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이별의 경계에서

2018.11.02 15:14

최인혜 조회 수:2

사랑과 이별의 경계에서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최인혜

 

                                                     

 

  요즘 웬만하면 반려동물과 함께 산다. 개와 고양이, 햄스터 등 우리가 흔히 보는 동물도 있지만, 어떤 집에는 뱀이나 돼지, 호랑이와 함께 사는 집도 있다고 한다. 우리 집에는 나이배기 삽살개 한 쌍을 가족으로 두고 있다. 우연히 우리 가족이 된 토종 삽살개는 벌써 10년이나 함께 살면서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어 완전한 가족이 되었다.

 

  젊은이들은 반려동물을 보살피면서 그 동물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살뜰하게 보살피는지 스스로 강아지나 고양이의 ‘집사’라고 자처한다고 한다. 사람의 이기심과 배신에 실망하던 사람들이 충직한 반려동물에 사랑을 쏟는 것이다. 주인의 사랑을 잔뜩 받는 동물들은 그 사랑을 배신하지 않고 충실하게 따르고 재롱으로 보답한다. 그래서 사람과 반려동물은 가족이 된다.

 

  우리 집에 온 삽살개 한 쌍은 정말 우연히 가족이 되었다. 10년 전쯤에 내가 K시교육청에 근무하던 어느 날, 내 오랜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삽살개 한 번 키워봐!

 “웬 삽살개? 우리 집에 강아지 있잖아?

 “딱한 일이 있어서 부탁하는 거야. 강아지 좋아하고 키울만한 사람을 아무리 생각해도 최 장학사밖에 없네.

 이건 숫제 강요나 다름 아니다. 하지만, 그 친구가 내게 부탁을 할 때는 다 알아보고 마지막에 나한테 말하는 것이라는 걸 아는 내가 거절할 수 없었다.

 “그럼 한 마리 보내,

 “한 쌍인데 한 마리만? 태어날 때부터 1년 가까이 함께 지낸 놈들인데 어떻게 생이별 시켜?

 “ 그렇다면 그냥 다 보내.

그렇게 삽살개 한 쌍은 식구가 되었다.

 

  퇴근해서 집에 있으니 녀석들이 왔다. 수놈은 ‘독도’, 암놈은 ‘사랑이’라는 이름표를 예쁘게 달고 노란 털이 보송보송 자라서 복스럽게 생겨 첫 인상이 아주 좋았다. 낯선 집에 와서인지 처음에는 두 놈이 찰거머리처럼 붙어서 우리가 기르던 ‘말티즈’와 ‘시츄’를 보고 꼬리를 살랑거리며 접근하자 말티즈와 시츄는 삽살개를 보고 냄새를 맡으며 으르렁거렸다. 그렇게 새롭게 들어온 식구를 경계하는 듯 하더니 며칠 지나자 서로 어울려 놀면서 밥도 잘 먹었다.

 

  알고 보니 두 녀석이 태어난 곳은 우리나라 동쪽 끝 독도였다. 친구와 가까운 지인의 아들이 의무경찰로 독도에서 근무할 때 독도에서 자라던 삽살개의 새끼라고 했다. 의무경찰로 독도 근무를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 지인의 아들은 평소 돌보던 새끼 한 쌍을 집에서 기를 요량으로 데리고 왔다. 그러나 아파트에서 개를 기를 형편이 아닌 부모의 반대로 개를 키우지 못하고 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친구에게 부탁하여 우리 식구가 된 것이다.

 

  우리 집에 온 독도와 사랑이는 얼마 후에 성견이 되어 서로 사랑할 시기가 되었다. 나는 녀석들을 닮은 예쁜 새끼를 받아보고 싶었는데 동물병원 원장님은 남매간에 새끼를 낳으면 열성인자가 강하게 나온다고 말렸다. 그렇다고 번식을 하지 못하게 하는 건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삽살개의 혈통을 위해 참기로 했다.  

