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년만의 사랑 고백

2018.07.19 13:06

정석곤 조회 수:9

44년만의 사랑 고백

-호주, 뉴질랜드, 피지를 다녀와서(5)-

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정석곤

 

 

 

 

  호주 시드니에서 둘쨋날이다. 나폴리, 리오데자네이로와 더불어 세계 3대 아름다운 항구인 시드니 항으로 갔다. 시드니 항구는 세계 관광객과 현지인들에게 꾸준히 사랑을 받는 곳이다. 시드니 항만의 입구인 동부해안에 캡 파크(Cap Park)가 있었다. 긴 세월 동안 침식과 퇴적작용으로 형성된 절벽 바위에 수많은 틈이 생겨서 캡(Cap)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캡 파크는 가슴이 탁 트이게 펼쳐진 남태평양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어 좋았다. 절벽에서 바라본 하늘과 바다가 파란색으로 이어진 수평선에 새하얀 뭉게구름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잔잔한 파도가 햇살을 안고 달려와 절벽에 부서지는 소리는 경쾌한 노래를 연주했다. 절벽 위의 바위가 우릴 향해 앉아있는데, 그 형상이 거북이 같아 거북 바위라고 불렀다. 바위에 올라가면 바로 밑이 바다라서 아찔해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한다. 멀리서 감상만 하려니 서운했다. 이웃에는 바위 두 개가 포개진 것 같은 사자바위가 바다를 쳐다보고 있었다. 도움을 받으며 힘들게 올라가 남태평양에서 불어온 바람을 가슴에 안은 채 사진을 찍었다. 어찌나 높은지 사진도 몸이 흔들린 채로 찍힌 것 같았다.

 

  거북바위와 사자바위 사이에 바닥이 콘크리트로 된 마당이 자리잡고 있었다. 삥 돌아가면서 한 뼘이 넘는 턱이 둘렸다. 마당 가운데 원이 그려져 있고, 그 안에 한두 사람이 설 수 있는 조금 높은 둥근 스탠드를 만들었다. 마당 바로 뒤쪽에 앞이 트인 사각기둥의 콘크리트 시설물이 우뚝 서 있었다. 스탠드에 서서 말이나 노래를 하면 메아리가 울려 퍼져 관광객을 놀라게 한 게 아닌가? 우리말로 울림장이라고 해야 할까. 부부간에 사랑을 고백하는 터라며 줄을 섰다. 먼저 혼자씩 올라가 고백을 한 다음에 둘이 올라가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우리 차례가 왔다. 벌써 큰 아이가 마흔세 살이니까 결혼한 지는 44년이 넘었다. 그러나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손과 몸짓이나 말로 해 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학교와 부부학교에는 배우자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프로그램이 있다는데, 그 학교도 다니지 않았다. TV에서 부부가 외출할 때 손을 꼭 잡고 다니며, 출·퇴근 때도 입맞춤 인사로 사랑을 나눈 걸, 심지어 잠잘 때도 손을 꼭 잡고 잔 걸 보았다. 아내는 닭살이 돋는다며 손사래를 쳤다. 나는 맘은 있으나 먼 이야기로 여기곤 했다.

 

  그런데 아내에게 갑자기 ‘사랑한다’는 말을 하려니 쑥스럽기만 했다. 먼저 아내가 스탠드에 올라가 하늘 향해 두 손을 벌린 채로 사진을 찍었다. 나도 올라가, 두 손을 치켜 올려 V자를 만들었다.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용기를 내어,

  I love 김광숙, 만세!

목청껏 두 번을 외쳤다. 메아리는 몇 배로 커져 남태평양으로 울려 퍼져 나가는 게 아닌가? 아내는 사진을 찍었다. 동영상으로 찍으라고 할 걸…. 아내는 그 소리를 듣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어 둘이 팔짱을 끼고 사진을 찍었다.

           

  시내에서 가장 가깝다는 해변, 본다이 비치(Bondi beach)로 갔다. 해변 주위에는 잔디광장과 울창한 나무가 어우러져 있었다. 바닷물 색깔이 어찌나 예쁜지 절로 감탄이 나왔다. 해변이 부산 해운대만은 못하지만 넓고 길었다. 해변으로서 천혜의 조건을 갖추었다. 전혀 바닷가라는 느낌이 안 날 정도로 생선과 짠 냄새가 없었다. 조그만 자갈 하나 없는 백사장은 노란 설탕 색깔에 고운 밀가루 같았다. 일부러 두 손으로 모래를 퍼올려 비벼보았다. 아침나절부터 피서객과 관광객들이 자기 취미에 따라 즐기느라 북적대니 구경거리가 많았다. 특별히 남태평양과 맞닿은 곳이라 파도가 높고 세어서 서핑(surfing)하기에 좋았다.  

  지금 젊은이들은 부부간의 사랑 고백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문화가 형성되고 있어 다행이다. 이제 지인이나 연인 사이에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려 하트() 모양을 만들면서 ‘사랑해요’라고 말하는 것은 예삿일이 되었다. 작년부터인가 오른쪽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으로 V자를 만들어 ‘사랑한다’고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아내와 둘이 있을 때는 말은커녕 손짓, 몸짓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해보지 못했다. 뜻밖에 아내에게 사랑 고백을 했으니, 이번 호주여행은 백만불짜리라고 자랑해야 할 성싶다. 한식인 점심과 오페라 하우스, 시드니항 디너 크루즈 관광이 기대되었다.

                                       (2018.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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