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군대시절

2018.09.24 09:06

김학 조회 수:8

그리운 군대시절

김 학

군대시절이 그립다. 52년 전 초급장교 때로 돌아가고 싶다. 예비역 육군 중위로 제대한지 어느새 반백년이 지났다. 20대 초반 풋풋한 나이에 보병 소위로 임관한 나는 자부심이 대단했었다. 군복과 모자에 붙은 다이아몬드 계급장이 장군의 별 못지않게 자랑스러웠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육군 소위로 임관한 뒤 광주보병학교에서 16주 교육을 마치고서 최전방 부대 소대장이 되었다.

나는 육군 2사단으로 명령이 났었다. 2사단은 강원도 양구에 사단사령부가 있었기에 서울 청량리역에서 기차를 타고 춘천역까지 갔다. 서울에서 춘천까지 가는 기차 속에서 바라본 창밖은 소양강을 끼고 있어서 참으로 아름다웠다. 춘천역에 도착하니 양구까지 태워다 줄 군용트럭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트럭을 타고 가면서 사방을 둘러보니 가도가도 첩첩산중이었다. 또 사단사령부에서 1주 동안 교육을 받은 뒤 17연대 1대대 4중대 2소대장 보직을 받고 부대를 찾아 갔다. 그때 우리 동기생들은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라는 농담을 건네기도 했었다. 인제에서 가까운 곳에 원통이란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제읍에서 17연대를 가려면 리빙스톤교를 건너야 했다. 주말이면 같은 중대 소대장들과 어울려 인제 단골 중국집에 들러 탕수육 안주에 배갈을 마셨다. 다방에 들러 커피를 마신 뒤 부대로 돌아오는 게 즐거운 외출이었다. 때로는 소대원들을 거느리고 인제극장이나 원통극장으로 가서 영화를 감상하기도 했었다.

우리 2사단은 3군단 예비사단이어서 해마다 봄이면 대간첩작전을 나갔다가 늦가을이면 부대로 돌아오곤 했었다. 우리 소대는 양양군 강현면 둔전리, 인제군 내설악, 용대리 등지에서 천막생활을 하며 대간첩작전을 펼쳤다. 양양군 강현면 둔전리에서는 마을 앞 소나무밭[松林]에 막사를 지어 주둔하고 있었는데, 주민들은 나를 ‘소대장님’이 아니라 ‘대장님’이라고 부르며 다정하게 대해주었다. 그 때 이장님은 동네 앞으로 흐르는 개울 웅덩이에서 작살로 송어를 잡아 송어수제비를 끓여 주기도 했었다.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먹어본 송어수제비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또 소대장 막사에서 밤에 동해바다를 바라보면 물치 앞 바다에서 오징어잡이 배들이 불을 밝히고 고기를 잡느라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얼마나 환상적이었던가?

ROTC 4기는 1968년 3월에 제대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그해 1월 북한군 124군부대원 35명이 청와대를 목표로 남파되어 전국이 발칵 뒤집혔었다. 후배에게 대대 작전장교 업무를 인계하고 제대날짜만 기다리던 나는 후배를 원대복귀 시키고 다시 그 임무를 돌려받아야 했다. 우리 대대의 담당구역은 938고지인데 훈련이 강화되어 날마다 그 938고지를 오르내리는 강행군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날인가 그 고지 기슭에 이르자 이슬비가 내렸는데 정상에 오르자 함박눈으로 변했다. 고지에는 눈이 쌓여 길과 고랑을 구분할 수도 없었다. 그런 눈길을 걷노라니 군화 속은 눈이 가득 찼고 그 눈이 녹아 물이 흥건했었다. 그때 걸린 무좀이 반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퇴각하지 않고 나와 공생하고 있다. 군대시절에 얻은 선물(?)이라고나 할까?

김신조 일당 때문에 우리 ROTC 4기들은 군대생활을 석 달 더하고 예비역 중위로 제대를 했었다. 내가 제대를 하고 귀가했더니 향토예비군이 창설되었다. 그래도 장교로 제대했기에 예비군 훈련을 받을 때도 편리한 점이 많았다. 까마득한 옛 추억이다.

2018년 9월 18일부터 2박 3일 동안 평양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세 번째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너의 군대시절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다. 남과 북의 두 정상은 세 번의 공식회담을 마치고 평양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이 한반도에서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고 합의했다는 선언을 했다. 또 한반도를 핵무기가 없는 평화의 땅으로 만들어 후손들에게 물려주기로 했다니 얼마나 감동적인가? 두 정상은 마지막 날 민족의 영산 백두산에 올라 손에 손을 잡고 치켜들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8천만 겨레가 그 장면을 보며 얼마나 기뻐하고 환호했겠는가? 연말에는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여 정상회담을 가질 것이라고 한다. 꿈같은 일들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어서 감개무량하다. 내가 군대생활을 할 때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꿈도 꿀 수 없었던 변화가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언젠가는 남북통일도 깜짝쇼처럼 그렇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고생스럽기도 하고 위험한 일도 많았던 군대시절이었지만, 그래도 젊음이 무기였던 그 시절이 그립다. 내 나이가 어느덧 팔순의 문턱에 이르렀다. 그래도 다시 옛날 그 군대시절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2018.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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