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사성 대감처럼

2018.10.16 20:07

변명옥 조회 수:12

맹사성 대감처럼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변명옥

 

 

 

 

  얼마 전에 갑질 문제로 세상이 시끌시끌했다. 어느 기업 회장이 운전기사에게 욕을 하고 무엇을 던졌다느니회장 사모님이 외국인 가정부와 직원에게 폭언을 했다고 연일 보도하는 신문 방송 때문에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2014년에 큰딸이 땅콩회항으로 나라 망신을 시키더니 그 이야기가 조금 잠잠해지자 이번에는 작은딸이 공적인 자리에서 직원에게 컵을 던지고 악을 쓰는 모습을 보여주어서 온국민이 큰 충격을 받았다. 자기가 이사로 있는 J항공의 광고영상에 상냥하게 웃으며 서비스하는 모습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 집안은 어머니와 딸 둘이 약속이나 한 듯 갑질을 했다. 그 덕에 여러 비리가 드러나 머리 허연 남편까지 검찰 조사를 받으러 들락거리는 모습이 조금 안쓰러웠다. 하지만 가정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다는 비난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공분(公憤)하는 이유는 사회적인 약자를 상대로 한 갑질이기 때문이다.

 

  이야기할머니 책에 ‘말조심을 가르친 선비’에서 맹사성 대감이 허름한 옷차림으로 고향에 다녀오다 소나기를 만나 주막집에 들어갔다. 앉을 자리를 찾던 맹사성의 눈에 젊은 선비가 자기가 데려온 일꾼들과 마루에 죽 걸터앉아 자리가 없었다.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도 않고 한 술 더 떠 ‘공’으로 묻고 ‘당’으로 대답하는 놀이를 하자는 젊은이에게 맹사성은 흔쾌히 먼저 시작했다.  

 “어디로 가는 길인공?” 하는 맹사성의 물음에 젊은이는

“서울로 가는 길이당.

“무엇하러 가는 공?  

“ 과거 보러 간당.

“글공부는 많이 했는공?

 “노인이 뭘 안다고 그러는당.

“내가 좀 봐 줄공?

 “남을 놀리는 것은 옳지 않당!” 하며 젊은이는 맹사성을 노려보며 씩씩거렸지만 맹사성은 그저 웃기만 했다. 이 이야기의 클라이막스는 과거에 급제한 젊은이가 궁궐에서 맹사성을 만나는 장면이다. 새로 관리가 된 사람에게 맹사성은 눈도 마주치지 못할 만큼 높은 사람이었다. 젊은 선비를 발견한 맹사성은

“어떻게 된 일인공?”하자 젊은 선비는 바닥에 엎드리며

“죽어 마땅합니당!” 하는 것을 보고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 주막에서의 일을 이야기해 주자 모두 크게 웃었다는 이야기다. 그 뒤에 맹사성은 젊은 선비를 나무라지 않고 훌륭한 관리가 되도록 도와주었다고 한다. 젊은이의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인격을 너그럽게 품어 주었던 맹사성의 인품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맹사성은 벼슬이 낮은 사람이 찾아와도 반드시 공복(公服)을 갖추고 대문밖에 나아가 맞아들여 윗자리에 앉히고 돌아갈 때도 역시 공손하게 배웅하여 손님이 말을 탄 뒤에야 안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조금만 지위가 높아도 아랫사람을 무시하고 하인 부리듯하는 요즘 사람들이 배워야 할 덕목이다.

 맹사성이 고향인 온양에 왔다 올라간다는 정보를 듣고 진위현감이 잘 보이려고 길을 닦고 아전들에게 길목을 지키게 했다. 그런데 진위현감과 양성현감이 목이 빠지도록 기다려도 맹정승이 나타나지 않자, 기다리다 포기한 두 현감은 술이 거나하게 취했다. 그 때 소 울음소리가 들리고 웬 노인이 소를 타고 지나가자 술에 취한 진위현감이

 

 “네 이놈! 무엄하게도 거만하게 성주 앞을 그대로 지나치다니, 썩 내려서 용서를 빌지 못할까?” 하고 호통을 쳤으나 노인은 귀머거리처럼 못 들은 체 지나치려 했다. 화가 난 현감은 끌어내리라고 소리쳤다. 포졸이 물었다.

