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단상(!)

2018.07.27 12:49

이형숙 조회 수:6

여름 단상 (1)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이형숙

 

 

 

 

  때 이른 폭염이 지칠 줄 모른다. 세상 모든 것들이 녹아내릴 것 같은 더위로 헉헉거릴 때 제철을 만난 생물체가 있다. 열대기후를 좋아하는 모기가 제철을 만난 것이다. 지구가 더워지는 만큼 해마다 활동 시기도 빨라지고, 더 적극적으로 진화하는 것 같다.

  쌀 한 톨보다 작은 이 녀석들 때문에 여름이 괴롭다. 방역차가 요란한 방귀소리를 내며 약을 뿌려대기도 하고, 비행기를 동원해 살충제를 분사해서 박멸해보려 하지만 그 번식력이 강해서 해마다 참패를 당한다. 그 질긴 인연을 끊어내지 못하고 밤이면 손으로 긁적대다가 헛손질도 마다하지 않는다. 때려잡으려 하지만 만만치 않은 상대다. 어쩌다 복수를 하면 손바닥의 붉은 피가 복수의 희열보다는 낭자한 흔적을 남겨 몸서리를 친다.

  내려치려는 순간 녀석은 시야에서 사라지고 맥없는 허공을 휘젓는다. 얼굴밖으로 돌출된 두 개의 눈은 뒤통수에도 눈이 달린 것이나 다름없다. 시야가 360도나 되는 이 녀석을 때려잡기란 어려운 일이다. 어쩌다 파리채에 잡히는 녀석은 죽을 운이 두 번 겹친 녀석들이다.

  눈 깜박하는 사이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녀석은 다시 그 자리에 돌아와 같은 목표물을 여러 번 공격하기도 한다. 인간의 인내심 그 한계를 시험해보려는 놈들의 장난이다.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면서 인간을 공격하는 소리도 날카로운 금속성이다. ‘에~~ㅇ‘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다른 동물의 피를 마시고 살아가는 이 녀석들과의 인연은. 끔찍한 질병으로 생명을 앗아가기도 하는 이 녀석의 범죄 사실을 알게 된지 100년도 넘었다는데, 과학이 발달한 21세기 이즈음까지도 응징하지 못하고 호시탐탐 피를 노리는 이 녀석들을 어쩌지 못하고 함께 살아간다.

  과학자들이 이집트 숲 모기를 주제로 국제회의를 개최했다고 한다. 얼마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녀석들은 입원한 환자들과 의사들 그리고 온 국민을 혼비백산하게 만들었다. 회의의 주제는 ‘아메리카 대륙의 위기’라고 했단다. 논의된 모기 방어 전략은 단순한 방법이 아니라 지극히 과학적이고 야심찬 계획이라고 한다. 모기번식지를 제거, 모기 덫 설계, 유충을 죽이는 음향 신호 설치, 모기를 박테리아에 감염시켜 유전자 변형으로 인한 번식을 막는 계획 등이 논의되었다고 한다. 특이한 것은 암컷 모기가 알을 낳을 때마다 스스로 새끼들을 독살하는 방법도 논의 되었다고 한다. 모기와 싸우는 과학자들의 수고가 애처로워지는 대목이다.

  TV에서 해가 갈수록 개체수가 많아지고 사나워지는 모기를 퇴치하기 위해 주민들이 나서서 구석구석 약을 뿌리고 다니는 것을 보았다. ‘모기 보안관’이라는 글씨를 등에 써 붙이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서 모기가 무서워 도망갈 일이 없을 것 같아 웃음이 나왔다. 이 시대의 보안관 권위에 맞게 소환장을 발부해서라도 씨를 말리고자 하는 비장한 각오에 박수라도 보내련다.  

  이 녀석들의 예민한 감각은 사람의 땀이나 내쉬는 숨, 온기 등을 통해 목표물이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감지한다. 목표물에 접근하여 피를 빨아먹는데 사용하는 주둥이는 여러 부분으로 이루어진 신기한 기관이다. 첨단 장비보다 더 예리한 침으로 사람의 피부를 뚫고 들어 온 다음 순식간에 피를 빨아들인다. 타액은 사람의 피부 감각을 무디게 해서 뚫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도록 마취제 역할을 하고 동시에 혈액이 응고되는 것을 방지한다. 짧은 시간의 채혈은 의사나 간호사의 솜씨보다 수 십 배 능수능란하다.

 

  자신의 몸무게보다 두 배 이상 피를 빨아먹을 수 있는 대용량 위장을 가졌다. 빨대를 꽂은 즉시 흡입하는 피는 위장까지 논스톱이다. 배불리 먹고 몸이 무거워진 녀석은 어디든 잠시 앉아 쉬어야만 한다. 천장이든 벽이든 앉아서 부른 배를 두드리며 망중한을 즐긴다. 그런 다음 피의 액체 성분은 버리고 영양분만 섭취한 뒤 유유자적 또 다른 목표물을 찾는다.

  사람의 피를 원하는 녀석들은 암컷이다. 암컷도 수컷처럼 식물의 수액을 먹기도 하지만 대를 잇기 위해서는 피의 영양분이 필수다. 번식은 단 한 번의 짝짓기면 충분하다. 정자를 몸속에 저장해 두고 5~6회에 걸쳐 필요할 때마다 꺼내 수백 개의 알을 수정시킬 수 있다. 살아있는 30여 일의 짧은 일생 동안 어마어마한 번식력으로 종족의 번식을 이어가는 놈이다. 그 놀라운 번식력에 어찌 인간이 대적할 수 있을는지 걱정스럽다. 하루 종일 따라다니며 바가지를 긁는 여인네처럼 여기 저기 물어뜯어 긁적이게 하는 녀석도 암컷이다.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버리는 물과 빗물이 고이는 곳에 녀석들은 알을 낳는다. 애완동물의 사료 접시가 될 수도 있고, 뒤집어져 있는 병뚜껑일 수도 있다. 버려진 타이어 또는 깨진 그릇에 고여 있는 물 몇 방울이 고여 있는 곳이면 훌륭한 조건이 갖추어진 분만실이다. 심지어 이 녀석은 비가 오면 물이 고일만한 곳을 미리 찾아 내 그곳에 알을 낳을 만큼 영특하다. 구석지고 어두운 곳, 발길이 닿지 않는 음습한 곳을 좋아한다. 처서가 지나면 입이 돌아간다는 옛말이 있는데 요즘은 처서가 지나도 입 돌아간 녀석들이 없다. 기후가 변해 한창 황금시기를 구가하는 시절이니 말이다.  

  인간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연구를 거듭할 것이고, 그에 반해 녀석들은 끊임없이 종족보존을 위한 절실함으로 끈질기게 인간의 피를 탐할 것이다.

  여름날 마당에 멍석을 깔고 앉아 풀섶을 태우던 한여름 밤의 아련한 추억이 떠오른다. 엄마 무릎을 베고 누워 별을 헤던 아름답던 밤에도 이 녀석들은 부채질 바람을 타고 춤을 추었었다. 모기와 인간. 누가 승자로 남을 것인가?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모기와의 긴 전쟁은 끝나지 않고 진행 중이다. 이 여름이 더 덥고 길어질 것 같다.  

                                          (2018.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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