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생활에서 지우고 싶은 이야기

2018.08.06 00:47

고안상 조회 수:3

교직생활에서 지우고 싶은 이야기 

-부끄러운 이야기②-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고안상

 

 

 40여 년이란 오랜 세월을 나는 교직에 몸담고 살아왔다. 맡은 바 소임에 충실하고자 노력했다. 그 동안 보람된 일도 많았다. 그러나 지금 곰곰 생각해보면 부족하고 부끄러운 일이 더 많았던 것 같다.

 

 19805월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날 즈음에, 작은 처남의 친구인 은행표 선생님의 소개로 나주 영산포상업고등학교에 근무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장성에서 광주를 거쳐 영산포까지 버스로 출퇴근을 했었다. 520일로 기억되는데, 학교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광주로 들어서는데 기사가 백운동 로터리에서 모두 내리라고 했다. 나는 장성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운암동간이정류장까지 택시를 탔다. 택시 기사 말에 의하면 계엄군과 대학생들이 서로 대치하면서 군의 발포로 여러 명의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했단다. 그러나 집에 도착하여 저녁 뉴스를 보았지만 보도를 통제하는지 뉴스의 내용은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다음날 출근을 하려고 했으나, 광주로 가는 버스는 통행이 중단되었다. 별수 없이 기차를 타고 학교에 출근했다. 역시 광주에서 통근하시는 선생님들 중 일부도 출근이 늦었다. 광주사태가 심각하다는 이야기가 오갔다.

 

 수업시간의 분위기가 어수선하고 불안과 초조가 교실을 짓누르고 있었다. 아이들이 결석하고 지각을 하며, 심지어는 등교도중 이탈하여 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까지 나왔다. 우리 반도 예외는 아니었다. 학급 반장과 함께 아이들이 놀고 있다는 곳으로 찾아가 보았으나 허사였다. 물론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는 하지만 바로 잡아주어야 했다. 사회분위기가 어수선하니, 아이들도 학교생활에 충실하지 못하거나 불안한 행동을 하고, 또 빗나간 행동을 하다가 선생님의 주의를 듣거나 벌을 받는 일들이 반복되었다. 심지어 어떤 선생님은 뺨을 때리고 매로 체벌을 가했다. 그런데 나는 선생님들의 그러한 지도가 전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나도 체벌을 가했고, 선생님들의 그러한 지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곳에서 1년을 근무하고 가정 사정으로 정읍에 있는 호남고등학교로 자리를 옮겼다.

 

 부임 첫해에는 2학년을 담임했고, 다음 해에는 3학년 담임을 맡게 되었다. 고등학교에서 3학년을 담임하게 되면 대학진학 결과로 담임의 능력을 평가하기 때문에 선생님들은 학기 초부터 긴장하며 1년 동안 혼신을 다하여 학생들을 지도할 각오를 다진다. 그리고 담임들 사이에서는 성적을 끌어올리기 위한 보이지 않는 경쟁이 불붙는다. 아침 730분 이전에 출근하여 저녁 11시까지 수업지도와 야간 자율학습지도에 매달렸다. 학년 초부터 긴장하다 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선생님들이나 학생들은 점점 힘에 겨워 지치게 되었다. 4월이 지나 5월 중간고사가 끝나고 체육대회를 마친 뒤부터 서서히 규정된 생활에서 이탈하는 학생들이 하나 둘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이때 담임이 그런 아이들과 대화로 지도하거나 아니면 가벼운 벌로 지도하게 되면 이탈자는 크게 증가하게 된다. 그래서 선생님들은 처음부터 강한 처방전을 내민다. 오직 잘못된 싹은 초기에 잘라버리겠다는 생각으로 보기에도 무서울 정도로 고통스런 체벌을 가했다. 그 당시만 해도 아이들 개개인의 인권 같은 것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직 학급의 면학분위기 조성에만 관심을 둘 뿐이었다.

 

  지금 되돌아보면 ‘그 아이들이 얼마나 상처를 많이 받고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으로 마음이 무거워진다. 아무리 그 당시의 학교 분위기가 ‘그러한 잘못이 용인되었다.’ 할지라도 그렇게 행동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이런 막무가내식 지도가 견디기 어려웠던지 아이들은 결국 다른 방법을 통하여 그 돌파구를 찾았다. 야간자율학습시간에 정전사고를 일으킨 것이다. 전봇대 위에서 전기선이 끊긴 정전사고라서 야간자율학습은 중단되고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처음에는 전기용량이 초과돼 일어난 정전사고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뒤에도 정전사고가 자주 발생했다. 한전에서 나온 직원의 말에 따르면, 문제는 학교 담 옆에 있는 전봇대에서 전기선이 끊기는데, 정전된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인위적인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학생지도부 선생님들이 야간에 잠복근무를 하기로 결정했다. 그런 뒤 며칠이 지나자 또 정전사고가 났다. 전봇대를 감시하고 있던 선생님이 전기선을 끊고 달아나는 아이를 붙잡았다. 그런데 그 아이가 바로 내가 담임을 맡고 있던 아이였다. 그 아이의 집에 가보니, 책상 서랍 속에는 전기 작업을 할 때 사용하는 도구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그 애는 평소 학급에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학급 일에 적극 참여하는 아이였다. 결국 학교에서는 학생징계문제로 교직원회의가 열렸고, 그 아이를 퇴학시키기로 결론을 내렸다. 담임인 나는 그 아이를 위하여 한마디 도움을 주는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여야했다. 참으로 부끄럽고 가슴이 아팠다.

 

 담임교사로서 아이들을 진학시키기 위하여 학급을 장악하고, 또 학습 분위기를 바로 잡아주는 일이 최선이라고 믿었던 나의 생각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아이들에게 칭찬과 격려, 그리고 대화를 통한 지도보다는 ‘내 손아귀에 아이들을 쥐고 확실히 장악하고야 말겠다.’는 어설픈 교육방법이 이런 참사를 불러오고야 말았던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그런 행동을 통해 자율학습이란 닫힌 공간에서 탈출을 시도했고, 다른 아이들은 그 뜻에 동조하거나 묵인했던 것이다. 이러한 사고로 나는 한동안 부끄럽고 마음이 아파 밤잠을 이룰 수가 없었으며, 교무실이나 교실에서도 고개를 숙이고 다녀야만 했다. 한편으로는 억울한 마음도 없지 않았다. 사실 다른 선생님들과 비교하면 내가 그렇게 심하게 아이들을 체벌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분명히 내가 아이들에게 체벌한 것은 사실이었고, 사후 지도를 잘못한 것도 그 원인 중 하나임이 틀림없었다.

 

 그 뒤. 한동안은 힘들었지만 나 자신이 많은 반성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더욱 애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가끔 그 당시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려보고 깨우치면서, 아이들 지도에 참고하고자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다행히도 보람이 있는 교직생활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교직생활을 하는 동안 아이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기보다 오히려 부끄러운 스승으로 기억되지 않았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이 앞선다.

                                                                  (2017. 0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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