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춧대 지팡이

2018.10.06 13:59

전용창 조회 수:2

고춧대 지팡이

꽃밭정이 수필문학회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전 용 창

 

 

 

 

  어머니는 내가 어릴 적에 말씀하셨다.

 "용창아, 너는 생일도 추석 3일 뒤니 성가실 일이 없구나! 추석음식과 과일을 조금씩만 남겨두면 되니 별도로 장만할 일도 없고."

 내 생일은 음력으로 팔월 열여드레이니 추석 끝이어서 미역국만 끓이면 된다. 매년 아내에게 미역국만 끓이라고 하지만 케이크도 준비한다. 미역국은 어머니가 드셔야 하는 것인데 내가 대신 먹는다. 우리 어머니들은 출산을 하면 몸의 칼슘이 다 빠져나가니 출산하고 나서 며칠 동안은 미역국만 드셨다. 그렇게 진을 다 빼버린 어머니에게 생일을 앞두고 효도를 하고 싶은데 안 계시니 나보다 연장자인 누나들과 매형에게라도 하고 싶었다. 아침에 막내 누나에게 전화를 했다.

 

 "누나, 큰누나와 매형들이랑 오후에 마이산으로 바람이나 쐬러 갈까요?"

 "동생이 가자고 하면 나야 언제든 대환영이지."

 "그럼 큰 누나에게도 연락을 해서 매형이랑 일찍 점심식사를 하고 12시 반까지 아파트 앞 큰길로 나오시라고 해요. 그리고 누나와 매형은 12시에 세탁소 앞에서 만나요."

 "응 알았어."

 

 청명한 초가을에 누나와 매형을 모시고 마이산으로 나들이를 갔다. 확 트인 차창 너머로 코스모스가 하늘거리며 반갑다고 손짓을 하고 간간이 구절초도 반짝이며 반겨주었다. 들녘에는 누렇게 익은 벼이삭이 한 해 동안 고생한 농부들에게 보답이라도 하려는듯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큰 매형은 올해도 풍년이라며 즐거워했다.

 

  큰누나는 형제가 만나면, 10여 년 전에 9남매가 45일 필리핀여행담을 자주 얘기하곤 한다. 오늘도 그 날의 드라마를 재방송하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말을 탄 이야기, 보트를 타고 폭포수를 건너던 이야기, 극장에서 쇼를 본 이야기, 저마다 3천 원을 주고 바나나와 망고를 한 소쿠리씩 담아 와서 밤새 호텔에서 술안주로 먹던 이야기를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얘기했다. 얼마나 좋았으면 현관 옆 벽을 그때의 여행사진으로 도배를 했겠는가?

 

 "동생, 이제는 허리와 무릎이 아파서 다시는 갈 수 없겠지?"

그렇게 말하는 큰누나의 얼굴빛이 창백해 보였다.

 "누나, 더 늦기 전에 제주도라도 다녀 와야지."

 "그럼 얼마나 좋겠어? 동생이 그동안 봉고차로 우리 남매들 호강 많이 시켜 주었지."

 누나는 그 시절이 그리운가 보다. 그때는 모두가 젊었었는데 이제는 거의가 팔십 줄에 접어들었다.

 

 차속에서는 파티가 벌어졌다. 큰누나는 삶은 옥수수와 떡을 내놓았고, 막내 누나는 가방을 열더니 머루포도와 단감을 꺼내놓았다. 나는 영양갱과 고소미 과자를 꺼내 놓았다. 우리는 음식을 나눠먹으며 추석명절 이야기를 했다. 가을 하늘은 눈부시게 푸르고, 들녘은 마냥 풍요로웠다. 막내누나는 큰누나가 마치 어머니인 양 집안일 하나하나를 보고한다. 그러면 큰누나는 그런 일이 있었냐며 다 받아준다. 실은 막내누나가 네 살 때 큰어머니께서 돌아가셨으니 그렇게 생각했나 보다. 두 분 매형은 전에는 서로 주도권이라도 잡으려는 듯 입씨름을 하셨는데 그 시절 혈기는 어디로 가고 서로의 건강만 묻고 있었다. 어느덧 먼발치로 암마이산과 숫마이산 꼭대기가 보이더니 곧 주차장에 도착했다.

 

  ‘참 좋다.’던 기쁨도 잠시이고 이내 지팡이를 잊었다며 걱정을 한다. 큰누나는, 막내누나가 허리가 좋지않아 잘 걷지 못하니, 자기 지팡이를 건네준다. 큰매형도 무릎이 아프다며 걷기가 힘들다 하니 그 지팡이는 다시 큰 매형에게로 갔다. 조금을 가더니 큰누나가 길가 고추밭에서 철제 고춧대 2개를 들고 와서 하나는 막내누나에게 주고 하나는 본인이 지팡이 대신 짚었다. 집에 가면 지팡이가 있으니 살 필요가 없다고 한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고춧대 지팡이’를 보고 웃었다. 나는 속으로 ‘당신들도 금방 지팡이를 짚고 다니게 돼!' 하며 중얼거렸다. 누나들의 한 발 한 발 옮기는 뒷모습을 보니 지팡이도 걸음마를 하는 듯했다. 마치 세상일을 다 마치고 천성(天城) 문을 향하여 한 걸음씩 떼는 순례자의 모습 같았다. 누나들은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하는지 끝이 없었다. 남자들은 다 따로였다. 지팡이를 들지 않은 막내매형은 혼자서 앞서가고 큰매형은 뒤에 처져서 걸어오고 있었다.

 

  경내에 들어서니 누나들은 탑사를 가지 않겠다는데 언제 다시 오겠냐며 나랑 같이 천천히 가자고 하여 아래 탑사까지만 갔다. 관광객들이 그곳에서 소원을 빌자 누나들도 마음을 모았다.    

 "큰누나는 무슨 소원을 빌고 왔어?"

 "막내딸 시집가게 해달라고 빌었어."

 우리는 내려와서 막내매형이 손짓하는 식당으로 갔다. 그곳에서 매형은 도토리묵, 파전에 동동주를 시켜 한 상 차려 놓았다. 매형은 모두에게 동동주 한 잔씩을 따라 주었다. 우리는 잔을 부딪치며 ‘건강을 위하여!’를 합창했다. 한 잔의 동동주는 꿀맛이었고, 도토리묵도 맛이 있었다. 서로에게 더 먹으라며 권하기도 했다. 동동주를 다 들고 큰누나는 선물코너에 가서 지팡이 두 개를 샀다. 하나는 막내 누나에게 선물로 전하고, 하나는 본인이 짚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던가? 이렇게 서로를 아껴주고 배려하는 마음이 가을하늘보다 더 아름다웠다.

 

  돌아오는 길에 막내매형은 고춧대를 함부로 버리지 말라며 챙겼다. 어디에서 가져왔느냐며 농부들은 고춧대 하나가 새롭다며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찾았는데 끝내 찾지 못하고 주차장까지 내려와 버렸다.

"매형, 할 수 없어. 고춧대 주인의 건강과 행복을 빌어주고 그냥 차로 가게."

 오늘 ‘고춧대 지팡이’는 어머니의 효자손 같았다.

 "누나, 금세 팔십의 나이가 되었네!"

 "나도 이렇게 빨리 나이를 먹을 줄은 몰랐어."

 "건강해야 또 올 수 있어."

나는 오늘 어머니에게 드릴 생일축하 기쁨을 누나들과 함께 나누어 너무도 기뻤다.

                                                    (2018.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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