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까스 남편과 곰탕 아내

2018.10.16 16:34

김성은 조회 수:14

돈가스 남편과 곰탕 아내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김성은

 

 

 

 

  나는 돈가스를 무척 좋아한다. 바삭거리는 식감과 쫄깃한 돼지고기에 향긋한 소스를 곁들여 먹는 돈가스는 초등학교 1학년 딸아이도 즐겨 찾는 음식인지라 우리 가족의 단골 메뉴다. 돈가스는 조리할 때도 민첩하게 기름의 온도를 파악하고, 짧은 시간 적당히 튀겨내야 맛을 낼 수 있다. 맛의 유효 기간이 꽤나 극적이라고 할까? 반면 곰탕은 오랜 시간 뜨거운 불에 고아야 깊은 맛을 낼 수 있다. 끓이기 시작하면 오랜 시간 뭉근한 불에서 진국이 울어날 때까지 조리해야 하므로 온 식구가 푸짐하게 나누어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양을 요리하는 경우가 많다.

  돈가스와 곰탕의 공통점이라면 둘 다 '음식'이라는 점 정도일까? 차이점은 수도 없다. 돈가스는 포크로 찍어 먹지만, 곰탕은 숟가락으로 떠 먹는다. 돈가스는 바삭바삭 고소하지만, 곰탕은 뜨끈뜨끈 진국이다. 돈가스는 셀러드와 야채로 아기자기하게 모양을 내지만, 곰탕은 투박한 뚝배기에 멋없이 담겨 있다. 남편은 돈가스 같은 사람이고 나는 곰탕 같은 아내다. 남편은 곰탕의 미련함을 견디기 힘들어 하고, 아내는 돈가스의 성급한 산화를 이해하지 못해 괴롭다. 남편은 빠른 시간 내에 높은 열량을 자랑하며 폭발하지만, 아내는 화가 나는 것도, 식는 것도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감히 흉내낼 수 없는 돈가스의 바삭함과 신선함에 반했다. 자유로운 언행과 거침없는 결단에 매료되어 덥썩 남편의 손을 잡았다.

남편은 나의 무엇이 좋았을까?

 

  청명한 가을 어느 주말, 우리 가족은 함라산 등산길에 올랐다. 우리 부부에게는 익숙한 등산코스였지만, 출산하고서 처음 나서는 걸음인지라 나는 내심 걱정이 되었다. 날다람쥐 같은 아이를 동반한 우리 세 식구의 단독 등산은 처음이었으므로 남편의 부담도 만만치 않았으리라. 아이는 토끼처럼 깡충거렸고, 참새처럼 재잘거렸다. 정상 가까이에 가서는 오르막 앞에서 지친 기색을 보이기도 했지만, 딸아이는 나의 무거운 다리와 터질 듯 요동치는 심장을 재촉해 주는 신묘한 발전기였다. 정상에 올라 익산시내를 내려다 보며 남편은 성취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에게 우리 집을 찾아 보라고 개구쟁이 같은 숙제를 내주기도 했다. 정자에 앉은 아이는 오이를 아삭아삭 예쁘게도 먹었다.

 평소 런닝 머신을 하며 나름대로 체력을 관리한다고 했건만 경사가 있는 산에서의 보행은 차원이 달랐다. 출산 전에는 썩 어렵지 않게 정상까지 주파했었는데, 체력은 저질이 되어 있었고, 하산길에서는 다리가 풀려 엉덩방아를 세 번이나 찧었다. 날다람쥐 같은 딸아이가 이미 앞서 내려간 탓에 나는 잠시도 쉴 새가 없었다. 얼른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나에게 팔을 빌려준 남편은 능청스럽게 걸었지만, 앞서간 딸아이에게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문득 '시각장애인과 등산하기'라는 미션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원할까 생각해봤다. 솔직히 돈을 준다고 해도 선뜻 나설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딸아이는 영민하게도 주차장으로 내려가 우리 차 앞에서 전화를 걸어왔다. 태연하고도 싱싱한 목소리로 1등을 외치며 상금 5,000원을 달라고 소리쳤다. 고마웠다. 건강하게 자라서 깡충거리며 씩씩하게 등산에 성공한 딸아이도, 그 아이를 키우며 눈물 콧물 범벅으로 거친 시간 견뎌 온 남편도….

 

  몇 년 전 친한 동료와 함께 돈가스나베라는 요리를 먹어본 일이 있다. 일본식 전골 요리로 돈가스를 자작한 국물 냄비에 담구어 먹는 메뉴였다. 최근에는 요리 전문가 백종원 선생이 소개한 '돈가스김치나베'가 대중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돈가스나베. 돈가스 같은 남자와 곰탕 같은 여자가 어울어질 수 있는 모범답안이 아닐까?

 

  곰탕은 돈가스보고 매사에 좀 진득할 것을 주문했다. 성급한 언행을 비난하기도 했다. 반대로 돈가스는 곰탕보고 민첩하게 처신할 것을 요구했다. 자기 자신보다 주변 상황에 초점을 맞추어 행동하는 곰탕의 수동적인 태도에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각자 자기 잣대로 상대방을 판단했으므로 우리 부부는 그렇게 끝도 없는 평행선을 달렸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국물과 돈가스는 돈가스나베로 다시 태어났고, 그 고유의 맛으로 대중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돈가스와 곰탕의 차이점을 겸허히 수용하기로 했다. 돈가스가 곰탕이기를 바라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서로 다름을 존중하기로 다짐했다.

 

  내일은 우리 가족이 두 번째 등산에 도전할 예정이다. 딸아이가 좋아하는 컵라면과 김밥을 준비하여 정상에서의 만찬을 누릴 셈이다. 가수 '정인'이 부른 '오르막길'이란 노래를 들으면 그 가사에 콧날이 시큰해진다.

 "이제 끈적이는 땀, 거칠게 내쉬는 숨이 우리 유일한 대화일지 몰라."

 우리 가족의 일상이 함라산 정상에서의 소박한 축제 같을 수만은 없으리라. 다만 한 곳을 바라보며 함께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이, 서로의 건강과 안녕을 염려하는 애틋한 마음이 우리 가족을 하나로 묶어주는 비결이 아닐까?

                                                                         (2018.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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