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유희'에 관해

2018.11.05 05:40

윤근택 조회 수:65

언어유희에 관해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요즘 젊은이들의 언어습관은 특이하고 기발하다. 내 고향 경북 청송(靑松)’의 홍보문조차 이렇게 되어 있다.

자연을 노래하다, Cheong Song!’

여기서 쓰인 ‘Song’은 발음상 청송‘-이기도 하지만, 거기에 더해 노래하다의 의미까지 있으니, 기발하다 할밖에. 기왕에 그러한 홍보문을 쓰려면, 아예 푸름[]을 노래하다, Cheong Song!’으로 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 하나의 예는 영양 올리 go, 가방 무게 내리 go.’. 연결 어미 ‘-대신에 발음면에서 같은 ‘go’를 써서 역동성을 더한 예다. 이러한 언어습관은 나쁘게 말하면, 우리말 해체(解體)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시대의 조류(潮流)가 그러하니... . 사실 문장수사법에도 언어유희법(pun)이 버젓이 있으니, 크게 탓할 일은 못 된다.

이러한 언어습관 추세를 보면서, 문득 신라시대의 이두(吏讀)와 향찰(鄕札)을 떠올리게 될 줄이야! 설총(薛聰)이 고안해 내었다는 이두. 한자의 음()과 석()을 빌린 국어 표기법. 이두로 적은 시() 가운데에서 신라시대 부설거사(浮雪居士)’가 적었다는 멋진 시 <팔죽시(八竹詩)>를 다시 음미해 본다.

此竹彼竹化去竹(차죽피죽화거죽) 이런 대로 저런 대로 되어가는 대로

風打之竹浪打竹(풍타지죽낭타죽)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粥粥飯飯生此竹(죽죽반반생차죽) 죽이면 죽, 밥이면 밥, 이런 대로 살고

是是非非看彼竹(시시비비간피죽) 옳으면 옳고, 그르면 그르고, 저런 대로 보고

賓客接待家勢竹(빈객접대가세죽) 손님 접대는 집안 형편대로

市井賣買歲月竹(시정매매세월죽) 시장 물건 사고파는 것은 세월대로

萬事不如吾心竹(만사불여오심죽) 세상만사 내 맘대로 되지 않아도

然然然世過然竹(연연연세과연죽)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 대로 보내네

 

물론, 각 연() 끝에 쓰인 은 우리말 대로를 나타내는 각운(脚韻)이다.

 

언어유희법을 최대한 중국의 시도 한 편 있다. 모조리 (shī)’로만 발음되는 시다.

 

 

施氏食狮史 shī shì shí shī shĭ

石室诗士施氏嗜狮誓食十狮shí shì shī

shì shī shìshì shīshì shí shí shī

氏时时适市视狮shì shí shí shì shì shì shī

十时适十狮适市shí shíshì shí shī shì shì

是时适施氏适市shì shíshì shī shì shì shì

氏视十狮恃矢势使是十狮逝世shì shì shí shīshì shĭ shìshĭ shì shí shī shì shì

氏拾是十狮尸适石室shì shí shì shí shī shīshì shí shì

石室湿氏使侍拭石室shí shì shīshì shì shì

石室拭氏始试食十狮尸shì shĭ shì shí shí shī shī

食时始识是十拭尸实十石狮尸shí shíshĭ shí shí shī shīshí shì shí shí shī shī

试释是事shì shì shì shì.

 

풀이하면 이렇다.

<돌방에 사는 시인 시씨는 사자를 즐겨먹었는데

하루는 사자 열 마리를 먹으려고 시장에 나가 사자가 있나 살펴보았는데

열시쯤 열 마리의 사자가 나타났고

마침 시씨도 그 시장에 도착했다.

시씨가 열 마리 사자를 잡으러 활을 쏘아 제대로 명중해 그 사자를 잡았고

잡은 사자 열 마리를 끌고 돌방으로 돌아갔는데

돌방이 하도 습해 하인에게 방을 닦으라 시키고

 

깨끗해진 방에서 드디어 사자를 먹으려 하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사자대신 열 개의 돌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이 어찌된 일인가.>

 

기가 찬 언어유희는 또 있다. 이 이야기는 여러 버전이 있으니,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서는 인터넷 검색창에다 호보연자혹은 심조불산으로 쳐보시기 바란다. 그러면 배꼽을 잡게 될 테니까. 하지만, 심오한 뜻이 들어 있다.

