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수정 사랑

2018.09.23 07:03

김창영 조회 수:7

낙수정(樂壽亭) 사랑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창영

 

 

 

 

 낙수정이라고 하면 군경묘지를 떠올린다. 6.25전쟁 때 희생된 국군의 영령들을 모신 묘지다. 전주에서 가장 동쪽 기린봉과 치명자산(승암산) 사이로 뻗어 내린 맥이 멈춘 언덕배기에 조성되어 있어 풍수지리로도 명당이라고 할 만하다. 어쩌면 이 영령들이 전주시를 굽어보며 전주를 지켜주고 있는 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국군전몰장병들만 안장하는 국군묘지였는데, 그 뒤 경찰묘역을 증설하여 군경묘지가 되었다. 안타까운 것은 1960년대 만해도 현충일에는 많은 시민들이 참배하여 헌화도 했었는데 요즈음은 참배객도 없고 헌화도 거의 없어 쓸쓸하기 짝이없다. 그도 그럴 것이 자손도 없고, 부모들은 일찍이 세상을 뜨시고 동기간도 팔순쯤 되어 참배할 수 없는 형편이니 그럴 것이다. 현충일에는 전주시가 거행하는 조촐한 추모식이 있을 뿐이다. 요즈음에는 임실군 강진면에 국립호국원이 조성되어 있다. 조경도 잘 되어 쾌적하다. 뿐만 아니라 뒤쪽으로 등산로도 개설되어, 참배도 하고 가벼운 산책도 할 수 있어서 좋다. 나는 연전에 임실문인들 몇 사람과 함께 국립현충원에 참배하고 가까운 산을 산책하고 돌아온 일이 있다.

 인근에는 폐광된 광산이 있다. 입구는 철문으로 잠겨져 있었다. 폐광된 이 굴은 6.25 때 부역한 사람들이 수복 후에 겁에 질려 폐광된 굴속으로 숨어들었다. 경찰은 자수하라 권고했지만 나오지 않자 굴 입구에 불을 놓아 많은 사람이 질식사했다는 말을 들었다.

 낙수정마을은 행정구역상으로는 전주시 교동 1번지다. 지형적으로는 치명자산에서 뻗은 맥이 이목대를 거쳐 오목대에서 멎었고, 기린봉에서 뻗어내린 맥은 간납대에서 멎었다. 이목대와 간납대로 둘러싸여 있어서, 전주에서는 가장 골짝이 깊은 마을이다. 마을 가운데는 공동우물이 있어 아낙네들의 모임장소이기도 하고 소통의 장소이기도 하다. 날이 가물 때는 물이 모자라 밤을 새워 물을 길어야 했다. 낙수정마을은 울타리도 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지만 푸성귀도 가꾸면 서로 나누는 등 인심 좋고 평화스러우며 인정이 많은 마을이다.

 이 마을에는 터줏대감격인 기마대순경 한 분이 살았다. 어느 날, 말을 타고 집에 오면 동네 아이들은 말을 구경하러 모여들었다. 당시에는 사건이 발생하면 기마대 순경이 먼저 출동하여 사건을 수습하고 교통정리도 했었다. 그 모습이 몹시 멋스러웠다. 나는 이 낙수정마을에서 울타리도 없는 집 작은 방에서 신접살이를 붙였다. 그때 찬방에는 겨울에 감주상사를 하는 청년 두 사람이 살고 있었다. 마을에서는 이 집은 쌍둥이네 집으로 통했다. 쌍둥이 아빠는 한쪽 발을 저는 장애인이어서 시장에서 손수레를 끌고 다니며 짐을 날라주어 생계를 유지하고, 쌍둥이 엄마는 보따리 장사로 생계를 이어가는 순박하고 착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사건이 생겼다. 짐발이 자전거에 술 통개를 매달고 배달하는 건장한 사람이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지만 장애인인 쌍둥이 아빠를 밀어 넘어뜨려 다리를 다치게 하여 병원에 입원했다. 쌍둥이 엄마는 이 사실을 알고 술 배달꾼을 찾아가 뺨을 때렸다는 것이다. 이 술 배달꾼은 밤이 되어 술이 취한상태로 남자도 없는 쌍둥이 집에 찾아와 마루에 누워서 소동을 벌이다가 안방으로 기어들어갔다. 어린 쌍둥이는 두려움에 떨고 쌍둥이 엄마는 태연자약했다. 남의 일에 참견했다가 술 취한 사람에게 봉변을 당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지켜보고 있노라니 통행금지 시간은 다가오고, 그대로 두고 볼 수도 없어 총각을 불러 장정을 안방에서 마루로 마루에서 토방으로 끌어 내렸더니 일말의 양심이 있었는지 아무 말 없이 자기발로 걸어 나갔다. 나는 지금도 쌍둥이 엄마가 왜 이웃에게 지원을 요청하지 않았는지 아리송하다.

 나는 6월에 친구와 함께 오목대, 이목대를 거쳐 치명자산 성지를 참배하고 낙수정마을로 돌아 나왔다. 군경묘지는 철문으로 굳게 잠겨있었고, 영원불멸이란 비석만이 나를 숙연케 했다.

 옛날 내가 살던 집은 빈 집으로 남아있어 허전함을 느꼈다. 기마순경집은 교회가 들어서 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공동우물은 폐 샘이 되었고. 슈퍼마켙에 들러 물어보았더니 기마대순경은 일찍 돌아가시고, 그 부인은 지금도 그곳에 살고 있다고 했다. 아들은 교수가 되어 출세했지만 아들을 따라가지 않고 팔순 노파 혼자서 낙수정마을을 지키고 있단다. 나는 슈파마켙 주인에게 옛날 쌍둥이집에서 살았던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노파에게 안부를 전해달라는 말을 남기고 낙수정마을을 걸어 나왔다.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다는 말이 떠올랐다.

                                                                    (2o14.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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