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반도 여행기

2018.10.16 16:14

고안상 조회 수:4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꿈

-발칸반도 여행기-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고안상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보석이라 불리는 관광도시 네움에서 1박을 한 우리 일행은 디나르 알프스 산맥을 따라 이어지는 고속도로를 달렸다. 한동안 달리던 버스가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도착한 곳은, 한때 해적들의 소굴로 유명했던 오미스다. 지금도 이 지역을 둘러싸고 있는 험악한 산들의 모습을 보면, 해적들이 금방이라도 뛰쳐나올 것처럼 음산해 보였다. 오미스를 잠시 둘러본 뒤 버스는 목적지 스플리트로 향했다.

 

 스플리트는 크로아티아 서남부 달마티아 주에 있는 도시로 아드리아 해와 마주한 항구도시이며, 크로아티아에서 수도 자그레브 다음으로 큰 도시다. 스플리트는 유서 깊은 도시로서 기원전 그리스인들의 거주지로 건설되었다고 한다.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자리에서 물러난 뒤, 이곳에 거대한 궁전을 지으면서 본격적인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단다. 그 뒤 7세기에 슬라브족이 이곳으로 들어와 궁전에 정착하는 등 여러 시대를 거치며 화려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스플리트는 유고슬라비아 왕국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도시로 개발되어 근대적인 항만 시설이 갖추어졌고, 달마티아 지방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이곳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디오클레티안 궁전을 비롯한 옛 유적이 많고, 기후가 온화하고 디나르 알프스 산맥과 아드리아 해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경치가 아름답기로 이름이 난 휴양지로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든다고 한다.

 

 우리는 스플리트 시 외곽으로 나가 점심을 먹었다. 바로 인근에선 지역주민들이 가득 모인 가운데 청소년 축구경기가 열리고 있었다. 이렇게 주말마다 각 지역에서 축구경기가 열리는데 그 열기가 대단하다고 한다. 이런 국민들의 열기가 모아져 크로아티아가 축구 강국으로 발돋움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 일행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있는 디오클레티안 궁전에 들렀다. 로마 황제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달마티아 지방의 살로나(Salona)에서 천민으로 태어났다. 전 황제였던 누메리아누스의 경호대장으로 복무하던 중, 황제가 페르시아 원정에서 살해당하자 284년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디오클레티아누스 이전의 시대는 20명이 넘는 황제가 교체될 정도로 혼란했던 시기로 '3세기의 위기'라고 불린다. 디오클레티아누스가 황제에 즉위한 뒤 외적을 물리쳐 방위선을 공고히 하고, 내정을 개혁하여 황제의 권한을 강화함으로써 로마제국은 크게 안정되었다고 한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사두정치체제를 도입해 거대한 로마 영토를 동서로 양분, 4명의 황제, 2명의 정제와 2명의 부제가 나누어 다스림으로써 보다 효율적으로 통치할 수 있었다. 그러나 로마제국에서 가장 강력하게 그리스도교를 박해한 황제였다는 점이 하느님을 믿는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는 성물을 파괴하고, 모임을 불허하였으며, 로마 신의 제의를 수행하지 않는 사람은 사형이나 강제노역에 처했다. 그렇게 20년 넘는 세월 로마를 이끌어 오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문득 정치에 회의를 느끼고 어느 날 갑자기 은퇴를 선언했다. 황제는 달마티아의 스트라룸(지금의 스플리트)으로 물러난 뒤 305년부터 316, 생을 마감할 때까지 달마티아에서 가장 햇살이 많이 비친다는 이곳 스플리트에 거대한 궁전을 짓고 노후를 보냈다.

 

  집권 당시 개인궁전에서 채소를 기르며 사는 평화로운 삶을 꿈꾸었던 황제는, 그러나 말년이 생각처럼 그렇게 평화롭지만은 않았다. 뜻하지 않게 왕위 쟁탈전에 휘말려버린 그의 아내 프리스카와 외동딸 발레리아가 납치당한 뒤, 오리엔트 지방으로 추방되어 살해당하자, 그도 지병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자살함으로써 불행한 최후를 맞았다고 전해진다. 그가 황제로 재위하면서 3,000여 명이 넘는 기독교인을 순교시킨 곳이 바로 성 도미니우스 대성당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역시 이곳에 묻혔다고 한다.

 

 건축한 지 1700여 년이란 오랜 세월이 흘렀기에, 디오클레티안 궁전은 당시의 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궁전의 모습을 상당 부분 그 당시의 윤곽을 어느 정도는 유지하고 있기에 오늘날에도 저렇게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일행은 궁전의 남쪽 입구에서 지금은 많은 상점이 늘어선 지하통로를 통해서 궁전 안쪽으로 들어갔다. 궁전 내부의 모습은 상당 부분이 파손되었지만, 잘 다듬어진 대리석 기둥과 벽면에 새겨진 조각의 모습을 보면서 그 당시 궁전 건축에 동원된 수많은 사람들의 피땀이 모아진 결과라는 생각에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궁전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통로를 만들고, 이곳을 중심으로 도시가 발전해간 것 같았다. 궁전 바로 옆에는 성 도미니우스 대성당이 있고, 종탑이 있는데 그곳에 올라가면 스플리트 시내를 환히 내려다볼 수 있다고 한다. 나는 북쪽 문으로 나가 그레고리오 대주교의 동상을 구경하고, 다시 서문 쪽으로 나와 신발과 옷을 파는 가게들을 돌아본 뒤에 해안가로 나왔다.

 

 항구에 정박한 여러 척의 대형 유람선과 화물선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아드리아 해변을 나 홀로 잠깐 동안 걸어보았다. 바닷가 도로변 이름 모를 가로수 아래 벤치에는 배를 기다리는 관광객들이 떼지어 앉아 매혹적인 스플리트 항구와 도시의 모습에 푹 빠졌다. 디오클레티안 궁전을 중심으로 붉은 기와를 머리에 인 하얀 벽의 수많은 집들이 아드리아 해변의 에메랄드빛 바다와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를 연출하고 있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황제의 자리를 벗어던지고 이렇게 아름다운 스플리트에서 남은 여생을 행복하게 보내려 했지만, 아내와 외동딸을 잃게 되자, 그것이 한순간의 물거품과도 같은 꿈이었음을 깨닫는다. 세상을 하직하고자 했던 순간, 황제의 일그러진 마지막 모습이 출렁이는 물결 위에 드러났다 사라져 간다.

 

 나는 이곳을 돌아보며 ‘제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언젠가는 한줌의 흙으로 되돌아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는 어느 철학자의 말이, 황제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는 것을 역사가 여실히 증명해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이 먼 타국 낯선 도시의 어느 해변가에 서있는 나 자신이 너무도 작고 초라해짐을 느꼈다.

                                                (2017.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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