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원종린수필문학상 시상식에 다녀와서

2018.09.09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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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회 원종린수필문학상」시상식에 다녀와서

꽃밭정이수필문학회

신아 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 야간반 전 용 창









이제는 조석으로 싸늘하고 한낮에는 무더운 게 전형적인 우리네 가을 날씨다. ‘원종린수필문학상’ 시상식에 다녀오자는 교수님의 부탁으로 “만사를 제쳐놓고라도 가야지요!”라며 이른 아침 댁으로 가니 약속시간 10여 분 남았는데 벌써 사모님과 함께 밖에 나와 계셨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꽃밭정이수필문학회’에서 준비한 꽃다발을 보여드렸다. 기뻐하셨다.

차가 고속도로에 진입하자 교수님께 물었다. “교수님은 수많은 제자들의 수필이 메일로 오면 그때마다 첨삭지도를 하시는 데 눈 건강은 어떠하세요?”

“응! 나는 아직 눈과 귀도 밝아.”
“무슨 비법이라도 있어요?”
“아, 있지. 날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발끝 부딪치기를 천 번 이상 하지. 아마도 그 영향인 것 같아. 신문이나 책도 돋보기 없이 읽으니까.”

그렇구나. 흐르는 물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속담이 딱 들어맞는구나. 피는 영양분과 산소가 가득한 진홍색의 동맥피와 둘 다 부족한 검붉은 정맥피가 있는데 몸 안에 있는 세포들은 영양분과 산소를 먹고 이산화탄소를 내놓으니 발끝을 부딪쳐서 단전이나 장딴지에 몰려 있는 탁한 정맥피를 심장으로 다시 보내면 산소가 가득한 깨끗한 피가 동맥을 통하여 몸 안에 퍼지니 몸에 열기가 나고, 세포가 활력을 얻을 게 아닌가? 나도 오늘부터 열심히 백 번이라도 해봐야겠구나 생각했다.

교수님은 주로 남의 이야기 ‘경청(敬聽)’을 많이 하시니 구양수의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의 삼다(三多)에 청(聽)이 하나 더 추가된 것 같았다. 그리고 차만 타시면 지그시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기니 이야기는 주로 사모님과 내가 했다. 사모님은 간간이 제자들의 수필 중 관심 있는 글은 읽는 듯했다. 언젠가 내가 쓴 「육수물이 뭐길래」를 참 재밌게 읽었다며 잘 썼다고 칭찬해 주셨다. 그렇게 대화를 하는 중에 차는 어느덧 대전의 ‘태원’이라는 중화식당에 도착했다. 11시가 시작 시간인데 사십여 분 일찍 도착했다.
교수님과 사모님은 서울에서 장남이 며느리와 일찍 출발했다는데 토요일이라 나들이 차가 많고, 벌초 행렬 차량이 많아 고속도로가 많이 밀려 좀 늦을 것 같다는 전화를 받고는 내심 서운한 모습이었다. 아버지의 수상식을 보고 반면교사로 삼았으면 하는데 말이다. 행사시간이 가까워지자, 내가 좋아하는 조영남의 「모란 동백」과 「사랑 없인 난 못 살아요」가 흘러나왔다.

“밤 깊으면 너무 조용해 / 책 덮으면 너무 쓸쓸해 / 불을 끄면 너무 외로워 / 누가 내 곁에 있으면 좋겠네.”

인생은 결국은 혼자가 아니던가? 빨리 깨달아 그때를 대비하면 외롭지 않은 텐데 나는 수필을 배운 게 노년을 대비하여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이 뒤따르지 않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어서 칩거하고 있어도, 글을 통해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접할 수 있고 ,지인을 만날 수도 있지 않은가?

