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불

2018.10.26 06:52

홍성조 조회 수:6

꽃이불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홍성조

 

 

 

                                                  

 아침에 깨어보니  촉촉한 가을비가 내렸다. 출근길에 자동차 시동을 켜니 낙엽 하나가 허공에서 천천히 원을 그리며  자동차 앞 유리창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황갈색의 단풍잎이다. 비가 온 뒤이기에 물기가 있어 미끈한 앞 유리창에 살짝 붙는 모습이 무척 애처롭다. 엄마가지로부터 탈출하여 광야로 떨어진 그 모습이 영락없이 준비 없이 퇴직한 노인의 모습과도  흡사하다. 바로 그 모습은 누구나 시간이 되면 죽음을 맞이한다는 자연의 섭리를 보는 것 같다.

 

 낙엽은  한 잎  두 잎 떨어질 때마다 여윈 가지에서 부르르 떤다. 가지로부터 떨어지지 않으려고 몸부림치지만  때가 되면 어쩔 수 없이 버려야하는 가지의 아픔을 그 누군들 모르겠는가? 낙엽은 바람 부는 대로 끌려간다. 어떤 낙엽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아스팔트위에 드러눕는 경우도 있다. 그 낙엽은 자동차 타이어에 온몸이 부셔지곤 한다. 인도에 떨어진 낙엽도 마찬가지다사람들의 발에 짓밟혀 피투성이가 되어도 누구나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살포시 즈려밟고 가는 아가씨들의 하이힐의 무서운 무게와 힘없이 한 발 한 발 내딛는 노인들의 구두, 꼬마들의 운동화 자국들로 인하여 낙엽은 몸서리치게 아픈 표정을 짓는다. 거기다 환경미화원은 사정없는 싸리비로 쓸어내 버린다.

 

 오후에 나는 D공원에 갔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레드 드 구르몽이 발표한 '낙엽'이란 시는 나를 설레게 한다. 나는 공원 오솔길을 걷을 때마다 낙엽 밟기가 안쓰러워 조심조심 걷곤 한다. 불현듯 어릴 적에 장난쳤던 낙엽 태우는 이상야릇한 냄새와 하늘로 치솟는 보랏빛 연기가 그리웠다. 공원 풀밭 위에 내려앉는 낙엽들은 오솔길을 걷는 연인들에게는 추억의 징표가 되기도 한다. 특히 은행잎과 단풍잎들은 연인들의 지갑이나 책갈피에 보관하여 훗날 아름다운 모습을 되새기기도 한다. 공원에 떨어진  낙엽들은 모양과 색깔이 다양하여 파란 잔디위에 꽃이불을 덮어 놓은 듯한 착각을 하기도 한다.  빨강 단풍잎, 노오랑 은행잎, 갈색의 떡갈나뭇잎, 짙은 녹색인 신갈나뭇잎, 노오란 갈색인 갈참나뭇잎 등이 바람 부는 대로 나뭇가지에서  잔디위로 투신한다.  그 모습들 보면 낙엽들도 주어진 시간이 다 되었음을 우리에게 알려 주는 것 같아 깊은 감회를 느끼게 한다.

 

 나뭇잎들은 한 그루의 나뭇가지에서 자라는 동안 서로 만나지 못하고, 낙엽이 되어 바닥에 떨어질 때쯤  비로소 만날 기회를 갖는다. 그래서 낙엽끼리는 정()도 깊다. 떨어지는 순서대로 차곡차곡 질서정연하게  쌓여도 무겁다고 불평하지 않는다. 낙엽은 죽음의 징조가 아니라 내년에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알리는 예언자의 역할을 한다. 1년 동안 삶의 무게들을  다 벗어 버리고 가지로부터 탈출해야만 내년에도 푸른 녹색의 모습을 기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흰 눈이 내리는 긴긴 겨울이 지나면 쌓였던 낙엽들은 거름으로 숲의 양식이 된다. 이 순간이 새 생명을 잉태하는 기쁨을 맞이하는 때이다. 그 누가 나무에게 생명의 은인인 낙엽을 함부로 발로 찰 수 있겠는가?

                                                (2018.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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