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초기 이발사

2018.09.05 06:40

전용창 조회 수:3

예초기 이발사

꽃밭정이수필문학회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전용창

 

 

 

 간밤에 자다깨다를 반복했다. 오늘 장인, 장모님 산소에 가서 벌초를 해야 하는데 밤새 비가 왔다. 지난 주말 산소에 가지고 갈 조화도 준비해서 응접실 화병에 꽃아 두었다. 조화는 아내에게 벌초를 가자는 무언의 대화 표시이기도 하다. 나도 어릴 적에는 벌초를 가자는 아버지의 말씀이 그리 반갑지는 않았지만, 아버지가 주시는 용돈에 끌려서 따라갔다.

 내가 산소에서 하는 일은 낫으로 벤 풀을 갈퀴로 긁어서 산소 아래로 옮기는 일이었다. 풀을 베기가 무섭게 나르는 나를 보고 아버지는 크면 부지런할 것 같다며 칭찬해주셨다. 막내아들도 그 때의 내 생각과 같을 테니, 따라나선다면 용돈을 주려고 생각했다. 나보다는 아내의 부탁이 있어야 말을 잘 들을 텐데, 아내는 건강이 안 좋고 날씨도 비가 오니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아마 이번에는 나 혼자 가야 할 것 같다. 아내는 미안한 마음에 "날 좋은 날 가시지요?"라고는 하지만, 화병에 꽃아 둔 조화는 나를 볼 때마다 언제 갈 거냐고 묻는 것 같다. 갈 때가 되면 알아서 챙길 텐데 말이다.

 

 전에는 조화도 백합이나 흰장미 등 무색의 꽃을 준비했는데 해가 지날수록 나의 생각도 바뀌었다. 어른일수록 화사한 색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기도 했지만, 고인의 육신은 무덤에 있다 하여도 영혼은 하늘나라와 이 땅을 왕래할 거라 생각하니 화사한 꽃이 더 좋을 성싶었다. '벚꽃', '복사꽃'을 양쪽에 꽂고, 중앙에는 부귀영화를 상징한다는 '모란꽃'으로 단장하려고 준비했다. 토막잠을 마치고 베란다에 나가 손을 내밀어 보았다. 아직도 비는 내리고 있었다. 해마다 벌초를 남들보다 먼저 해야 기분이 좋고 무슨 일이든지 잘 될 것 같아 서두른다. 처서 와백로가 지나면 풀도 다 자라니 벌초를 하고 성묘를 가면 빡빡 민 머리가 아니고 3부 머리처럼 되어 보기가 좋다. 물 말아서 밥 한 숟갈 떠먹고 집을 나섰다.

 

  비를 머금은 나무들과 풀잎은 생기가 돋았다. 화물차에게도 아침밥을 주었다. 처갓집 선산은 순천 '송광사'를 지나 '고인돌공원'을 지나,  '서재필 박사 기념관'을 돌아서 주암호 상류 '대원사' 가는 길목에 있다. 대원사에는 '티베트박물관'이 있고, '어린 왕자 체험관'이 있어 다른 사찰과는 다른 특색이 있다. 근거리에 '백민미술관'도 있다. 주암호를 따라서 펼쳐지는 길은 '우리나라 아름다운 길 100'에 뽑힌 벚꽃길이다. 주암호에 수몰되어 동네 표지석만 남아 있지만, 그곳 '대내마을'이 장인어른 고향이다. 구비 구비 이어지는 호반 길은 관광자원이 많고 풍광이 좋으나 왕복 5시간 가까이 소요되는 먼 거리지만 지루하지 않았다. 내가 원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자주 오는 이유가 장인 장모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보다 아내가 나를 가장 존경하고 사랑할 때가 처갓집 산소 벌초를 하고 돌아갔을 때인 까닭이다.

 

 묘역에는 30여 년 전에 전주에서 가져다 심어놓은 배롱나무가 흐트러지게 꽃을 피우며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꼬불꼬불 구부러진 가지도 어쩜 그렇게 예쁜 모습인지 도심지에 있다면 아마도 수 백만 원은 호가할 것 같다. 3그루의 동백나무도 키가 나보다 훨씬 컸다. 동백나무 잎은 윤기가 나서 번질번질했다. 황금 편백도 내 키에 버금가고, 감나무도 이제는 대봉시를 매달며 그동안 키운 정성에 보답했다. 조화를 화병에 꽂으니 주위가 온통 화사했다. 장인 장모님의 도우심으로 가족이 평안하다는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장모님은 외동딸인 아내를 눈이 빠지게 기다렸는데 못 왔다며 못내 서운해 하셨다. 찬바람이 불기 전에 함께 다시 찾아오겠다며 용서를 빌었다.

 

 산소 봉분에 조심성 있게 예초기를 갖다 대며 생각해 보았다. 부모님 산소인데도 사람들은 왜 벌초를 걱정스러워하며 납골당 운운할까? 내가 지금 예초기로 하는 일이 벌초가 아니라 장인 장모님께서 추석명절에 자식들과 손주가 오면 예쁘게 해서 절을 받으시라고 이발을 해드리는 게 아닌가? 내가 어릴 적 명절 때가 되면 아버지는 이발소에 데려가고, 어머니는 등목을 해주셨다. 이제 나는 어른이 되고 부모님은 이발소에 가실 수 없으시니 내가 이발도구를 가져와서 이발사 역할도 하고 미용사 역할도 하는 게 아닌가? 이발요금은, 나를 길러주시고, 가르치시고, 여우살이까지 해주셨으니 내 평생 봉사해도 그 은혜의 백분의 일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얼굴이 달아올랐다.

 

 겨우 일 년에 두어 차례 이발사 역할을 한 것을 큰일이나 한 것처럼 거드름을 피운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다. 이발을 잘 마무리하고 아내에게 매시지를 보냈다. 비가 그쳐서 고생 않고 잘 마쳤다는 소식과 함께 이발을 한 산소의 예쁜 모습의 사진에을 보내주었다소식을 기다렸다는 듯이 아내는 곧바로 회신을 보내주었다.

 "수고 많았어요. 고마워요^^."

 아내의 한마디는 나의 모든 피로를 풀어주고도 남았다. 앞으로 더 자주 와서 예쁜 따님을 주시고 축복해주신 은공을 이발 기술로 보답하겠노라고 인사를 드리고 돌아왔다.

                                                (2018.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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