단상 중앙에는 “제14회 원종린 수필문학상 시상식”이라는 현수막이 크게 걸려 있었다. 시작 시간이 가까워지자 축하객들이 모여들어 어느새 식장이 가득찼다. 식당은 오래된 건물인 듯 보이나 규모는 4층 건물이었다. 우리가 있는 곳은 3층 대형 연회장으로 100여 명이 앉을 수 있었다. 옆에 앉아계시는 사모님이 나에게 전에는 이런데 안 왔는데 요즈음에 교수님을 보면 자랑스럽다는 것이다. 그 나이가 되면 남들은 병원이나 다니는데, 복지관, 문예대학 등 여러 기관에서 강의를 하며 열심히 사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고, 이제는 잘해주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따라나섰다고 했다. 올라오는 차속에서 교수님은 나에게 소책자 봉투를 건네주었다. “이 안에 자네 글 들어있어.”

무뚝뚝함이 중용(中庸)이라 여기며 꼭 필요한 말씀만 하시지만 그래도 그렇지, “자네의 어떤 수필이 여기에 실려 있네. 참 잘 썼네.” 하시면 더 좋았을 게 아닌가? 지금껏 글을 잘 썼다고 칭찬받아본 적은 한 번도 없다. 꾸중을 듣지 않으면 잘 쓴 글이다. 아마도 잘 썼다고 하면 교만해질 것 같아서 그러셨을까? 무뚝뚝하지 않고 친절했다가는 그 많은 제자들의 읊조림을 어떻게 감당했겠는가? 40여 년 동안 수필 외길을 걸어오면서 세파에 휩쓸리지 않으려는 습관이 그리 되었나 보다 생각되었다. 책을 펼쳐보니 서울‘사랑의 교회’에서 발행하는「목마르거든」이란 월간지인데, 발행부수가 2만 3천 부에 달한다. 적어도 2만 명은 읽을 거라 생각하니 설레지만 졸작이어서 걱정이 앞섰다. “아마 원고료도 보낸다고 연락이 올 거네.” 기쁜 소식이었다. 나도 이제 아내한테 점수 좀 따고 수필 활동을 마음껏 하겠구나 싶어 뿌듯했다.
‘고(故) 원종린’ 수필가의 아드님이시고 문학상운영위원장이신 ‘원준연’교수가 고인(故人)의 삶과 시상식이 있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하셨다. “아버지는 1923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났고, 팔순이 되던 2003년에 이곳에서 제자들이 기념회를 열어주었는데 그때 수필문학상 발족 이야기가 나왔고, 2년이 지난 2005년 등단 40주년 기념식 때 정식으로 발족되어 올해로 14회에 이르고 있다.”며, “아버지는 서울대 법대 중퇴, 일본 유학, 미국 유학을 하였고, 학도병 생활, 서대문형무소 옥살이 등 갖은 고생을 하셨다.”고 했다. “중등교사, 공주교육대학 교수를 역임했고, 국민훈장 모란장, 제1회 수필문학대상을 받았으며, 1965년 현대문학에서 등단하여 단독저서 5권 공저 3권을 남겼는데, 제자들이 전집으로 발간했다.”고 했다. “그분의 작품세계는 ‘기지’, ‘익살’, ‘풍자’가 많은데, 똑바로 만 걸으면 무미건조하지 않겠는가? 때론 허튼 걸음, 때론 뒷걸음질도 해야 한다.”며 수필의 다양성을 강조했다며 고인에 대한 ‘김시헌’ 수필가의 평론을 사회자가 낭독했다. “대체로 고인(故人)의 작품은 길었는데, 재미가 있을지언정 손해 볼 일은 없었다.”고 하자 모두들 웃었고, 수필을 길게 쓰는 편인 나도 용기를 얻었다.

