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꼴의 향연

2018.10.31 09:39

홍성조 조회 수:2

부채꼴의 향연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홍성조

 

 

 

 

 

 D교회 앞을 걸어갔다. 새로 지은 건물이 산뜻해 보였다. 소문에 따르면 50억 원을 들여 지은 건물이라고들 했다. 관공서로 사용한 옛 건물을 헐고 새로 신축한 건물이라서 굉장히 웅장했다. 언뜻 보기에도 서울 강남의 어느 교회건물과 비교해도 손색없어 보였다.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교회벽면을 쳐다보았다. 흰 페인트로  칠한 벽면이 참 아름다웠다. 그 벽면에 지금 한창 빨강을 곁들인 보랏빛 단풍이 들기 시작했다.  스마트 폰으로 사진을 몇 장 찍었다. 벽면에 뻗은 줄기는 10미터쯤 보였다. 땅에서 자란 줄기는 적황색 단풍잎을 달고 벽면에 찰싹 붙어 부채꼴 모양으로 좌우로 퍼지면서 위로 뻗어가고 있었다. 미끈한 콘크리트 벽면을 지지대도 없이 위로 올라가는 것만 보아도 참 신기했다. 이 줄기는 다른 식물에 붙어 자라는 것이 특기란다. 기둥이 있으면 그것을 지주대삼아 위로 기어오르는데, 이곳은 매끈한 벽면이 아닌가? 암벽등반의 묘기를 보는 듯했다.

 

 그 잎을 보니 오 헨리의 단편소설 <마지막 잎 새>가 생각났다. 무명화가 베어빈이 여류화가 존시가 심한 폐렴으로 사경을 헤맬 때 존시의 방에서 잘 보인 벽면에 나뭇가지에 잎사귀  하나를 벽에 그렸다. 바로 담쟁이덩굴 잎이다. 그 잎은  마지막 까지 비바람에도 떨어지지 않고 끝까지 견뎌내도록  하여 존시에게 삶의 희망을 주었다는 내용이다. 누구나 낙엽을 보면 괜스레 '마지막'이라는 정서적 느낌을 받곤 한다. 특히 환자인 경우에는 더 더욱 그렇다. 마지막 잎이 떨어져야 내년 봄에 희망의 새순을 볼 수 있는데 말이다. 그걸 모르는 것 같다.

 

 담쟁이덩굴줄기는 잎이 나오면서 둥근 흡착근이 생기는데 이것이 잎을 잘 떨어지지 않게 하는 작용을 한다. 잎은 넓은 난형으로 어긋나며 너비 10센티에 끝이 세 갈래로 갈라져서 기어오르기에 마치 한 폭의 부채꼴 모양을 본 듯하다.  마치 청개구리 발가락 모양과도 흡사하다. 설치예술을 연상시킨다. 칡이나 등나무 줄기는 식물을 죽이거나 생육에 지장을 주지만 담쟁이덩굴은 기어오르기만 한다. 보기에도 아찔한 암벽 등반을 하고 있다.

 

 담쟁이덩굴은 인간에게 뜻하는 바가 크다. 생육을 위해서는 어떤 모험도 마다하지 않는다. 90도 경사도 거뜬히 헤쳐 나간다. 오로지 살겠다는 신념 하나 만으로 자신을 다스린다. 뜨거운  햇빛을 막아 건물을 보호해 주기도 하지만, 야생조류의 먹잇감도 제공하는 착한 식물이기도 하다. 인간들에게도 심미적인 정서관을 심어준다.

 

 담쟁이덩굴은 질서정연하게 맨 앞의 잎이 가는 방향대로 불평 없이 뒤를 따른다. 덩굴끼리는 같이 손잡고 오른다. 누구하나 도중에 이탈하지도 않는다. 공동체를 매우 중시한다. 만약에 직각 경사에서 중간에 이탈자가 나오면 뒤에 있는 나머지 동료들과 함께 절벽으로 같이 떨어져서 뭉개져 버릴 것이다. 그래서 의리심이 강한 것 같다. 살기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적황색의 담쟁이덩굴 잎 하나를 주워 고이 가져다 내 방 벽면에 붙여놓았다. 마지막 잎새에 나오는 존시의 희망을 나도 가지고 싶기 때문이다.

                                                            (2018.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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