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의 선물

2018.09.06 17:58

전성례 조회 수:34

동생의 선물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전 상 례

 

 

 

 

  “따르릉!”

 벨이 울립니다. 전화를 받으시는 어머니는 전주에 사는 남동생의 전화라고 하십니다. 통화를 마치고 수화기를 내려놓으시는 어머니의 얼굴이 어두워 보입니다. 무슨 내용인지 궁금해 하는 나에게

 “글쎄, 나더러 보행기 사드리면 어떻겠느냐고 하는구나.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내 머릿속에는 허리 굽은 노인들이 보행기에 의지하여 자신의 삶의 무게만큼이나 힘든 몸을 이끌면서 힘겹게 길을 걷는 모습이 스쳤습니다.

  그런데 ‘아니, 어머니더러 그것을 밀고 다니시라고?’ 순간, 나는 서운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괘씸한 마음이 들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것이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나봅니다. 어머니의 옆모습에서도 서운함을 역력히 읽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니, 어머니더러 그걸 밀고 다니시라고?

 “그러게 말이다. 나는 아직 그런 것을 밀고 다니고 싶지는 않은데!” 

  남동생은 어머니 다리가 아파서 걷기 힘드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인터넷을 찾아보다가 보행기가 좋은 것이 있어서 사드리고 싶은 생각에 전화를 드렸다고 합니다.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이 고맙고 기특한데 왠지 고맙다는 마음보다는 누군가에게도 모를 심술이 났습니다.

  어머니를 걱정하며 사온 동생의 사랑의 선물인 보행기를 어머니께서 사용하시도록 그대로 두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동생에게는 미안하지만 그것이 헛돈을 쓴 결과를 가져온다 해도 나는 어머니가 그 보행기를 밀고 걸으시도록 하기는 싫었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그토록 늙고 허리 굽은 노인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아침 430분, 눈을 떴습니다. 어머니도 잠이 깨신 것 같습니다. 몸을 뒤척이시더니

 “우리 운동하러 갈까?

라고 하셨습니다. 옷을 입고 대문을 나선 때가 다섯 시, 어머니 뒤를 따라 걸으며 나는 어머니에게 주문했습니다.  

  “어머니, 허리를 좀 펴보세요. 두 팔의 힘을 좀 빼보세요. 발을 앞으로 빨리 내딛지 마시고 그 자리에서 들었다 놓는 것처럼 걸어보세요. 어머니, 우리 바쁠 것 없지 않아요? 그냥 걸으세요. 빨리 걸으려고 머리를 앞에 내밀지 마시고 발만 그냥 제자리에서 들었다 놓았다 하듯이 허리를 곧게 펴고 천천히 걸어 보세요.

 내가 생각해도 주문이 너무 많았습니다. 5분쯤 걸었을까? 어느덧 4차선 도로를 건너 계단에 내려서서 천변으로 들어섰습니다. 이곳은 내가 태어나 자라던 곳, 냇가의 물이 적을 땐 징검다리를 건너서, 물이 불면 옷을 걷어 올리고, 집채더미 만한 홍수로 물이 많아 건널 수 없을 때는 산비탈 아래 상여집 옆을 돌아 큰 다리를 지나서 학교에 가곤 했습니다.

  육십을 바라보는 딸과 여든이 된 어머니가 아침 산책길에 나섰습니다. 등이 굽은 어머니는 낭자머리에 금비녀를 꽂으시고, 옥색 한복을 곱게 차려 입으셔서 달덩이처럼 고운 어머니의 모습이며 어머니와 함께하는 육십을 바라보는 나는 교복 단정히 입고 책가방을 들었던 어린 소녀였는데!

 

  한참을 어머니 앞에서 천천히 걷던 나는 무엇인가 생각이 스쳤습니다. ‘그래, 걷기 명상!’ 걸음걷기가 힘든 어머니와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천변의 산책로와 자전거도로를 마다하고 잔디밭을 택했습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온몸의 감각을 열어젖히고 한 걸음 한 걸음 떼어 놓았습니다. 비틀거리는 몸의 균형을 잡으며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가 어머니는 운동기구 앞에 다가서서 팔과 허리를 펴고 여러 가지 운동을 하셨습니다. 어쩌면 어머니는 운동기구에 의지해 허리를 펴는 동작에서 등이 좀 더 펴진 듯한 느낌이 드셨나 봅니다.

  백로 한 마리가 산에서 날아와 시냇가를 한 바퀴 돌다 내려앉습니다. 물속의 물고기들이 팔짝 팔짝 뛰어 오릅니다.

  “어머니, 저기 좀 보세요.

 졸졸졸 시냇물 소리에 빨려듭니다. 끼욱끼욱 작은 산새들의 소리에 온 귀가 열립니다. 이슬 머금은 창포꽃은 노랑 보라가 어우러져 있습니다. 철길 너머로 안개에 싸인 마을이 보입니다. 발바닥으로 느껴지는 잔디의 촉감이 편안합니다. 한 발은 딛고 한 발은 들고 온 몸의 체중을 모아 봅니다. 때론 몸의 균형을 유지하고 때론 몸의 균형을 잃어 흔들립니다. 어머니와 나는 뜰을 걷습니다. 사유의 뜨락을 한없는 여유로움과 자유로움에 빠져듭니다. 졸졸졸 돌 사이로 시냇물이 돌아 돌아 흐릅니다. 어머니와 나는 어느덧 두 손을 꼬옥 잡고 걷고 있습니다.

 “어머니, 어머니 아들이 정말로 좋은 선물을 보내 드렸네요.

 나는 어머니를 사랑하는 동생의 선물로 아침 산책이라는 자연을 받게 되어 흐뭇하고 행복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동생의 선물을 받은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몇 년이 흘렀습니다. 이제는 구십이 되신 어머니께 감사드리며 오래 오래 건강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동생아, 사랑하는 내 동생아, 그 때 너의 그 선물은 정말 고마웠다!'

 ,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0802016e8.bmp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482pixel, 세로 353pixel

정읍수필문학회 회원

전주교육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졸업 (전통미술공예)

정읍 서초등학교교사 정년퇴임

우석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졸업 (특수교육학)

남부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졸업 (상담심리학)

전주교육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졸업 (초등미술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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