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친구

2018.07.16 19:29

신효선 조회 수:10

그리운 친구

꽃밭정이복지관 수필창작반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신효선

 

 

 

 

  스위스에 있는 친구 O의 전화번호를 알려주겠다는 친구 J의 문자를 받았다. 너무 반가웠다. 스위스에 있는 친구 O는 간호대학 동창이다. 학교 다닐 때 나와 J 그리고 O, 셋은 친했다. O가 조국을 떠난 지 어느덧 40여 년이 흘렀다. 그립고 보고 싶은 친구, 가끔은 지워버린 공책 속의 연필 자국으로 내 마음에 새겨진 그리운 친구.

  학교를 졸업하기 전 우리 셋은 다른 친구 두 명과 함께 홍도에 갔었다. 준비물은 서로 즐거운 마음으로 분담했었다. 나는 솜씨 좋은 언니가 김치를 맛있게 담가 주었다. 언니는 동생을 위해 솜씨를 내어 정성껏 김치를 담갔다. 게다가 김치가 시어지지 않게 생 계란을 사이사이에 넣었다. 우리는 야간열차를 타려고 이리(익산)에 있는 O의 집에서 모였다. 모두가 학생들이라 주머니 사정상 완행열차를 타고 목포에 갔는데, 의자 밑에 있어야 할 김치가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내리면서 자기 것인 줄 알고 가져갔나 보다. 아니면 그때만 해도 모든 것이 귀한 시절이라 모른 척 가지고 내렸을지도 모른다. 황당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홍도에 도착했는데 몰려온 태풍으로 구경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섬 전체를 집어삼킬 것 같이 밀려오는 성난 파도의 기세에 우리는 밖에 나가는 것조차 무서웠다. 밤이면 홍도 모기와 전투를 벌이며 밤잠을 설쳤다. 끼니가 되면 김치가 없으니 양파와 감자로 된장국만 끓여 먹었다. 잃어버린 김치 생각이 절로 났다. 태풍이 지나가자 우리는 서둘러 짐을 꾸려 예정일보다 며칠 늦게 홍도를 떠났다. 그때는 힘들고 아쉬움뿐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니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그리워진다. 결혼 후 남편과 나는 홍도에 가서 유람선을 타고 그때의 이야기를 하며 아쉬움을 달래기도 했었다.

  JO, 그리고 나는 소록도에도 간 적이 있었다. 졸업하면 나이팅게일 정신을 따라 소록도에서 봉사하며 살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우리도 나이팅게일의 후예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의 순수한 뜻은 좋았는데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온 세계 사람들에게 '사랑의 천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영국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일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자기 한 몸만의 행복을 뿌리치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에 몸 바쳐 일했다. 191090세의 나이로 나이팅게일은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고 말았다. 온 세계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나이팅게일은 한 번 옳다고 생각한 일은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물러서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한 참되고 바르게 사는 마음을 우리는 닮고 싶었다. 그의 한평생은 신에 대한 간절한 기도와 병든 사람들에 대한 눈물겨운 사랑의 일생이었다. 얼마나 아름답고 고귀한 마음인가? 나이팅게일은 이미 15~6세 때, ”병든 사람을 사랑하는 천사가 되어라.“라는 신의 음성을 들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복된 생활을 떨쳐 버리고, 그때는 천대받는 직업인 간호원이 될 것을 단단히 마음먹었던 것이다.

 

  그를 영원히 기념하기 위하여 적십자사 국제위원회에서 1912년 간호분야에서 공적이 큰 간호사에게 주어지는 ‘나이팅게일기장’을 제정하였다. 1920년부터 2년마다 전 세계에서 50여 명을 선정하여 나이팅게일 탄생 기념일인 512일에 수상자가 발표된다. 간호사로서 최고의 영예라고도 할 수 있으므로 간호사가 되면 한 번쯤은 마음속에 그려보는 꿈이다.

  졸업 후 우리는 뿔뿔이 헤어졌다. J는 양호교사로, O는 서울대학교병원 조산 수습생으로, 나는 군산 도립병원 조산 수습생으로 갔다. 1년 후 JO는 서독으로 가고, 나는 보건소에서 일하게 되었다. 나는 보건소에 몇 년 근무하다 결혼하면서 그만두었다.

  흐르는 세월 따라 J는 고국으로 돌아와 결혼했고, O는 스위스 남자와 현지에서 결혼했다. 그 당시 서독에 파견된 간호사 중 현지에서 결혼한 친구들이 많았다. 몇 년은 소식을 편지로 주고받았지만, 모두가 자기 생활에 충실하다 보니 무소식을 희소식으로 알고 지냈다.

  그 뒤 고국에 부모님을 만나러 온 친구 O를 만났다. 내가 광주에 살고 있을 때였다. 광주에 사시는 오빠한테 오면서 찾아왔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데리고 왔었다. 스위스 바젤에서 남편과 셋이서 잘 지낸다고 했다. 희끗희끗한 머리와 잔주름에서 세월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무등산장에서 식사하면서 지나온 세월의 정담을 나누었다. 스위스에 오거든 찾아오라고도 했다. 그 뒤 소식을 몰라 J와 나는 가끔 O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말 보고 싶었다. 나는 몇 년 전 가족과 스위스 여행을 갔었다. 친구 생각이 떠올라 꼭 만나고 싶어 수소문해서 전화번호를 가지고 갔는데, 전화번호를 어디에 넣었는지 찾지 못하고 그냥 오면서 아쉬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도 좋아했던 그리운 친구보고 싶다.

  며칠 전 O와 나는 영상통화를 했다. 친구의 모습에서 세월의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친구야, 너무 반가워! 보고 싶다! 언제 한국에 올 수 있니?

내 물음에 남편이 아파서 아직은 계획이 없다고 했다. 남편이 8년 전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가슴이 아팠다. J와 함께 언제 스위스에 오라고 했다.

 "그래, 언젠가는 내가 가든 네가 오든 만나자."

 

  우리는 2학년 병원실습을 앞두고 촛불을 들고 ’나이팅게일 선서식’을 하는데, 숭고한 나이팅게일 정신을 이어받아 전문 간호인으로 거듭날 것을 다짐한다. 나이팅게일 선서 후 현장 실습을 할 때 O와 같은 병동에서 실습을 함께 하게 되면, 우리만이 아는 많은 이야기를 하며 재미있게 지냈다.

친구를 만나게 되면 추억의 정원길에서 지난 일을 생각하며 도란도란 함께 손잡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2018.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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