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효자의 한

2018.10.17 05:46

백남인 조회 수:11

불효자의 한(恨)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백남인

 

 

 

 

  매주 일요일 11시에 KBS1-TV는 <진품명품>을 방송한다. 조상들의 예술작품이나 골동품들에 대하여 전문가와 쇼 감정단이 가치를 매겨보면서 감상하는 프로그램이다. 그 프로그램을 볼 적마다 조상들의 훌륭한 솜씨에 찬탄하는 때가 많다. 그러면서 안타까운 심정이 되기도 한다. 서예작품을 감상할 때는 더욱 그러하다.

 

  나의 아버지는 한학자이셨다아버지는 큰아들로 태어났으면서도 할아버지로부터 농토를 물려받지 못하셨다. 한학에는 조예가 깊지만 농사를 지어 가계를 꾸려가는 능력은 부족하셨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몸이 건강하고 살림 잘하는 다른 아들을 마음에 두고 모든 살림을 그 아들을 중심으로 배정하신 것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눈밖에 난 아버지와 어머니는 나의 외가마을로 떠나셨다. 아버지는 객지로 나가 활동하여 가계에 도움을 주고자 했으나 그 방면에는 적성이 맞지 않으셔서 어머니를 힘들게 하셨다. 어머니이게 항상 미안한 마음으로 뭔가 가계에 도움이 되고자 했으나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셨던 모양이다. 그러다가 이웃마을 어느 부잣집에서 사랑채에 서당을 차리고 훈장으로 나의 아버지를 모셔갔다.  

 

  한학에 조예가 깊으신 덕으로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는데도 제자 및 문하생들이 운집했다. 밤이나 낮이나 그곳에서 기거하시면서 한문과 서예를 가르치셨다. 서당이 잘 운영되는 덕에 어머니한테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가족과 떨어져 살았기 때문에 아버지의 가르침을 직접 받을 기회는 별로 없었다.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가끔 들러서 서당 안에 걸려있는 작품들을 보면 모두 훌륭한 것 같았다. 나는 어렸을 때라 학문이나 예술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한이었지만 제자들은 잘 배워서 크게 성공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들었다.

 

  그 때 아버지는 그 일대에서 알아주는 명필로서 이름이 자자하셨다는데, 나는 서예 작품 하나 받아놓지 못했다. 한시에도 조예가 깊어 많은 시를 지으셨다는데, 그 시들을 한 편도 보관한 게 없다. 한시 짓는 재주도 이어받지 못했다. 불효막심한 자식임을 통절히 느낀다.

 나의 아버지는 말을 잘 타셨다고 어머니한테 들었다. 객지에 계시다가 집에 오실 땐 말을 타고 오실 때가 많았다고 하셨다. 또 국악기를 잘 부셨다. 단소나 퉁소로 온갖 동물들의 소리를 내셨고, 문하생의 시조반주를 대금으로 하시는 것을 직접 보기도 했다. 그 때는 모두들 그런 악기를 배우려고 하지 않은 것 같다.

 

  워낙 몸이 약하신 아버지는 특히 위장이 약하셨던 것 같다. 나의 큰형님이 고향마을에 살고 있었는데, 아버지를 잘 보살펴 드리겠다고 모셔갔지만 건강은 별로 좋아지지 않으시고 회복을 못하신 채 돌아가셨다. 의학수준이 그리 높지 않은 때라 장수를 못하셨다. 아버지의 유품은 붓과 국악기 몇 점이었는데, 그것도 잘 간수하지 못했다. 어머니를 고생시킨 아버지를 어렸을 땐 무능하시다고 생각했었다. 같이 생활한 기간이 너무 짧아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을 기회가 적었다. 사자소학부터 사서삼경, 통감, 사략까지 제자들을 가르치신 아버지의 훌륭한 지식을 하나도 전수받지 못한 것이 한이다.

 

  교직에 몸담고 있다가 물러난 뒤, 어느 날 아버지 사진을 보면서 한학을 잘 하시면서도 시대를 잘 타지 못한 까닭으로 평생 풀지 못한 한을 내가 조금이나마 풀어드리고 아버지의 재주를 조금이라도 이어받으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먼저 단소와 대금, 그리고 활쏘기를 익혔다. 또 서예를 익히기 시작했다. 시간이 쌓이고 쌓여야 하는 것들이어서 아직도 미미한 상태다. 양악기도 몇 가지 연습해 보았는데, 혼자 즐기는 정도다.

 

 아들에게 진정으로 존경받는 아버지는 어떤 아버지일까? 살아계실 땐 아버지의 훌륭한 뜻과 덕을 알지 못했다. 뜻을 따르고 덕을 본받는 아들은 그도 그의 아들로부터 존경을 받게 될 것이다. 이것을 왜 일찍 깨닫지 못했을꼬? 아버지는 살아 계실 땐 아들로부터 존경받지 못하다가 돌아가신 뒤에야 존경받는다고 한다. 그 뜻을 따르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고들 한다. 사후에라도 아버지를 존경한다면 그는 정말 훌륭한 아들이라고 생각한다. 진품명품을 보면서 훌륭한 서예작품이 눈에 띄자 아버지의 작품을 간직하지 못한 불초한 자식으로서 한이 가슴에 와 닿았다.                                              (2018.10.15.)  

 

 

 

댓글 0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47 순교자의 발자취를 찾아서(1) 김금례 2018.10.22 6
246 한라산과 검은 발톱 전선숙 2018.10.21 8
245 구절초 꽃이 피니 행복하다 변명옥 2018.10.20 15
244 평원의 코스모스길 한성덕 2018.10.19 10
243 재목짓기 요령 두루미 2018.10.18 10
242 창작 콘테스트 안내 한국문협 2018.10.18 11
241 옮겨가는 상자들 최연수 2018.10.18 7
240 마곡사와 백범 김구 선생 김길남 2018.10.17 12
» 불효자의 한 백남인 2018.10.17 11
238 맹사성 대감처럼 변명옥 2018.10.16 12
237 돈까스 남편과 곰탕 아내 김성은 2018.10.16 14
236 발칸반도 여행기 고안상 2018.10.16 4
235 여성은 파업 중 정근식 2018.10.16 16
234 100세 무병장수하는 13가지 식사법 오경옥 2018.10.16 9
233 코스모스 백승훈 2018.10.16 10
232 비빔밥과 비빔밥 정신 박제철 2018.10.14 12
231 나는 누구일까 홍성조 2018.10.13 13
230 지티나는 사람들 [1] 최기춘 2018.10.12 47
229 바다 위를 가르는 해상 케이블카 임두환 2018.10.12 5
228 빛 바랜 편지 김삼남 2018.10.11 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