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악산에 오르니

2018.07.15 18:59

신팔복 조회 수:7

모악산에 오르니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신필복  

 

 

 

 

  장맛비가 소강상태다. 아파트 창문 너머로 보이는 모악산이 또렷하다. 하늘엔 옅은 구름만 끼어있다. 오늘은 중국발 황사도, 미세먼지도 보이지 않는다. 불쑥 산에 가고 싶었다. 혼자 가는 산행은 조금 심심하긴 해도 품어주는 자연이 있어 외롭지는 않다. 모악산은 그리 높지 않지만, 완주 9경 중 세 번째로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전주시민이 누구나 쉽게 찾아가는 산이다. 요즘은 소문을 듣고 다른 지역에서 찾아오는 등산회원들도 많다.

 

  터벅터벅 산을 오르는데 벌써 내려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요즘 날씨가 더워서도 그렇지만 토요일이라 새벽등산을 즐긴 것 같다. 하산하는 발걸음은 경쾌해 보였다. 서로가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목소리도 명랑하게 들린다. 그들은 토끼같이 빠르게 내려가고 나는 거북이처럼 느리게 올라간다. 길을 따라 오를수록 숲이 좋다. 그늘을 펼쳐주는 우뚝한 나무들이 오늘따라 무척 고맙다. 나무다리를 건너 지팡이를 짚고 서서 가쁜 숨을 골랐다. 얼굴에도, 목덜미에도 땀이 주르륵 흘렀다. 수건을 꺼내 땀을 닦았다. 가슴 속 심장이 쿵쾅쿵쾅 요동을 쳤다. 달리기 시합을 하고 듣던 박동과 같다. 혈관을 청소하는 맥놀이도 빠르다. 노폐물을 말끔히 씻어주는 것 같다. 혈액을 따라 풍부한 산소와 신선한 음이온이 뼛속까지 전달되는 기분이다.

 

  골짜기를 타고 맑은 물이 흘러내린다. 무척 시원해 보인다. 바위에 부딪혀 작은 폭포를 만든다. ‘좔좔’ 소리를 내며 흘러내리는 물은 웅덩이에 고여 작은 물고기를 품었다. ‘물 만난 고기’라더니 천방지축으로 신나게 논다. 노련한 잠수부들이다. 물고기처럼 풍덩 빠져보고 싶었다. 손등에 물을 끼얹으니 얼음처럼 차다. 이 물은 부딪치고 깨지고, 흩어지고 모여서 만경강을 거쳐 서해로 도도하게 흘러든다. 바다를 즐기고 파도를 즐기다가, 태양의 펌프작용으로 하늘로 솟아 다시 비구름이 되어 지상으로 떨어진다. 연어가 고향을 찾듯 이곳으로 내려 모악산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어 주었으면 좋겠다.

 

  가파른 산비탈을 힘겹게 걸어 올라와 쉼터에 앉았다. 배낭을 열고 과일을 꺼내는 사람, 사탕을 먹는 사람들이다. 나도 물을 마시고 사탕을 입에 넣었다. 혀끝이 달콤하다. 피로가 풀리는 것 같다. 나무 사이로 새가 난다. 평생을 함께 지내는 단짝인 것 같다. 쫓고 쫓기듯 날아서 큰 소나무 가지에 앉는다. 오래도록 이곳을 지켜온 붉은 소나무다. 낙락장송은 우리의 금수강산을 지켜왔다. 동산에 우뚝한 소나무는 시인 묵객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늘 푸르고 고고한 소나무의 자태는 선비의 표상이다. 고산 윤선도는 오우가에서 소나무를 노래했고, 추사 김정희는 세한도에 소나무를 그렸다. 눈 쌓인 날 더욱 찬사를 받게 되는 게 소나무 아니던가? 금강산의 미인송이 눈에 삼삼하다.

 

  수왕사에서 합장하고 약수를 마셨다. 갈증이 풀리며 속이 시원해졌다. 경각산과 구름에 어우러진 구이저수지가 나뭇가지 끝으로 얼굴을 내민다. 학창시절에 친구들과 놀러 왔던 저수지다. 그땐 어찌나 커 보였던지, 정말 놀랐었다. 낚시꾼도 많았던 저수지였다. 또다시 계단을 걸었다. 드디어 텔레비전 중계탑 아래, 해발 793.5m 정상에 올랐다. 눈 아래 쫙 펼쳐진 나무들이 습기에 젖은 듯 조용하다. 비단길 능선을 따라 전주 시내가 펼쳐져 보이는데 내가 사는 인후동 삼호아파트는 찾을 수가 없다. 가까운 평화동 꽃밭정이는 공작용품을 세운 듯 아파트 숲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꿈의 보금자리다.

 

  지금껏 30여 차례 넘게 올라온 모악산이다. 봄에는 봄대로 좋고, 가을엔 가을대로 좋다. 무더운 여름이나 눈 내리는 겨울에도 언제나 포근하게 감싸주는 산이다. 사철 아름답게 느껴지는 모악산은 언제나 나에게 삶의 활력을 준다. 나는 모악산이 좋다.

                                                  (2018.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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