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쉼터, 건지산

2018.10.05 13:06

한석철 조회 수:1

나의 쉼터, 건지산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한석철

 

 

 

 

 건지산은 전주 덕진구에 있는 야트막한 산이다. 이곳 금암동으로 이사 온 뒤 일주일에 두세 번씩 다녔으니, 아마도 백 번은 넘었으리라. 정상에 앉아 시내를 바라보니, 건지산에 대한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처음 건지산에 오를 때가 생각난다. 싸늘한 바람이 불기는 했지만, 봄기운이 감도는 20163월이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을 누르며 건지산에 올랐다. 쭉쭉 뻗은 편백 숲으로 이루어진 건지산을 보니 눈도 맑아지고 건강이 금방 좋아질 것만 같았다. 대학병원 후문쪽에서 정상까지 천천히 걸으면서 전주 시내에 이런 산이 있다니,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봄이 되니 파릇파릇한 새싹이 돋아나고 꽃이 피더니 초록의 나무들이 나를 이끌어 주었다. 여름엔 울창한 숲으로 장식해 주고, 가을이 되니 아름다운 단풍이 어울려 탄성을 지르게 했다. 겨울에는 편백 숲의 웅장함에 도취되어 자주 찾게 되었다.

 건지산은 오르는 길이 많다. 나는 처음에는 조경단 입구에서 정상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는 코스를 다녔다. 오를 때는 30분가량 걸리고 내려올 때는 25분가량 소요된다. 정상에서 힘차게 숨을 들여마시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고 숨을 천천히 내뱉으면 내 몸속의 노폐물이 깨끗이 정화되는 느낌이 들었다. 나에게는 적당한 운동량이었다. 그 뒤 번갈아 가며 조경단, 최명희 문학공원, 어린이회관, 장덕사, 연화마을, 소리문화의 전당, 오송마을, 대지마을, 동물원 등으로 오르는 길을 택하다 보니, 마치 우리의 인생길처럼 조금씩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건지산을 오르는 사람 중에는 쓰레기를 줍는 어른도 있고 등산로를 보수하는 사람도 있다. 그럴 때면 고개가 절로 숙어진다. 그런가 하면 산에 오지 말아야 할 사람도 마주치게 된다. 오물을 버리고 가는 사람도 있고, 가끔 개를 데리고 다니면서 변을 그대로 방치해 놓고 가는 사람도 있다. 같은 사람인데, 저렇게 다른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앞에서 아버지와 아들, 엄마와 딸이 오순도순 대화를 나누며 걷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다. 때로는 노 부부가 서로 의지하고 삶을 나누며 걷는 모습은, 늦가을 낙엽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아리기도 한다. 오르고 내려오다 보면 예의가 바른 사람도 만나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도 본다. 건지산 숲속에서 호탕한 웃음소리도 만나고 정상에 가면 노인들의 하소연이 메아리쳐 퍼지기도 한다. 계단이 가파른 곳을 오를 때는 인내심을 요구하기도 하고, 내려올 때는 평정심을 자극하기도 한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보는 것처럼 건지산은 우리 삶의 축소판 같다.

 

 작년 가을 단풍이 너무나 아름다워, 나도 모르게 휴대폰으로 경치만 찍고 있는데, 어느 젊은 아주머니가 어떻게 내 마음을 알고 “제가 사진을 찍어 드릴까요?” 하지 않는가? 지금도 그 장소를 지나갈 때면 그 아주머니 생각이 난다. 기분이 좋은 날 건지산에 가면 반듯하게 뻗은 편백들이 나에게 사열을 해주는 것 같아, 그 순간 내가 무슨 장군이라도 된 것처럼 거수경례를 하며 지나가게 되는데, 어깨가 우쭐해진다. 또 우울할 때 편백 숲에 들어가면 비에 젖은 나무들이 내 마음을 감싸주기도 한다. 건지산은 나에게 청명한 가을 날씨를 선사하기도 하고 꽃피는 봄날 같은 20대의 추억을 되돌려 주기도 하는 추억의 장소이기도 하다.

 전북의 자랑 전북대학병원 뒷산에 있는 건지산은 젊음이 솟구치는 체력단련장이 있고, 산속 작은도서관에서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좋다. 또 전주소리문화의 전당은 세계적인 문화축제의 장이기도 하다. 오송제는 우리 부부가 산책하기 좋은 곳이며 봄이면 이름 모를 들꽃들의 향연이 펼쳐지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전주'라는 지명이 붙어 있는 유일한 식물인 '전주물꼬리풀'도 이곳에서 서식하고 있다. 최명희문학공원과 전주이씨의 뿌리인 조경단이 있는 곳, 건지산! 이 산에는 아이들의 꿈을 키워 주는 어린이회관과 동물원과 승마장도 있다.

 산에 가면 나무만 있는 것 같아도, 산속에는 다람쥐를 비롯하여 온갖 나비와 새들이 있고, 땅속에는 개미를 비롯하여 미생물들이 많이 살고 있다. 건지산은 그들과 더불어 사는 곳이다. 오늘도 정상에서 내려오다 보니 여기저기서 도토리를 줍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먹을 음식물이 넘쳐나는데, 다람쥐들의 겨우살이 먹이까지 다 주워가서야 되겠는가? 내가 무심코 하는 행동이 다른 생명의 생사와 직결된다는 걸 알아야하지 않을까? 수많은 생물이 함께 살아가는 건지산은 우리가 아끼고 보호해야지 싶다.

 건지산은 작은 산이지만, 전주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공간이며 전주사람들의 큰 쉼터인 아름다운 보물 산이다. 이렇게 가까운 도심에 이런 산이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건지산은 나의 영원한 안식처이며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는 치유의 공간이다. 건지산은 내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찾아가면 반갑게 안아주는 어머니 품속 같은 곳이다. 나는 이곳 건지산 가까이에서 영원히 살고 싶다.

                                                    (2018.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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