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소리

2018.10.08 13:04

정근식 조회 수:2

피아노소리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정근식

 

 

 

 피아노소리가 들립니다. 작은 강의실에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 퍼집니다. 수업을 듣고 있는 모두는 선율에 귀를 기울입니다. 강의실에는 맑은 소리만 가득합니다. 유명한 피아니스트의 음률보다 교향악단의 연주보다 더 아름답고 경쾌합니다.

 나는 아름다운 피아노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몇 번이나 고개를 옆으로 돌렸습니다. 건반을 두드리는 모습 때문입니다. 그녀는 반듯하게 자리에 앉아 가냘픈 손가락으로 작은 점자를 피아니스트처럼 누르며 수필을 읽고 있습니다. 신기하거나 놀랍다기보다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그녀가 연주하는 피아노소리는 듣기 좋습니다. 목소리가 경쾌할 뿐만 아니라 발음은 또박또박하고 읽는 속도도 적당하여 다른 작가들에게 전달력이 높습니다. 난독증으로 글을 쓰는 것보다 읽는 것을 더 힘들어하는 나보다 훨씬 나았습니다. 만약 그 모습을 보지 않았다면 장애인이라는 것을 아무도 알 수 없었을 겁니다.

 오늘 연주하는 곡은 ‘우리아빠 이야기’였습니다. 아빠에 대한 자상한 이야기입니다. 어린시절 녹내장으로 시력이 나빠지는 딸을 위해 교과서를 확대해서 아빠표 큰책을 만들어 주고, 점선 공책을 진하게 선을 그어 주었다는 이야기는 아빠의 애틋한 마음이 읽혀집니다. 그리고 대학시절 성인이 된 자녀에게 어린이날 선물로 과자를 1박스 선물하여 깔깔거리며 웃었다는 얘기와 며칠 전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할 때 손녀보다는 자신에게 먼저 닭다리를 챙겨 주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그리고 부녀가 외모와 성격이 꼭 닮았다고 합니다. 문학적인 기질을 닮아 아빠는 시를 좋아하고 딸은 수필창작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행복하게 사는 이야기는 피아노소리만큼 아름다웠습니다.

 처음 아름다운 피아노소리를 들었던 때가 올 4월입니다. 수필창작반 수업에서였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는 낯설었습니다. 장애인복지 관련 업무만 10년 가까이 하면서 많은 장애인들을 만났지만 시각장애인의 글 읽는 모습은 처음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시각장애인이자 수필가입니다. 손으로 점자를 피아노 건반처럼 누르고 입으로 소리를 내는 점자니스트입니다. 점자니스트는 시각장애인이 책을 읽는 모습에 예술성을 담아 이름을 붙여 보았습니다.

 수필수업은 자신이 쓴 작품을 읽은 뒤 토론을 하는데 처음에는 시각장애인인 줄 몰랐습니다. 내게 들려오는 소리는 다른 작가의 글 읽는 소리와 똑 같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시각장애인이라는 소개를 받고 알았습니다.

 그녀의 수필에서 현재의 남편과 결혼하기까지 힘들었지만 행복한 사랑이야기를 읽었습니다. pc통신으로 우연히 책을 좋아하는 사람을 알게 되었고 장애인임을 알렸는데도 거부감없이 받아 주었다고 합니다. 결혼식날 가족과 하객이 온통 눈물바다가 된 이야기도 읽었습니다. 지금은 특수교사로 일을 하면서 남편과 예쁜 공주와 함께 오순도순 살아가고 있습니다.

 장애인은 사회에 적응하기가 힘듭니다. 서유럽과는 달리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생활하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일부 장애인들은 정상적이 사회생활을 하지 못해서 시설에 거주하는 분도 있습니다. 장애인 누구든 지금 피아노를 연주하는 작가처럼 자신의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회에 적응하는 것은 선천적 장애보다 후천적 장애가 휠씬 더 힘들다고 합니다. 불편함이 없이 살다가 불편한 생활을 하는 것에 대한 적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랍니다.

 

 그녀는 불빛조차도 가려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밝은 세상을 닫고 지내야 하는 생활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상상해 봅니다. 답답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겠지요. 볼 수 있는 것을 잃어버린 어린시절, 얼마나 절망했을까요? 그런 여건에도 지금은 특수학교 교사가 되었고, 일반인도 하기 힘든 수필가로서 작가생활도 하고 있습니다. 그녀에게 대견함을 너머 존경을 보냅니다.

 아빠의 마음을 헤아려봅니다. 안타까움과 대견함이 있었을 겁니다. 어린 딸이 눈이 나빠지는 것을 지켜보는 마음이야 말을 하지 않아도 가슴이 먹먹했을 겁니다. 그러나 지금 맏딸인 그녀를 보면 대견하고 든든할 것 같습니다. 부모의 마음은 바다보다 깊고 하늘보다 높다 했지요. 부모가 되어 보니 실감이 납니다. 문득 “못난 아비에게 길을 묻다”라는 연극이 기억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아버지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야기입니다.

 장애인 아버지에게 어린 아들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눈이 보이지 않고 지적장애도 있습니다. 아들은 소아암에 걸려 병원에 다니고 있습니다. 병이 악화되어 회복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의사에게 들었습니다. 실망한 엄마는 남편이 있는 것을 모르고 넋두리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조상이 있어 아들을 지켜주는데 자기 아들은 조상이 없어 지켜주지 않아 병이 낫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스스로 조상이 되기 위해 물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가슴 먹먹한 이야기였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버지의 모든 마음은 같을 것입니다.

 장애인 체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장애인복지 업무를 담당할 때 단체로 체험했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오르막을 오르기도 하고 목발을 이용해서 걷기도 했습니다. 모두 다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시각장애인 체험이었습니다. 안대로 두 눈을 가리고 그 위에 다시 눈 가리게를 하여 앞을 볼 수 없었습니다. 온통 검은색이었습니다.

 체험이 시작되었습니다. 눈 대신 지팡이를 이용했습니다. 지하철을 타는 과정을 체험했는데 주관부서에서 지하철역과 똑 같은 모의 역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상상보다 많이 힘들었습니다. 나는 지하철을 탑승하는 과정을 안대를 가리기 전에 확인했는데도, 몇 걸음도 나가지 못했습니다. 두 손으로 만져도 보고 귀를 기울여 다른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를 듣기도 했고 장애인 블록을 따라갔지만 탑승할 장소를 찾지 못했습니다. 결국 나는 보조인을 하는 다른 직원들의 도움을 받고서야 체험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시각장애인에게 바닥에 있는 장애인 블록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습니다. 계속 갈 수 있는 블록과 멈추어야 할 블록이 구별되어 있음을 알았습니다. 시각장애인의 불편함이 안타까워 잠시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우리의 삶은 무대 위의 연극이라고 합니다. 무대 위에 오르는 연극은 모두 행복한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불행한 이야기도 있고 행복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행복하게 시작해서 불행하게 끝나는 이야기도 있고, 불행한 과거를 딛고 행복하게 사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녀가 공연하는 연극은 행복한 이야기만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수필수업에서 아니면 다른 지면에서라도 만날 때 무거운 저음보다는 밝고 경쾌한 피아노소리를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동화책 주인공처럼 따뜻한 이야기만을 들려주기를 바랍니다.

                                                                (2018.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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