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 라틴다리에 가다

2018.07.27 16:54

고안상 조회 수:6

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 라틴다리에 가다

   -발칸반도 여행기-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우남 고안상

 

 

 

 

 사라예보의 한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아침 일찍 식사를 마치고 시내관광에 나섰다. ‘유럽의 화약고’라 불리는 발칸지역에서도 그 중심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복잡한 역사를 간직한 사라예보는 성당과 모스크, 정교회, 그리고 시너고그*가 지척에 위치한 유럽의 유일한 도시란 점만 보아도, 이 도시가 얼마나 복잡하고 다양성을 지닌 도시인지를알 수 있을 것 같았다.

 

 8시쯤 시내로 나가니 출근하는 시민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우리 일행은 버스에서 내려 사라예보 도심을 흐르는 밀야츠카 강을 찾았다. 밀야츠카 강은 우리네 시내처럼 강폭이 좁고 물이 맑으며 깨끗했다. 그 강물 아래로 하얗고 조그마한 조약돌들이 반짝이며 서로 무언가를 속삭이는 듯 보였다. 강변을 따라 이어진 도로변에는 대리석으로 된 깨끗한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다. 시내중심쪽으로 강변을 따라 내려가니, 바로 1차 세계대전 발발의 도화선이 되었던 라틴다리가 나왔다. 얼마 전에 보수를 했는지 아치형의 라틴다리는 그 아래로 흐르는 맑은 강물에 제 모습을 드러내 보이며, 100여 년 전 아픈 역사의 현장을 묵묵히 지키고 있었다.

 

 1878,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이 지역에서 투르크를 축출하고, 1908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공식적으로 합병했다. 그러자 이곳에서는 믈라다보스나 저항운동이 전개되었다. 그런 가운데 1914628, 프란츠 페르난디트 대공 부부는 군사훈련에 참관하려고 이곳 사라예보를 찾았다. 그런데 바로 이 라틴다리에서 세르비아 청년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왕위계승자인 프란츠 페르난디트 대공과 그의 부인을 암살한 것이다. 이것이 원인이 되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세르비아에 전쟁을 선포함으로써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그날 사건의 진행과정을 살펴보면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은 죽지 않을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암살되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라틴다리를 돌아본 뒤, 투르크인들이 만들었다는 바슈카르지아에 들렀다. 그곳에는 지금도 민속공예품점, 옷가게, 잡화점 등 많은 가게들이 있어서 사람들로 붐볐다. 그곳에서 조금 더 걸어가니 유적 발굴터가 나왔는데, 발굴현장 건축물 모습으로 보아, 이곳이 매우 번화한 거리였을 것 같았다. 이어서 보스니아 정교회와 로마 카톨릭 대성당을 둘러보았다.

 

 대성당 앞 정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가던 방향을 되돌려 이슬람 건축물로 가장 대표적이라는 1530년대에 건축된 가지후스레프 모스크에 들렀다. 이 모스크는 보스니아를 통치했던 터키인으로 모스크와 학교, 도서관 등 많은 시설물을 짓는 등 사라예보를 위하여 큰 공헌을 한 가지후스레프 베그의 시신을 안치한 석관이 있어서 유명하다고 한다.

 

 이어서 세빌리 샘이 있는 구시가지 중심인 바슈카르지아* 광장을 지나서 카라반의 숙소로 사용되었던 모리차한에 들렀다.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초에 건축된 모리차한은 1층은 물품보관창고와 말, 낙타의 마구간이 있고, 2층에는 40여 개의 방이 있는데 상인들의 숙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얼마나 튼튼하게 지었는지 지금도 1층은 상점으로, 그리고 2층은 변호사사무실이나 회의실로 이용되고 있어 그저 놀라울 뿐이다.

 

 마지막으로 재래시장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는데, 일행 중 한 여성이 여권과 돈이 들어있는 백을 잃어버렸다며 걱정을 했다. 가이드를 중심으로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고민했다. 여권을 다시 만들려면 대사관이 있는 크로아티아 수도로 가야만 한다는데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었다. 결국 백을 잃어버린 분이 자그레브로 가기로 결정하고 버스 안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떠나려고 짐을 챙기던 그녀가 백을 찾았다며 큰소리로 외쳤다. 우리 일행 모두는 어찌나 기쁘던지 그녀를 향해 박수를 보내고 환호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런 뒤부터 나는 항상 일행들의 뒤를 따르며, 행여 그들이 짐이나 귀중품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지켜보면서 여행을 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사라예보와 라틴다리는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하는 도시와 명물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1990년대 내전이 일어나면서 역시 이곳은 전쟁의 위험이 항상 존재하는 지역이라는 사실을 세계에 알렸다. 그래서 항상 많은 사람들은 이곳을 관심 있게 지켜보며,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런데도 놀라운 것은 이곳 사라예보에 와보니 생각과는 달리 시민들의 모습이 밝고 활기차 보였다. 그리고 내일을 위해 바쁘게 살아가는 사라예보 시민들의 모습이 나그네인 우리로 하여금 편안한 웃음을 짓게 했다. 앞으로는 제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가 우리나라와 함께 과거의 슬픈 역사를 잊고 평화롭고 안전한 나라로 발전하며 번영해 나가기를 비는 마음 간절했다.

                                                               (2017. 11.  07.)

 

*시너고그(synagogue) : 유대교에서, 집회와 예배의 장소로 쓰는 회당

*바슈카르지아 : ‘중앙시장’이라는 뜻의 터키어인 바슈카르지아는 사라예보의 상징과도 같은 곳으로, 서방의 기독교 문화와 동방의 이슬람 문화가 절묘하게 맞닿아 있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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