  결국, ‘독도’는 정관절제 수술을 했고, 호르몬 분비에 문제가 생긴 ‘사랑’이는 자궁을 적출하는 수술로 그들 둘은 영구히 새끼를 낳지 못하게 됐다. 짐승이지만, 한 식구로 사는 그 귀여운 녀석들의 종족을 이어가지 못하게 하는 일이 퍽 마음아팠다. 그리고 과연 내게 그런 결정을 내릴 권한이 있었는지도 생각했다. 동물들이 짝짓기를 위해 수컷들이 갖은 아양을 다 떠는 광경을 TV에서 보았다. 그들에게 번식은 생명을 걸고 쟁취할 중대사였다. 그런데 내가 그들의 본능을 무시하고 막아버린 일이 오래도록 마음에 걸렸다.

 

   이 털북숭이 삽살개들을 돌보는 집사는 우리 작은 아들이다. 성격이 조금 사나운 ‘독도’는 애견 미용실에서 수면제로 재우고 털을 깎았지만, ‘사랑’이는 아들이 직접 털을 깎아 다듬어줄 만큼 지극정성을 다 한다. 목욕을 시키고 털을 다듬어주는 일에서부터 병원에 데리고 가서 주사를 맞히고 운동시키는 일까지 모두 아들이 다 한다. 사료도 가장 좋은걸 구해서 먹이고 나이가 많아서 피부에 염증이 생기자 약을 받아다가 직접 발라주고 살핀다. 마치 자식 돌보듯 온갖 정성을 기울이는 걸 보며 마음이 점점 짠하고 슬슬 걱정이 되었다.

  두 녀석이 우리 집에 온 지 10년이니 벌써 나이가 11, 사람으로 치면 90 노인인 셈이다. 어떤 개는 20년을 살기도 한다지만, 내 경험으로는 12~3년이면 수명이 다해서 걷지도 못하게 된다. 다행히 정성으로 보살핀 덕분인지 아직은 피부병이 좀 생긴 것 말고는 그런대로 건강한 편이다.

 

  아무리 그래도 오래지 않아 삽살개들과 우리 가족 특히 둘째아들이 그들과 이별해야 할 때가 올 것인데, 여린 마음의 아들이 얼마나 상심하게 될지 벌써 심란하다. 정을 나눌 수 있도록 강아지를 미리 들여올까도 생각해 보고 있지만, 아직은 두 애들이 팔팔하게 잘 놀고 아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으니 조금 더 두고 보자는 생각이다.

  처음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우리 집 일을 거들어주는 아주머니에게 달려들어 겁을 주고 사납게 굴어 우리 가족 및 아주머니에게 퍽 힘들게 했던 일 빼고는 순탄하게 잘 자라고 점점 정을 붙여 귀여운 아이들처럼 집안에 즐거움을 주던 독도와 사랑이다. 그런데  어느 새 노견이 되어 떠나게 될 걱정을 하게 되다니, 세월이 무상하다는 걸 새삼 느끼는 요즈음이다.

 

  시간은 모든 것을 변하게 하고 가만히 두지 않는다. 한 살배기 강아지로 우리 곁에 온 독도와 사랑이가 벌써 11살이 되었듯이, 나도 자꾸만 나이를 더하고 있다. 강아지만 아니라 나를 비롯한 누구도 이 세상에 영원히 있을 수는 없다. 세상에 온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시간은 그대로 두지 않는다. 끝없이 태어나고 죽고, 깨어지고 생성하면서 세상은 흘러간다.

  내가 아들과 독도·사랑이의 이별을 염려하듯, 언젠가는 아들들이 나와의 이별을 걱정할 날이 올 것이다. 이제는 나도 슬슬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할 때라는 생각을 해 본다. 삶의 짐을 덜고 남은 시간을 보람있게 베풀고 나누며, 세상에 아름다움을 남기는 삶을 생각할 때가 아닌가 싶다.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받아들이며 차분하고 넉넉한 생각으로 남은 시간을 채워가는 삶을 살아야겠다.

                                                             (2018.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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