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2018.10.25 20:00

정남숙 조회 수:4

한글날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정남숙

 

 

 

 

 

  “어머니, 감사해요! 고맙습니다.

 109일 한글날, 아침 일찍 나를 깨우는 전화벨은 올해도 어김없이 울렸다. 둘째아들과 며느리가 번갈아 가며 아침인사를 했다. 한글날은 세종대왕(世宗大王)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것을 기념하고 한글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국가가 지정한 공휴일이지만, 내 둘째아들의 생일이기도 하다.

 

 내 슬하에는 연년생 두 아들이 있다. 생일도 같은 달 시월이지만 둘 다 공휴일이다. 첫째는 양력106, 태어난 해는 그 날이 추석명절이었으므로 휴일이었고, 둘째는 109일 한글날이어서 우리 아이들은 모두 명절과 공휴일에 태어났다. 그래서 외할아버지는 아이들 이름도 생일을 따라, 첫째는 ‘더도 덜도 말고 이날만 같아라.’ 하는 추석날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믿고 따라주는 ‘참되고 슬기로운 사람’이 되라는 뜻으로 참진()자로 지어주셨고, 둘째는 한글날 훈민정음의 백성 민()자로 지어주시며 세종대왕처럼 ‘어질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를 바라셨다. 물론 앞자리는 항렬() 주석석()을 따랐다.

 

 “엄마, 사람들이 내 생일을 축하해 주고 있어!

 어릴 적, 작은 아이는 한 살 위 제형의 껌딱지였다. 형이 가는 길이면 어디든 따라다녔다, 형이 뛰면 아우인 둘째도 뒤고 형이 물괴인 웅덩이를 밟으면 일부러 물을 밟고 따라간다. 세네 살 되던 둘째생일날 아침, 이 날도 어김없이 형을 따라 아침 일찍 골목길로 뛰어나간 둘째가, 형을 버리고 헐레벌떡 혼자 되돌아 집으로 뛰어 들어오며 하는 말이었다. “왜, 왜”다급해 하는 아이를 맞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았다. 형을 따라 골목길을 뛰어 가다보니 집집마다 대문에 태극기를 걸어 놓은 것이 보였단다. 동네사람들이 제 생일을 어찌 알고 축하해 주는지 놀랍고 반가워, 엄마에게 물어보려고 제 우상(偶像) 같은 형을 버리고 되돌아온 것이다.

 

 한글날은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창제하여 세상에 펴낸 것을 기념하고, 우리 글자 한글의 우수성을 기리기 위한 5대 국경일 중 하나다. 1926, 한글을 창제한 음력(陰曆) 929일을 ‘가갸날’로 정한 것이 그 시초였으며, 2년 후 ‘한글날’로 개칭되었다. 광복이후 양력(陽曆)으로 환산하여 109일로 확정된 것이다. 그러나 5대 국경일 중 하나인 한글날은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1949년 국경일(國慶日)로 지정되었다. 1970년 공휴일(公休日)로 지정되었다가 1991년 휴일이 많다는 기업 등의 지적으로 국가 경축일에서 제외되었다. 이후 한글단체 등의 꾸준한 문제 제기로 2006년부터 다시 국경일 지위를 회복하여 2012년 한글날이 공휴일로 지정되면서, 2013년부터는 법정 공휴일로 다시 지정되었다.

 

 훈민정음은 조선조 제4대 세종대왕이 지은 책의 제목, 그리고 그 책에서 해설하고 있는 뒷날 ‘한글’로 불리게 된 한국어의 표기 문자 체계를 말한다. 세종대왕이 궁중에 정음청(正音廳)을 두고 성삼문. 신숙주. 최항. 정인지. 박팽년 등 집현전학자들에게 명하여 25(1443)에 완성하여 28(1446)에 반포한 국문(國文) 글자의 명칭이다.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으로 독창적이며 쓰기 편한 24(당시 28)의 소리글자이다. 1443(세종25) 훈민정음 28자를 연구·창제하고 3년 동안 다듬고 실제로 써본 후, 1446년 음력 9월에 이를 반포하면서 『훈민정음 해례본(訓民正音 解例本)』을 통하여 문자와 천지인(天地人)을 바탕으로 하는 음양오행의 관계를 설명하였다.

