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당에서 평화동으로

2018.07.28 14:09

이우철 조회 수:6

초당(草堂)을 떠나 평화동으로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이우철

 

 

 

 

 도시에 살면서 이사 다니는 사람이 어찌 우리뿐이랴. 집 없는 서민은 자의든 타의든 여차하면 이삿짐을 싸야 했다. 신접살림 시절엔 오르는 전세금을 마련하지 못해서도 그랬고, 직장의 잦은 인사이동 때문에, 심지어는 아이들의 울음소리 때문에도 집을 비워주어야 했다.

 

 초당마을은 부모님이 자리를 잡은지 꽤 오래된 곳이다. 전주시로 직장을 옮겼던 공무원 초년시절, 부모님은 전주시 호성동에 둥지를 틀었다. 만만치 않은 여건에서도 동생과 힘을 합쳐 1984년 호성동에 작은집을 마련해드렸다. 노년에 부모님이 거처할 집이었다. 주로 농민들이 사는 변두리라 저녁이면 개구리소리와 풀벌레소리로 시골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이었다. 넓은 들판이라 풍광이 좋아 아침햇살이 떠오를 때면 희망의 꿈이 벅차올랐다.

 

 '초당'하면 으레 다산(茶山)선생이 살았던 강진이 떠오른다. 1801(순조1) 신유사옥에 연루되어 18년간을 외로이 지낸 곳이다. 우리 마을 역시 어떠한 연유로 초당이라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당시 포구였던 초포(草浦)입구에 억새가 많았던 마을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우리집 바로 뒤에는 효부를 기념하는 지행당(趾行堂)이 있다. 이 마을에 살았던 강서린(姜瑞麟)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조선 영조 8(1723)에 전라감사 이수항의 건의에 따라 조정에서 내린 이름이다.  

 

 부모님이 정착하면서 숙부집에 계시던 할머니도 이곳에서 노후를 보내셨다. 34년을 초당에서 살았으니 고향처럼 정이 들었다. 아버지가 먼저 세상을 뜨신 뒤 우리 부부도 어머니와 20년을 살았다. 어머님 친구 세 분 중 유일하게 석구할머니가 계신다. 지팡이를 짚고 겨우 거동을 하시니 얼마나 더 사실 수 있을까? 어머님은 운명하시기 전날까지도 '오매댁 잘 있느냐?' 안부를 물으신 친구다. 노년에 이처럼 다정한 친구가 있었으니 감사할 일이다. 어머니가 계실 때는 떠날 엄두도 내지 못했다. 혹 부동산에서 집을 보러 오면 ‘집을 팔다니, 무슨 소리냐?’ 하셨다.

 

 집터가 조금만 더 넓었더라면…. 아쉬움이 있어 어머니가 운명하시기 전 내놓았더니 금방 임자가 나타나 갑자기 매매가 이루어졌다. 막상 이삿짐을 꾸리려니 오랫동안 드나들던 추억이 아른거렸다. 떠나면서 우리 부부는 석구할머니를 찾아가 큰절을 올렸다. 자주 찾아뵙겠노라고 말씀은 드렸지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석구할머니도 우리를 부둥켜안으며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성경에 아브라함은 75세에 고향과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났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찾아 방랑의 세월을 보내며 살아야 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12:2)’는 여호와의 약속을 굳게 믿으며 먼 길을 떠나지 않았던가? 어머니를 장사지내고 얼마 되지않아 마을을 떠나려니 발길이 무겁지만 어차피 나그네길이니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나야 했다.

 

 창밖 소나무에 자리잡은 참새들이 친구가 되어주었고, 앞마당 빨랫줄의 제비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아침이면 먹이를 챙겨주던 들고양이도 그리워진다. 고희를 맞는 6.25동이들에게 남과 북이 종전선언이라도 하려는 것일까? 평화무드가 조성되려는 시기에 초당을 떠나 평화동으로 보금자리를 옮겨 새로운 인생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2018. 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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