호보연자(互步緣慈) 하니, 심조불산(心操不山,心操佛山)이라... .’

마음을 항상 살피고 조화롭게 하면, (근심, 걱정, 장애물)이 없어지니... .’로도 해석된다. ,‘ 이 산중을(산과) 함께 걸으면서 세상의 연으로 맺으려 하니,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그것이 부처님의 품안에 들었음이라... .’로도 해석된다.하지만, ‘자연보호 산불조심을 거꾸로 읽고 마치 큰 깨달음이라도 얻은 듯 선문답(禪問答)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언어유희 가운데에서 수작(秀作)이라면, ‘산은 산이요, 물은 셀프입니다.’겠지! 이 말은 어느 고승(高僧)의 법어(法語)라고 알려진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의 패러디라는데... . 하여간, 내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고 말했더라면, 돌았다거나 미쳤다거나 또라이라거나 하는 소리를 들었을 게 뻔하다. 그런데 그 말은 그 고승(高僧)의 독창적인 법어도 아니었다는 사실.

시계바늘을 중국 송나라(960~1279) 시절로 되돌린다. 그 나라에는 유명한 야부선사(冶父禪師)’가 살았고, 그분의 시구(詩句)<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란 책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는 거 아닌가.

山是山 水是水, 佛在何處.’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인데, 부처님이 어디에 계시단 말인가.)

한편 야부선사와 동시대를 산 청원 유신화상이란 분의 상당법어(上堂法語)에는 이러한 게 있다.

老僧三十年前未參禪時,

看見山就是山 看見水就是水.

見山不是山 見水不是水.

依前見山只是山 見水只是水.

(이 노승이 삼십년 전 아직 참선을 하기 전에는

산을 보면 곧 산이었고 물을 보면 곧 물이었다. 그 후 어진 스님을 만나 도법을 깨치고 나니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었다. 더욱 정진해 불법도리를 확철대오하니 지금은 그전처럼 역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대중들이여, 이 세 가지 견해가 서로 같은 것이냐, 각기 다른 것이냐?

만약 이를 명확히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이 노승이 그에게 배복(拜伏)하겠다.)

 

고려 말 백운화상의 시구에 등장하고 있다.

 

老僧三十年前未參禪時

見山是山, 見水時水

乃至後來親見知識有入處

見山不是山, 見水不是水.

而今得箇休歇處

依前見山祗是山, 見水祉是水

大衆這三般見解是同是別.

(노승이 삼십년 전에 참선하기 전에는 산은 산이고 물은 물로 보았다. 그러다가 나중에 선지식을 친견하여 깨침에 들어서서는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닌 것으로 보았다. 지금 편안한 휴식처를 얻고 나니 마찬가지로 산은 다만 산이요, 물은 다만 물로 보인다. 그대들이여, 이 세 가지 견해가 같은 것이냐 다른 것이냐? )

 

, 어쩔 텐가? 불자(佛子) 여러분은 또 어쩔 텐가? 우리네가팝 아트(pop- art)의 거장으로 부르는 앤디 워홀(Andy Warhol, 미국,1928~1987)’의 생전 말이 겹쳐지니 이를 어쩌나. 그는 부와 명성을 함께 거머쥔 사내였다. 그의 살아생전 어록(語錄) 가운데에는 일단 유명해지라. 그러면 사람들은 당신이 똥을 싸도 박수를 쳐 줄 것이다.”도 있다는 사실.

그러니 나도 표절 아닌 표절을 해보아야겠다.

산은 산이요, 물은 ‘self-service’.”

말이란 만들면 되는 거. 굳이, 나더러 해설을 하라면 이렇게 되겠지.

산은 의구(依舊)하되, 물은 저절로(self) 흐르고 흘러 새 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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