다.

수필의 주제가 결정되면 그 주제와 연관된 소재들을 최대한 긁어모은다. 내 기억 속의 소재들도 징발하고, 참고 서적이나 인터넷을 뒤져서라도 관련 소재를 최대한 모은다. 열 가지든 스무 가지든 자료를 모아 메모를 한 뒤, 활용가치가 높은 소재들만 남기고 나머지는 과감히 버린다. 이런 단계를 거치면서 한 편의 수필을 쓴다. 좋은 주제를 만나 그에 어울리는 소재를 찾기도 하지만, 반대로 참신한 소재를 만나 그 소재에서 주제를 추출해 내기도 한다.

*

나의 글다듬기 방식

나는 글을 다듬을 때마다 윤오영 선생의 수필 「방망이 깎던 노인」을 떠올리곤 한다. 어쩌면 그 노인의 방망이를 깎는 태도가 바로 수필가에게 수필 다듬기의 본보기를 보여 주는 것 같아서다. 그 노인은 기차시간이 다 되었으니 그만 방망이를 달라고 재촉하는 소비자에게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느냐며 나무란다. 그래도 어서 달라고 재촉하자 안 팔 테니 다른데 가서 사라고 엄포를 놓는다. 소비자는 왕이라는 세상에 방망이 깎던 노인은 그 왕 앞에서 오히려 큰소리를 치는 셈이니 얼마나 꼬장꼬장한 장인(匠人)인가? 그 방망이 깎던 노인은 수필가는 물론 모든 예술가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일깨워주고 있다. 수필가라면 모름지기 이 방망이 깎던 노인에게서 진짜 수필가로서의 자세를 배워야 하리라. 청탁원고 마감에 쫓겨서 허둥지둥 원고를 마무리하여 보내는 수필가라면 그 노인의 태도를 보고 무엇인가 크게 뉘우치고 깨달아야 할 것이다.

나는 글을 다듬을 때 밤에 쓴 수필은 낮에, 비나 눈이 내릴 때 쓴 글은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날 다시 읽어 보며 글을 다듬는다. 날씨에 따라 내가 너무 감상에 치우쳐 쓰지 않았는지 검토하고자 그런 것이다. 나의 글다듬기는 며칠 또는 몇 주일, 몇 달이 걸리기도 한다.

나는 또 글다듬기를 할 때마다 제목과 서두, 내용, 결미까지 꼼꼼히 읽으면서 단어 하나하나를 짚어간다. 이 단어를 더 쉬운 우리말로 바꿀 수는 없을까, 토씨를 넣을 것인가 뺄 것인가를 생각한다. 그뿐 아니라 한 글자라도 더 줄일 수는 없을까 궁리한다. 그것이 수필문장의 경제학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한자말이나 외래어는 가능한 한 우리말로 바꾼다. 그러다 보니 영어의 번역문투가 우리말에 많이 스며들었고, 그런 사실을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경우도 없지 않다.

‘~위하여’란 어휘를 생각해 보아도 그렇다. 이 어휘는 영어 ‘~for +명사(동사 +ing, to +동사원형)’을 번역한 어투지 순수한 우리말의 어투가 아니다. 그런데도 그 어휘가 순수한 우리말로 알고 즐겨 사용한다. ‘~위하여’를 ‘~하고자’ ‘~하려고’ 등으로 바꾸면 자연스러운 우리말 투가 된다. 또 ‘~후’자를 생각해 보아도 그렇다. 이는 한자 ‘後’자를 뜻하는 한자말인데 한문세대는 말할 것도 없고 한글세대까지도 무의식적으로 이 글자를 사용한다. ‘後’자를 우리말로 바꾸면 ‘뒤’다. 그런데 버릇처럼 순수한 우리말 ‘뒤’자는 ‘後’자에 밀려나고 있다. ‘아침밥을 먹은 뒤’라고 표현하면 좋을 텐데 ‘아침밥을 먹은 후’라고 쓰면서도 그것이 한문문장 투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다시 말하지만 원고를 마무리 지은 다음, 글을 다듬을 때는 단어 하나하나를 읽어 가면서 그 단어를 순수한 우리말로 바꿀 수 있는 한 바꿔야 한다. 그래야 세종대왕께서 만드신 우리말이 얼마나 아름답고 쓰임새가 높은지도 알게 될 것이고, 그렇게 작품을 손질하고 나면 초등학교 5,6학년생이 읽어도 이해할 수 있는 친근한 수필로 바뀔 것이다. 그래야 수필가를 우리말 지킴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게 아닌가.

*

수필가는 조물주와 동격

수필가는 감히 조물주와 동격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해 보자. 이는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니다. 무생물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살아있는 존재로 바꿀 수도 있는 게 수필가다. 길가에서 만난 돌멩이, 농기구창고에서 만난 괭이나 낫에게도 목숨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게 수필가란 말이다. 그러니 수필가의 권능이 조물주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또 반대로 수필가는 살아있는 생물체에게서 목숨을 거두어 무생물처럼 다룰 수도 있다. 수필가는 모름지기 무소불위의 권능을 가진 글쟁이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허투로 남용해서는 안 된다. 펜을 조자룡 헌 칼 휘두르듯 해서는 독자의 공감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 어느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나는 의미심장한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천불천탑(千佛千塔)으로 유명한 전남 화순의 운주사에 들른 신혼부부의 대화에서였다. 건축가인 신랑이 신부에게 돌부처를 설명하면서, 불상(佛像)은 석공이 돌을 쪼아서 조각한 게 아니라 석공이 바위 속에 숨겨진 불상을 찾아낸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 멋진 말을 들으면서 무릎을 쳤다.

“수필은 수필가가 수필소재를 찾아서 문자로 표현하는 게 아니라 수필가가 수필소재 속에 숨겨진 수필을 찾아내는 게 아닐까?”

붓 가는대로 쓰는 게 수필이고, 누구나 쓸 수 있는 게 수필이며, 형식이 없는 게 수필이라고들 한다. 그렇게들 말장난을 하니까 여태까지 수필이 대접을 받지 못하고, 수필쓰기도 더 어려워진다. 수필이란 게 일정한 틀이 있다면 19공탄 찍어내듯 하면 될 텐데 그럴 수가 없으니 답답하다.

나는 지금도 쓰면 쓸수록 어려운 게 수필이라고 여긴다. 그러면서도 수필을 나의 반려로 삼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나는 항상 남의 좋은 수필을 탐독하는데 게을리 하지 않는다. 하루 세끼 밥을 먹듯 최소한 하루 세 편의 수필을 읽으려 노력한다. 내가 수필을 쓸 수 있는 한 앞으로도 나는 이런 태도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김학 약력

1980년 월간문학 등단/『수필아, 고맙다』등 수필집 14권,『수필의 길 수필가의 길』등 수필평론집 2권/ 한국수필상, pen문학상, 영호남수필문학상 대상, 신곡문학상 대상, 전주시예술상, 목정문화상, 전라북도문화상 등 다수 수상/ 전북수필문학회 회장, 대표에세이문학회 회장, 전북문인협회 회장,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이사장,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전담교수 역임,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교수/ e-mail: crane43@hanmail.net http://crane43/kll/co/kr 010-5637-3389

54920 전북 전주시 덕진구 안덕원로 251, 102동 102호(한신휴플러스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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