대상(大賞) 수상자를 선정한 심사평이 있었다. 이규식 심사위원장(한남대 교수)은 “대상은 작품상과 달리 단지 작품세계만을 보는 게 아니고 작품경력이나 지역사회 이바지, 후학들에 대한 기여도 등을 종합 평가하여 선정하는데, 올해 대상 수상자인 김학 수필가는 작품집필 경력이나 문단 활동, 특히 후진양성에 기울인 정성, 그리고 다루는 제재와 메시지의 깊이와 넓이 등에서 충분한 자격을 갖췄다.”고 평했다. “김학 수필가는 임실 출생으로 전북대 사학과를 졸업한 뒤 교직생활과 KBS 전주방송총국 편성부장을 끝으로 정년퇴직했고, 40여 년 수필 외길을 걸어왔으며, 그동안 쌓아온 업적으로 목정문화상, 전주시예술상, 대한민국 향토문학상, 한국 현대문학 100주년 기념 문학상 수필집 부문 금관상 등을 수상했고, 저서로는 '쌈지에서 지갑까지' 등 14권의 수필집과 2권의 평론집을 펴냈으며, 현재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전담 교수로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다.” 고 하자 모두들 박수로 축하했다.
나는 고인(故人)도 훌륭하려니와 제자들이 더 훌륭해 보였다. 한 해 두 해도 아니고 10년이 넘게 오랜 기간 동안 수필문학상을 운영하고 있으니 말이다. 대상이 500만원, 작품상이 3명이니 300만원, 코스요리 식사대, 행사비 등을 감안하면 줄잡아도 1,500만 원은 소요될 텐 데…. 식장은 기념촬영과 축하 만찬으로 이어졌고, 악사가 ‘유심초’의 ‘사랑이여’, ‘노사연’의 ‘바램’ 등을 색소폰으로 연주했다. 그제서야 서울에서 장남 내외와 손녀가 도착했다. 서울서 대전까지 5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교수님은 장남 내외의 꽃다발을 받고 무척 기뻐하셨다. 고명딸은 둘째외손자 안병훈과 함께 행사 시작 전에 도착했었다. 교수님은 18번이나 문학상을 받았지만 아들과 딸이 참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나는 시상식이 끝난 뒤 모처럼 교수님 부부가 오붓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드리고자 공주 마곡사로 가자고 했다. 경내로 들어가는데 교수님은 앞서 가고 사모님은 뒤따라 갔다. 뭐가 그리 바쁘신지 오늘은 모두 다 잊고 푹 쉬시지…. 어쩌다 거리가 좁혀져도 이내 벌어졌다.'백범당’에서 잠시 쉬며 ‘서산대사’의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를 읽고는 내려왔다.
이런 경사스러운 날에도 ‘김 학 두루미님’은 제자들의 작품 메일과 첨삭지도 생각에 어서 집으로 가자는 모습이었다. 하루 늦게 첨삭했다고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을 텐데 말이다. 돌아오는 차속에서 따님의 전화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우리가 전해준 꽃다발을 우리가 도로 가지고 왔어요!”
“아니, 어떻게 그렇게 되었지?”
나는 그게 더 좋다고 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꽃을 골라서 가지고 갔고, 부모님은 그 꽃을 보았으니 이제는 꽃 주인이 보는 게 좋을 게 아닌가? 나중에 알고 보니 며느리도 자기네가 가지고 온 꽃다발을 자기들이 가지고 갔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라며 모두 웃었다. 집에 와서 보니 내가 받은 꽃도“꽃밭정이수필문학회” 리본이 꽂인 게 아닌가? 내가 가지고 간 꽃을 도로 받아온 것이다. 붉은 장미, 노란 들국화, 하얀 백합이 안개꽃과 함께 방긋 웃고 있었다.‘사랑은 받는 것보다 주는 기쁨이 더 크다.’고 했는데 오늘은 그렇게 꽃다발을 받고 또 도로 건네주었다. 대상(大賞)과 작가상을 받은 사람보다 상을 수여한 원종린 교수님의 아드님과 제자들, 그리고 수필가들 모두 기쁜 하루가 되었으리라 믿는다.

(2018.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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