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외출

2018.09.30 10:20

정근식 조회 수:2

생애 첫 외출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정근식

 

 

 

 

  8년 만의 외출이다. 내 나이가 8살이니 난생 처음 외출인 셈이다. 태어나 눈도 제대로 뜨지 않은 어린시절에 형제들과 함께 이곳 대전으로 팔려 왔으니, 아빠는 커녕 나를 낳아준 엄마의 얼굴도 사랑도 모르고 자랐다. 게다가 태어나 지금까지 이곳 대전에서 철망으로 둘러싸인 좁은 방에서 살았으니 외출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지냈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탓인지 나에게는 장애가 있다. 자폐성 장애다. 동일한 행동을 계속 반복하는 정신장애인데 전문가들은 정형행동이라고 한다. 그런 장애 탓에 형제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한다.

 늘 굳게 닫혀있던 문이 오늘은 열려 있었다. 형제들과 어울림이 부족해 모퉁이에서 쪼그리고 있는 내 눈앞에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청소부가 실수로 문을 닫지 않았다는데 그때는 나를 위한 따뜻한 배려라고 생각했다. 잠시만이라도 자유를 만끽하라는 배려라 생각했다. 열려진 문을 통해 세상 바깥으로 나오면서 따뜻한 배려에 고마움을 느꼈었다.

 바깥세상은 내게 기쁨보다는 호기심 그 자체였다. 어떻게 생겼을까? 그리고 조상들이 누린 자유는 어떤 것일까? 철망안의 세상과 밖의 세상이 어떻게 다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열려진 문틈 사이로 천천히 걸었다.

 좁은 우리에서 보는 세상과 바깥세상은 달랐다. 방안에 앉아 유리창을 통해 보는 세상과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세상은 분명 달랐다.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자유, 그것은 신기함보다 천국이었다. 우리 안에서 눈으로 볼 수 있었는 큰 나무도 벤취도 잔디밭도 벽돌담도 만져보니 모두가 신기했다.

 좌우를 살펴보면서 천천히 걸었다. 다른 우리에 있는 작은 동물들이 나를 보고 몸을 움츠리는 것 같기도 하고, 광장에서 모이를 먹던 비둘기는 내가 곁에 가자 후드득 날아 오르기도 했다. 모두들 나를 보고 겁을 먹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나는 내 조상과는 달리 겁쟁이다. 태어나서 한 번도 다른 동물을 공격해 보지 못했다. 공격은커녕 낯선 사슴이라도 나타나면 내 몸이 먼저 옴추러드는 겁쟁이다.

 내 능력도 많이 부족했다. 식사 한 끼조차 스스로 해결한 기억이 없다. 지금까지 차려놓은 음식을 먹기만 했지 내 스스로 식사준비를 위해 노력한 적은 없다. 나를 위한 식사준비는 고맙기도 하지만 그것 때문에 나는 더욱 무기력해졌다.

 처음 가는 낯선 길이라 섣불리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조심스럽다. 내 조상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은 활동영역이 넓고 세상에서 제일 날래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그런 모습을 실지로 본 적은 없었다. 시속 80키로 이상으로 달려서 5-6미터 높이는 쉽게 뛰어넘는다고 하여 우리 종족을 아메리카 호랑이라고 하지만 믿겨지지 않는다.

 우리 동족과 나는 다르다. 아메리카 넓은 광야를 포효하기는 커녕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좁디 좁은 우리에서 사는 것이 운명이라 생각하며 여태껏 살아왔다. 내 동족의 능력을 듣고도 내 능력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상상해 본 적도 없다. 단지 하루를 살기 위해 오늘 밥상에는 더 많은 고기가 올라오기를 바라기만 했다.

 솔직히 나도 맘껏 달려보고 싶은 충동이 많았다. 어릴 적부터 건질거리는 양어깨와 다리를 풀어주고 싶었다. 움츠렸다가 뛰어 보고도 싶었고 맘컷 달리고도 싶었다. 그렇지만 내가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이라야 기껏 10여미터 남짓 되는 철망 우리니 어찌 뛰거나 달려 볼 기회가 있었겠는가?

 내가 나온 세상은 사실 바깥세상은 아니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동물원 안이었다. 단지 다른 것이 있다면 내가 지금 다니는 길은 동물이 다니는 길이 아니라 인간이 다니는 길이다. 그래서 나를 재난이라고 한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라는 이유로 나를 재난이라고 한다.

