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연계곡의 3박4일

2018.08.06 06:34

변명옥 조회 수:57

칠연계곡의 34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변명옥

 

 

 

 더위에 숨이 턱턱 막힌다. 뉴스에 80대 할머니가 땡볕에 일을 하시다 쓰러져 돌아가셨다고 한다. ‘아이고 할머니, 이 더위에 밭에 나가시다니!’ 온열질환으로 목숨을 잃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날마다 뉴스에 나오니 정말 살인적인 더위다. 아직 7월인데 어찌할꼬? 한숨이 절로 나온다. 나이가 드니 체력이 약해져서 그런가, 아니면 우리나라가 더 더워지나 정말 못 참겠다. 못 찾겠다 꾀꼬리가 아니라 못 참겠다 복더위다. 어쩌면 이 더운 여름에 소나기 한 번 내리지 않다니?

 

  더위가 절정이면 찾아가는 곳이 무주군 안성면 칠연계곡이다. 덕유산에서 흘러내리는 계곡물은 수량이 풍부하고 아름드리 소나무의 쭉 빠진 몸매에 우선 눈부터 시원해진다. 올해도 아침 9시에 쫓기듯이 짐을 싸들고 정읍에서 출발했다. 시당숙이 만들어주신 캠핑카에 옷, 취사도구, 쌀과 밑반찬을 실으려니 작은 이삿짐 같다. 간단하게 가져가려고 해도 뭐 그렇게 필요한 게 많은지 모르겠다. 진안휴게소에 도착하니 마이산의 두 귀 같은 봉우리가 한 개로 겹쳐 보인다. 마이산은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두 봉우리가 판이하게 다르니 신기하다. 1110분쯤 되어 칠연계곡으로 들어가는 안성면에 도착해 점심을 먹었다. 이 가든은 가격대비 음식이 맛있고 푸짐해서 꼭 들르는 곳이다.

 

 칠연계곡에 도착하니 목요일이라 그런지 사람도 별로 없고 노인 몇 분이 소나무 그늘 평상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우선 차를 적당한 곳에 대고 물에 들어가 더위를 식히기로 했다. 계곡으로 내려가니 우선 찬 물 때문에 냉기가 확 달려든다. 물은 예년의 반도 안 되었다. 칠연계곡의 수량이 이 정도면 다른 계곡의 물은 보나 마나다. 물속에 천천히 몸을 담그니 이곳이 바로 천국인 성싶다. 더위는 저만치 달아나고 주위에 수백 년 된 나무들이 쭉쭉 뻗은 몸매를 뽐내며 우람한 바위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남편이 이쪽으로 올라와 보라고 해서 가보니 물가 바로 위 소나무 아래 좋은 위치에 캠핑카를 주차해 놓아 엄지를 세워 칭찬해 주었다. 넓고 편평한 바위에 기대 앉아 ‘옥중 19년’이란 책을 읽었다. 바위는 햇볕에 달구어져 따뜻하고 물은 차가웠다. 나무들을 바라보니 이런 자연의 치유력 때문에 마음과 몸이 병든 사람들이 산을 찾는가 싶다.

 다음 날 새벽 5시쯤 일어나 물 한가운데 넓은 바위에 앉아 물소리를 들었다. 잠에서 깬 물은 소리도 더 맑고 우렁차다. 어찌나 깨끗한지 손을 담그고 세수하는 것도 미안할 정도다. 할 일이 없으니 마음이 텅 비고 넓은 계곡을 혼자 독차지한 듯 뿌듯하다. 이 새벽 공기, 물이 정신을 맑게 청소해 준다. 내일은 토요일이라 사람들이 몰려올 것 같다.