 

  “아빠기념관 가볼까?

 2014109일 국립한글박물관이 개관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설레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다. 빨리 가보고 싶었다. 기다렸던 겨울방학을 맞아 손녀의 손을 잡고 찾아 나섰다. 제 아비를 주위에서 천재라 인정하며 만물박사라 부르는 것을 알고 있는 아이들도 제 아빠가 최고라 한다. 국립중앙박물관보다 먼저 한글박물관을 찾았다. 나는 손녀에게 살짝 귀뜸을 해주었다. 우리나라에서 아빠의 생일을 축하하고 영원히 기념하려고 이렇게 아름답고 귀한 한글박물관을 지어주었으니 우리 박물관이지? 손녀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의미 있는 웃음을 주고받으며 당당하게 내 아들, 내 아빠의 기념관에 으스대며 손잡고 입장하고 있었다.  

 

 한글날은 우리 둘째로 인해 관심과 애정이 가는 날이기도 하다. 둘째가 결혼하여 첫 생일날이었다. 온 식구가 다 모여 아침 생일상을 물린 후, 새 며느리는 우리 앞에 커다란 선물꾸러미를 내놓았다. 생일 맞은 제 남편 선물을 우리에게 잘 못 내민 줄 알았는데 대뜸 큰 절을 올렸다. ‘잘난 아들 잘 키워 저한테 주셨으니 고맙고 감사하다’며 잘 살겠다고 한다. 첫째며느리가 일러 주었나 싶어 옆에 있는 큰애 눈치를 살펴보니 그런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첫째도 그랬으니까 놀랄 일은 아니었다. 20여년이 다 된 지금까지 생일날 아침이면 이렇게 어김없이 두 아들 며느리한테 생일 감사인사를 받는다.

 

 “엄마 몸 괜찮아요?

 아이들 생일 달에는 몸살이 온다. 옛 어른들 말대로 산후조리가 시원찮아 산달이면 찾아온다는 산후 후유증이다. 젊어서는 잠깐이었는데 나이가 들어 힘이 없어지니 점점 더 길어진다. 밤새껏 뒤치닥거리다가 늦잠을 자는 나를 깨우는 며느리의 감사전화다. 뒤이어 사내지만 자상한 둘째의 걱정 어린 목소리를 들으니 새로운 힘이 솟는다. 그래, 오늘이 '한글날, 우리아들 생일'이니 축하해 줘야지. 나는 태극기를 찾아들고 주섬주섬 베란다 거실 문을 열고 나갔다.

 사방을 둘러봐도 태극기를 내 건 집은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한글날'을 기억이나 하는지 서운하기도 했지만, 나라에서 축하해 주는 가로등 태극기에 만족하고 서울하늘을 바라보며 나 혼자 주먹을 꼭 쥐고 “아들, 핫팅!”을 외쳐본다.      

   

댓글 0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67 100세까지 건강한 삶을! 두루미 2018.11.01 71
266 목욕탕에서 만난 사람들 오창록 2018.11.01 55
265 전라도 정도 1000년을 맞으며 김학 2018.10.31 60
264 부채꼴의 향연 홍성조 2018.10.31 2
263 멀어져가는 나의 너 장지나 2018.10.31 4
262 농담과 진담 사이 한성덕 2018.10.31 5
261 선운사 꽃무릇 신효선 2018.10.30 6
260 꽃을 꽂으며 오현정 2018.10.29 11
259 뇌졸중의 날에 해야 할 일들 두루미 2018.10.28 10
258 전북수필가들의 '나의 등단작품' 출간을 기뻐하며 김학 2018.10.28 6
257 백호 임제 선생을 기리며 김길남 2018.10.28 9
256 '노인'이라 쓰고 '청춘'이라 읽는다 정남숙 2018.10.28 11
255 내비게이션은 없다 윤근택 2018.10.27 7
254 꽃이불 홍성조 2018.10.26 6
» 한글날 정남숙 2018.10.25 4
252 천년고도, 전주 정남숙 2018.10.25 7
251 '수필아, 고맙다' 은종삼 2018.10.25 13
250 포르투칼 여행기 이준구 2018.10.24 8
249 안시성 싸움 한성덕 2018.10.24 10
248 구절초의 교훈 이우철 2018.10.22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