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이야기

2018.10.06 15:45

백남인 조회 수:2

술 이야기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백남인

 

 

 

 

  “술 한 잔에 시름을 털고 너털웃음 웃어보자 세상아.

  “제가 ‘해피!’라고 선창하면 여러분은 ‘투게더!’라고 후창하세요.

  “해피, 투게더!

  한 달에도 몇 번씩 갖는 회식자리에서 내가 가끔 쓰는 건배사다. 참신한 트로트가수 신유가 부르는 ‘시계바늘’가사의 일부다.

  “술도 마실 줄 모르는 사람이 무슨 건배사야?

 나를 아는 사람들은 의아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술을 못 마셔도 좌중에서 최연장자이다보니 떠밀려서 직석에서 생각나는 대로 읊은 권주가라고나 할까?  

  지금은 건강상 어쩔 수 없이 술을 입에 대지 않지만, 옛날에는 술로 인하여 실수도 많이 했고, 건강도 많이 해쳤다. 나의 체질이 워낙 약해서 처음부터 술은 멀리 했어야 했는데, 젊은 시절엔 겁도 없이 술자리에 끼어들었던 것이다.

  어렸을 적, 아주 어렸을 적에 나의 아버지 친구가 우리 집에 오셨다가 가실 때, 아버지가 배웅을 나가신 틈에 술상에 남은 술을 조금씩 마셨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정신이 멍하여 허둥댔었다. 본디 술이 체질에 맞지 않은 것이다.

  그 뒤로는 술이 주변에 있어도 가까이 하지 않았는데, 교사로 근무하면서 술을 마실 기회가 많아지고, 알코올에 대한 내성이 점점 생겨 겁없이 술을 마셨다. 학교 안에서 가지는 친목행사를 비롯한 갖가지 행사는 물론, 학부모와 만나서도 술을 매개로 인사하고 상담하는 것이 상례였다. 학부모들은 자주 만나 교육상담을 나누고 아이들의 특성이나 가정에서의 학습방법이나 진로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일과를 마치고 피곤하기도 했지만 그 때는 젊었기 때문에 크게 지친 줄을 모르고 지냈다. 또 퇴근길에는 학년회나 동호회별로 술집에 모이는 기회가 수없이 많았다.    

 술자리가 마련되면 으레 선배들이 술에 관한 지식을 알려주고 주법과 주도를 강의하고 그걸 잘 지키기를 은근히 바라셨던 것 같다. 일불(一不), 삼소(三少), 오의(五宜), 칠다(七多), 구과(九過). 무슨 계명이나 된 듯이 홀수로 이어진 이 말의 뜻은, 한 잔은 말이 안 되고, 석 잔은 적고, 다섯 잔은 알맞고, 일곱 잔은 좀 많고, 아홉 잔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이 기준은 주도(酒道) 강의를 하신 그 선배의 기준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 정도의 주량은 술을 입에 대는 사람이라면 거뜬했던 것 같다. 무슨 술이 됐든 사람 수대로 한 병씩은 기본이었다. 소위 각 1병이라는 것이다. 다섯 잔이 알맞다고 했던 기준은 까마득히 잊고 그 몇 배를 마시고 집에 돌아오는 경우도 흔히 있었다.  

  이 세상에 술은 얼마나 좋은 음식일까? 다정한 사람을 만나 긴 하소연이나 정담을 나누고 싶은데 술이 없다면 얼마나 무미건조해질까? 평소 서운한 감정을 가지고 있던 사람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고 화해하고 싶을 때 술은 얼마나 좋은 윤활유가 될까? 고마운 분을 모시고 술을 대접해 드림으로써 인간관계를 더 돈독히 하고, 유대를 더 강화하며, 어떤 어려운 일도 잘 추진할 수 있을 때, 술은 얼마나 고마운 것인가?  

 

 ‘주봉지기천종소(酒逢知己千鐘少)’ 라는 말이 있다. ‘술은 지기를 만나면 천 잔도 부족하다.’는 뜻이다. 천 잔까지는 어떻게 마시겠는가. 기분이 좋을 땐 많이 마셔도 취하지 않을 것이란 의미다. 회식 자리에서도 반가운 사람끼리 둘러앉아 술잔을 허물없이 주고받다 보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마시는 때가 많지 않던가? 술이야말로 인간관계를 다져주는 보물이었다. 젊어서는 술로 인하여 건강상의 커다란 문제가 나타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나의 경우엔 코끝이 조금씩 빨개지더니 점점 더 빨개져서 소위 딸기코가 되기 시작했다. 꽤 유명하다는 한의사를 찾아가서 원인과 치료방법을 상담했다. 술을 소화시키는 효소가 사람마다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술을 많이 먹으면 다른 사람처럼 소화를 잘 시킬 수 없는 체질이란다. 한약을 통해서 6개월간 관찰해봐야 원인을 알아낼 것 같단다.

  또 영하다는 양의사를 찾아 진단을 받았더니 역시 원인은 아직 잘 알 수 없지만 5년 정도 치료를 해봐야 한단다. 나의 건강상에 큰 문제가 숨어 있음을 깊이 깨닫고 전주에 있는 양oo내과를 토요일마다 5년간 다니며 치료를 받았다.

  치료를 시작하면서부터 그 동안 즐기던 술을 입에 대지 않기로 결심했다. 퇴근 길에 동료들과 술집에 함께 들어가기는 하지만 술은 입에 대지 않았다. 그 때 술 끊는 것은 여간 강단으로는 어려운 것임을 실감했다. 다른 사람은 술술 마시는 술을 나는 맥콜로 대신했다. 나의 의지도 굳었지만, 동료들이 이해해주고 강권하지 않았기에 술잔의 유혹을 벗어날 수 있었고, 5년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치료를 받아 거의 완치에 이를 수 있었다.  

  노후까지 술을 즐기며 건강을 지키던 어느 한학자가 나에게 들려주신 이야기를 소개한다. ‘주자소즉보양다즉손명(酒者少則補養多則損命), 즉 술은 조금 마시면 건강에 아주 좋고, 많이 마시면 건강을 해친다는 의미다. 내가 젊은 시절에 과음을 한 탓에 지금은 술을 즐기지 못하며, 누가 술잔을 주면 극구 사양하거나 권하는 분의 선의를 보아 받기는 해도 맛있게 마시지 못하여 미안한 마음이 항상 도사린다.

  적당히 마시면 말문을 열어주고, 혈액순환을 좋게 하며, 인간관계를 다져주는 술, 그런 술을 나의 친척과 친구, 동료들이나 후배들이 정말 알맞게 마시면서 건강100세를 누리시기 바란다.

                                                          (2018.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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