 

  토요일 새벽엔 더 일찍 일어났다. 440분인데 벌써 뿌옇게 날이 밝다. 계곡 위로 천천히 걸으니 한 송이 나리꽃이 가늘고 긴 몸매를 흔들며 아는 체했다. 꽃도 환경이 좋아서인지 색깔도 더 진하고 건강해 보인다. 이 가뭄 속에 꽃을 피우느라고 애썼다. 오늘은 소나기가 오고 천둥번개가 친다고 하더니 점심 때 아주 잠깐 비가 왔다. 목마른 정읍은 그나마도 안 온다고 한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7시쯤 되자 우리 캠핑카 옆에 텐트를 치느라고 부산하다. 차에서 짐을 나르고 텐트를 완성하더니 밤새 달려왔는지 텐트 속에서 잔다. 여기저기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계곡 위아래로 다니는 사람들이 늘었다젊은 사람들은 텐트를 짓느라 부산스럽게 움직이는데 우리 같이 나이든 사람들은 느긋하게 자리에 누워 소나무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낸다. 점심때가 되자 계곡은 아이들의 고함소리로 꽉 찼다. 물속의 작은 물고기들은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며 몰려다닌다. 3m 정도 솟은 바위에서는 아이들이 물로 다이빙을 하느라고 시끌벅적하다. 어떤 아이는 너무 좋아서 괴성을 계속 지른다. 목이 쉬지 않을까 걱정이다.

 저녁 6시쯤 되자 계곡이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밀물처럼 몰려왔다 썰물처럼 사라졌다. 저녁을 해 먹고 남편은 물속에 들어가고 나는 돌을 주워 바위 위에 세워 놓고 남편에게 평을 해 달라고 했다. 새까만 돌에 하얀 줄이 쳐져 있는 돌을 골랐더니 “초보자들이 그런 매끈한 돌을 좋아해”했다. 그러면서 그냥 자기 눈에 들면 좋은 거라고 했다. 그래 내가 전문가도 아닌데 그냥 골라 보아야겠다. 내가 올려놓고 가면 어떤 사람이 마음에 들어 쳐다보고 좋아했으면 좋겠다. 큰 바위 밑에 아주 작고 둥근 돌이 끼워져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었다. 또 물이 흘러내리다가 3층탑을 묘하게 쌓아놓았다. 작은 돌을 그 위에 놓았다가 ‘아하, 탑은 홀수로 쌓아야지’ 하며 돌 한 개를 더 올려놓았다. 돌을 고르다 보니 돌은 쌍둥이가 없다. 어쩌면 그렇게 모양과 색이 다른지 고르는 재미가 쏠쏠하다. 23일이 후딱 지나갔다. 밤에는 이불을 덥고 자야할 정도로 춥다. 드디어 책을 다 읽었다. 집에서 읽었다면 벌써 포기했을 텐데 너무 시원하고 조용해서 다 읽었다. 양심수에 대한 이야기였다.

 

 일요일 새벽 5시에 일어나 바위에 앉아 물을 드려다 보니 물이 바위 사이를 지날 때는 작은 미소를 띠며 흘러가고 있었다. 신기했다. 꼭 사람의 볼우물 같았다. 물방울이 터지면서 생긴 것인가? 물의 미소를 보자 나도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나와 물만이 아는 비밀 약속 같았다. 좁은 바위 사이를 지날 때에는 작은 물방울이 수백, 수천 개씩 만들어졌다가 사라진다. 물은 지치지도 쉬지도 않는다. 끊임없는 물의 여정에 존경심이 생겼다. 물은 멈추면 썩는다. 빈 텐트 옆에 달맞이 연노란 꽃이 누워서 피어있다. 새벽이슬을 잔뜩 머금고 하늘을 보고 있다. 해가 올라오자 꽃잎을 반쯤 접는다.

 

  칠연계곡 입구에 ≪이 아름다운 강산에 쓰레기를 버리시렵니까? 가져온 쓰레기는 되가져 가십시오≫라고 써 놓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아무 곳에나 담배꽁초,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들이 밉다. 이 좋은 곳에 와서 다른 사람의 얼굴을 찡그리게 만드는 사람이 되지는 말아야 할 일이다. 물 옆의 계곡에 감추어 놓고 간 쓰레기와 캠핑카 주위의 쓰레기를 모두 주워 분리수거 쓰레기통에 넣어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2018.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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