 

 낯선 길을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처음에는 자유를 만끽하는 것이 좋았는데 나를 찾는 사냥개 소리를 들은 뒤 걱정이 되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막혀 있고 그렇다고 경험하지 못한 바깥세상으로 도망가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어쩔 수 없이 빈 박스 안에서 잠시 몸을 숨겼다가 나를 찾는 인기척이 느껴져 몇 차례 자리를 옮겼다. 이곳저곳을 다녔지만 내가 마땅이 숨을 곳은 없었다. 결국 나는 배수로에서 긴 장총을 가진 수명의 사람들과 마주치고 말았다.

 나는 지금 트럭에 누워 있다. 숨을 쉬지 않은 지는 오래되다 보니 내 의지대로 일어설 수가 없다. 가만히 생각해 본다. 내가 재난이었을까? 세상에 태어나 자유를 처음 맛본 내가 정말 재난이었을까? 태어나 한 번도 사냥을 해 본 적이 없는 내가 고향인 아메리카 초원이나 산악지역에 있는 동족처럼 위험한 존재였을까? 위험한 존재였어도 꼭 총을 가지고 내 자유를 뺏어야 했을까?

 내가 우리를 나가자 재난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대전동물원에서 퓨마가 탈출하여 위험하니 외출을 자제하라고 했다. 그 재난문자가 방송과 신문의 긴급 뉴스로 소개되면서 나는 조금씩 재난으로 만들어졌다.  

 재난 처리 방법에 아쉬움은 있다. 캐나다에서 몇 년 전 나와 유사한 상황이 있었다. 야생 퓨마가 작은 마을에 들어왔는데 경찰은 생포하여 자신이 살던 거주지로 보내려고 노력을 했다. 주민들이 사살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야생에서 동물을 사냥하여 살아 왔던 퓨마와 식사준비 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나와는 전혀 다르다. 캐나다 주민들과 경찰이 합동하여 퓨마를 생포할 수 있었고 자신이 살던 산악지역으로 돌려보냈다.  

 우리 안에서도 구경거리였는데 트럭에 누워있는 지금은 전 국민의 구경거리다. 구경거리가 당사자에게 얼마나 큰 스트레스인지 모른다. 당신이 지금 철망 안에 갖혀 남들의 구경거리가 되고 있다고 상상해보라. 얼마나 잔인하겠는가? 그 스트레스가 병의 원인이 되어 수명이 반이상 짧아지는 암의 원인이 되는 것을 당신들 같은 구경꾼은 모른다. 지금 트럭에 누워 남들의 구경거리가 된 지금 나는 누구를 원망하지 않는다. 인간이 나를 팔았고 철창에 가뒀고 문을 열어주었고 나를 사살했다고 원망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 당장 내가 숨을 쉬며 우리에 다시 들어간다고 생각해 보라.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나는 지난 8년 동안 동물원에 갖혀 있는 다른 맹수들을 보고 살았다. 우리 속에서 어깨를 축 늘어뜨린 맹수들의 뒷모습을, 야성을 잃어버리고 무기력에 빠져 자포자기한 동물들을 다시 보고 싶지 않다. 그런 동물에게 한 장의 사진을 찍기 위해 소리를 지르고 돌을 던지고 유리벽을 두드려도 꼼짝하지 않는다는 욕설을 더욱 듣고 싶지 않다. 생각해보라. 야생에서 누린 자유를 차단당한 동물들이 얼마만큼 삶의 의욕이 있겠는지.

 지금 여기서 동물들의 행복추구권을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104일 동물의 날을 만들어 동물의 권리와 복지 및 보호를 위해 기념하는 날이 인간 위주의 정책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지 않다. 지금 동물원에 갖혀 있는 동물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라. 무기력한 동물들을 조상들이 포효했던 땅으로 돌아가지 못할 바에야 포수의 힘을 빌어 죽음으로서 자유를 얻는 것이 행복하지 않을까? 한 번쯤 동물원도 식물원도 없애는 노력도 필요하지 않을까?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다고 한다. 대전동물원에서 4시간의 첫 외출로 죽음으로서 자유를 얻은 아메리카의 호랑이인 나, 퓨마는 지금 나의 방송을 보며 구경하고 있는 이들에게 숙제를 남겼다.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동물원의 동물들을 위하여 어떤 행동이 필요한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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