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의 삶

2018.10.05 13:54

전용창 조회 수:4

무소유의 삶

꽃밭정이수필문학회

신아 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전 용 창

 

 

 

  나는 일 년에 두어 번은 순천 송광사를 찾는다그곳 뒷산 불일암에 법정스님이 계셨고, 스님이 암자를 오르내리며 걷던 그 산길을 걸으며 무소유의 마음을 깨닫기 위해서다. 사람들은 그 길을 ‘무소유 길’이라고 부른다. 올여름에도 장인 장모님 산소를 다녀오며 송광사를 찾았다. 오후 2시가 지나서 식당을 찾았다. ‘길상식당’이라는 간판을 보자 스님의 마지막 수행지인 길상사(吉祥寺)가 떠올라서 그곳으로 갔다. 시래깃국에 된장찌개, 도토리묵, 매실장아찌를 반찬으로 산채비빔밥을 맛있게 먹었다.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잠시 쉬고는 무소유 길을 걸으며 명상에 잠겼다. 스님은 노년에 길상사에서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셨고, 그곳에서 20103월, 78세를 일기로 입적하셨고, 법체(法體)를 송광사로 운구하여 다비식을 하고 손수 심고 기른 불일암 후박나무 아래 영면해 계신다. 길상사와 법정 스님(본명:박재철)의 인연은 스님의 수필 한 편이 맺어주었다.

 

 우리나라 3대 요정 중 하나였던 ‘대원각’의 주인인 ‘김영한(金英韓)’은 1916년 양반가의 딸로 태어났으나 부모가 일찍 세상을 뜨자 집안이 풍비박산이 났다. 15살 때 팔려가다시피 시집을 갔으나 허약한 남편의 요절과 시어머니의 구박으로 시집에서 뛰쳐나와 ‘하규일’ 문하에 들어가 16세 어린 나이에 ‘진향’이라는 기생이 된다. 온갖 풍상을 겪으며 억척스레 돈을 모아 ‘대원각’을 세워 굴지의 요정으로 키웠다. 그런데 그가 노년에 법정스님의 글「무소유」를 읽고 깨달음을 얻어 시가 1,000억 원에 달하는 대원각을 법정스님께 시주를 하려 했으나 스님은 끝내 거부를 하며 무소유를 실천하셨다. 8년여 설득으로 하는 수 없이 순천 송광사에 기부하여 말사(末寺) 사찰로 등록한 게 길상사(吉祥寺). 기부 당시 천억 대이니 오늘날에는 수천억 원을 호가하는 값어치일 것이다. 스님은 그 김영한에게 ‘길상화(吉祥華)’라는 법명을 지어주고 108 염주 한 벌을 걸어주었다. 사찰의 이름도 그분의 법명을 따서 길상사(吉祥寺)라 정했다고 한다.

 

  기생 ‘진향’은 흥사단에서 만난 스승 신윤국의 도움으로 일본 유학까지 했으나 스승이 함흥 감옥에 투옥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함흥 감옥에 갔으나 만나지 못하고 우연히 그곳 함흥 영생여고선생님들의 회식장소에서 운명처럼 백석 시인을 만난다. 이때 ‘진향’은 22세였고, 여고 영어선생이자 詩人인 ‘백석’(白石 본명:백기행)26세였다. 백석은 ‘진향’과 하룻밤을 보내며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이별은 없을 것’이라고 고백했고, 둘은 2년여 동안 동거하며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다. 그런데 기생과 사랑에 빠진 아들을 못마땅하게 여긴 백석 집안에서 서둘러 다른 여자와 결혼을 시켰는데, 첫날밤에 집을 뛰쳐나와 영한에게 달려가서 만주로 달아나자고 한다. ‘진향’은 자신이 걸림돌이 될 것 같아 거절하자 백석은 홀로 만주로 떠났다. 그 뒤 만주를 유랑한 뒤 해방이 되어 함흥으로 다시 돌아왔지만 ‘진향’은 서울로 돌아간 뒤라서 만날 수 없었고, 그 뒤 남북이 분단되어 영원한 이별을 하고 말았다. 그녀는 백석을 그리워하며 2억 원을 ‘백석 문화상’ 기금으로 내놓기도 했다.