 “도대체 너는 어디 사는 누구인가? 귀머거리인가?” 하자

 “그렇게 궁금한가? 늙은이에게 무슨 이름이 있겠는가만 너희들이 정 알고 싶다니 대답해 주마. 성주에게 가서 온양에 사는 맹고불이가 제 소 제가 타고 가는 길이라고 여쭈어라. 아무리 성주라 할지라고 백성이 길을 가는 것까지는 막을 수는 없다고 일러라.” 말을 마친 맹사성은 여전히 소등에 앉은 채 태연자약하게 길을 재촉했다. 뒤늦게 맹 정승임을 알아 본 두 현감의 낯빛이 흑색으로 변했다고 한다. 높은 사람에게 잘 보여 출세하려다가 오히려 목이 달아날 뻔했다. 맹사성의 인품이 아니었다면 두 현감은 큰 곤욕을 치렀을 것이다.

 

  말 못하는 식물도 자기 구역을 침범 받지 않으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고, 다른 식물이 곁에 닿으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식물을 보기 좋게 다듬는다고 전지가위로 잘라주고 이리 저리 옮기는 것도 어쩌면 인간의 욕심에 찬 갑질이다. 식물은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는 견디어 내지만 지나친 인간의 욕심에 반짝이던 잎이 누렇게 변하며 죽어버린다.

 오래 전 옆 반 교실 작은 화분에서 죽지 못해 살아가던 가느다란 비자나무를 우리 화단에 옮겨 심었다. 그 나무는 자기 세상을 만났다는 듯이 무서운 성장 속도를 보여주었다. 실내에 있는 식물들에게 "너는 행복하니?" 하고 물어보아야겠다. 하물며 다양한 감정과 자존감으로 살아가는 인간이 별 잘못 없이 갑질을 당한다면 그 모멸감과 수치심이 평생을 괴롭힐 것이다.

 

 조그마한 지위를 이용해 약자를 괴롭히고 못살게 하는 소인배도 있는가 하면 외국인 직원을 자기 가족같이 아끼고 돌보아주는 좋은 상사도 많다. 상하관계를 떠나 같은 시대에 태어난 같은 사람으로서 아픔과 기쁨을 함께 하고 배려한다면 정말 풍요롭고 행복한 세상이 될 것이다. 갑질 문제로 마음 아픈 요즘 ‘을이 존중 받아야 갑도 존중받습니다.’ 하는 광고 카피가 더 가슴에 와 닿는다. 정승이면서도 일반 백성보다 더 검소하게 살고 백성을 자기 가족처럼 아끼고 보살폈던 맹사성 대감 같은 인물이 그립다.

 맹사성 대감이 얼마나 너그러웠으면 ‘너그럽고 후하기는 맹정승일세.’하는 말이 생겨났을까? 백성들은 맹사성의 호인 '맹고불'을 '맹꼬불' '맹꼬불'이라고 친근하게 불렀다지 않던가? 

                                                      (2018.9.22.)

 

 

 

 

 

댓글 0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47 순교자의 발자취를 찾아서(1) 김금례 2018.10.22 6
246 한라산과 검은 발톱 전선숙 2018.10.21 8
245 구절초 꽃이 피니 행복하다 변명옥 2018.10.20 15
244 평원의 코스모스길 한성덕 2018.10.19 10
243 재목짓기 요령 두루미 2018.10.18 10
242 창작 콘테스트 안내 한국문협 2018.10.18 11
241 옮겨가는 상자들 최연수 2018.10.18 7
240 마곡사와 백범 김구 선생 김길남 2018.10.17 12
239 불효자의 한 백남인 2018.10.17 11
» 맹사성 대감처럼 변명옥 2018.10.16 12
237 돈까스 남편과 곰탕 아내 김성은 2018.10.16 14
236 발칸반도 여행기 고안상 2018.10.16 4
235 여성은 파업 중 정근식 2018.10.16 16
234 100세 무병장수하는 13가지 식사법 오경옥 2018.10.16 9
233 코스모스 백승훈 2018.10.16 10
232 비빔밥과 비빔밥 정신 박제철 2018.10.14 12
231 나는 누구일까 홍성조 2018.10.13 13
230 지티나는 사람들 [1] 최기춘 2018.10.12 47
229 바다 위를 가르는 해상 케이블카 임두환 2018.10.12 5
228 빛 바랜 편지 김삼남 2018.10.11 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