 

  어느 날 ‘백석’은 ‘진향’이 사들고 온 시집을 뒤적이다 이백의 시 「자야오가(子夜吳歌)」를 발견하고는 그에게 자야(子夜)라는 아호를 지어주었다. ‘자야오가(子夜吳歌)’는 서역지방으로 오랑캐를 물리치러 나간 낭군을 기다리는 여인 ‘자야(子夜)’의 애절한 심정을 노래한 이다. 평북 정주가 고향인 백석은 1996년에 84세에 북에서 세상을 마감하고, 길상사의 ‘자야’는 어느 날 고운 옷을 입고 경내를 산책하다가 당시 주지인 ‘청학스님’에게 ‘나 죽으면 화장해 길상사 경내에 뿌려주시오’라고 유언을 하였다는데 다음날인 19991114108 염주를 목에 건채 83세의 나이로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죽기 전에 젊은 기자가 ‘길상화’ 보살님에게 물었다.

 

 "천억 대 재산을 내놓고도 후회하지 않으세요?"

 "무슨 후회? ‘천억이 그 사람 한 줄 만도 못해.다시 태어난다면 나도 시를 쓸 거야."

 

 49제를 마치고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장에는 마지막 남은 재산 122억  원 상당도 한국 과학기술 영재 양성에 써달라며 카이스트대학에 기부했다. 아들, 딸도 없이 홀로 사시다 가신 金英韓 여사, 기생 眞香, 子夜, 吉祥華 보살님! 파란만장하게 사시다가 무소유의 삶을 몸소 실천하고 가신 ‘님’의 명복을 빈다.

 법정 스님은 '무소유(無所有)'란 글 서두에서 ‘마하트마 간디’의 무소유의 삶을 소개한다. 간디가 19319월 런던에서 열리는 원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가던 중 마르세유 세관에게

 "나는 가난한 탁발승(托鉢僧)이요. 내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젖 한 깡통, 허름한 요포(腰布) 여섯 장, 수건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평판(評判) 이것뿐이오."

 스님은 간디의 어록을 읽다가 이 구절을 보고는 크게 깨달았다고 하셨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고, 살만큼 살다가 이 지상의 적()에서 사라져 갈 때도 빈손으로 갈 것이다. 그런데 살다 보니 이것저것 내 몫이 생기게 된 것이다.’ 필요에 의해 물건을 갖게 되지만 도리어 그로 인해 얽매이게 되고 부자유스럽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의 서재 골방에는 잡동사니가 고물상처럼 쌓여있다. 책도 많고, 신발도 많고, 당장 필요 없는 것들로 가득하다. 옷장에는 한 번도 매지 않은 넥타이도 많고, 유행이 지난 옷도 그렇다. 아내는 누구라도 주어다 쓸 수 있게 버리라고 하지만 다시 살려면 돈이 들지 않느냐며 스스로 천년만년 살 것처럼 끌어안고 있다. 무소유를 알면서도 실천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불일암에 가면 묵언(黙言)이라고 쓰여진 현판이 있다. '무언'은 할 말이 없어서 입을 다문다지만 '묵언'은 할 말이 있어도 참는다는 뜻이다. 무소유는 물질뿐만이 아니라 마음도 비우는 것임을 깨닫게 해 준다.

 

 첫사랑 연인의 시 한 줄이 천억에 비할 수 없다며 평생을 흠모하며 사랑하고, 수필 한 편을 읽고 깨달음을 얻어 평생 모은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는 ‘길상화 보살님’의 아름다운 삶과 마지막까지 무소유를 실천하신 ‘법정 스님’의 가르침이 진실한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고, 물질이 만능이라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값진 삶을 일깨워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2018.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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